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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라오펑유 이세기의 마지막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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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오랜 벗’이란 뜻의 라오펑유(老朋友)는 중국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지만 국가 지도자들만큼은 예외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아무에게나 접두어 ‘라오’를 붙이진 않는다. 중국이 어려울 때 정성으로 도와준 사람, 오랜 기간 배신하거나 실망을 주지 않은 사람, 나아가 평생 도움과 가르침을 청할 만한 사람에게만 절제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의 오랜 벗’이란 수식어는 미·중 수교의 발판을 닦은 헨리 키신저나 중·일 수교 결단을 내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등에게만 극히 제한적으로 붙인다. 불행히도 한국 역대 지도자 중엔 라오펑유가 없다. 천안문 망루에 올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반열에 들어갈 뻔했지만 이후 한·중 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없던 일이 돼버렸다.

동북공정 막후 해결이 주는 교훈 #감언이설만으론 상대방 마음 못 사 #중국 듣기 싫은 소리도 할 수 있어야

범위를 약간 넓혀 보면 지난 24일 갑작스레 별세한 이세기 전 통일부 장관이 예외적으로 라오펑유 대접을 받았다. 수교 전인 1985년 맺은 중국 외교원로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중진 정치인 시절의 교류를 거쳐 민간 단체인 한·중친선협회장을 맡아오는 동안 시진핑, 후진타오, 원자바오, 리펑 등 중국 역대 지도자들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쌓고 한·중 가교 역할을 했다.

필자는 이달 초·중순 두 차례 그를 만나 식사를 겸한 인터뷰를 했다. 못다 한 얘기는 시간을 두고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고인이 반평생을 바쳐 한·중 관계의 현장에서 해 온 일들을 듣고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노무현 정부 때이던 2004년 한·중 간 최대 현안은 동북공정이었다. 중국 정부는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왕조로 규정한 데 이어 외교부 홈페이지의 한국 소개란에 있던 고구려 관련 기술을 삭제해 한국 여론의 거센 반발을 샀다. 8월 어느 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찾아와 “정부 노력으로 한계가 있다”며 “회장님이 중국 인맥을 통해 도와 달라”고 요청해 왔다. 며칠 뒤 베이징에 간 그는 류훙차이(劉洪才)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만나 동북공정 얘기를 꺼냈다. 류 부부장은 자국 공식 입장만 반복하며 귀담아들을 태세가 아니었다.

이 회장은 불쑥 “한국 여론 때문에 곧 있을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의 방한을 한국 정부가 재고해야만 할지 모른다”고 말을 꺼냈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민간인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중국을 움직이려면 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예상대로 류 부부장의 표정이 바뀌더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왔다. 그는 “고구려 문제는 학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정부는 손을 떼자”고 제안했다. 그가 베이징을 떠날 무렵 “지난번 말씀을 곧바로 후진타오 주석에게 전달했고 조만간 외교부 부부장을 한국에 보내 협의할 것”이란 연락을 받았다. 이후 자 주석의 방한은 예정대로 이뤄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환영 리셉션 때 바로 자신의 옆자리에 이 회장과 자 주석을 앉게 하고 막후 역할을 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16년 전의 일화 속에는 지금도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 들어있다. 고인의 말 그대로 옮겨 적으면 이러하다. 첫째, “중국 사람이 듣기 싫은 소리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럴 때 상대방이 오히려 나를 존중해 준다. 상대방 듣기 좋은 감언이설만 늘어놓아선 결코 중국인과 마음으로 교류할 수 없다.” 두 번째 교훈은 이랬다. “정부 간 공식 외교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민간이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여야의 구별, 진영의 구별이 있어선 안 된다. 당시 나는 노무현 정부와는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던 사람인데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데 내가 가만 있을 순 없었다.”

중국인들이 드물게 라오펑유로 인정하던 인물이 사라졌다. 한·중 관계의 소중한 자산을 잃은 셈이다. 수교 후 탄탄대로이던 한·중 관계는 지금 큰 도전을 맞고 있다. 이럴 때 고인의 가르침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