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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주도 부동산 정책, 소득·복지의 질 떨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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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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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현 정부가 등장하면서 올린 깃발, 소득주도성장이다. 인제야 실험이었음이 명확해졌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로 전 국민과 경제를 대상 삼아 감행했다.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을 확 올리자 자영업자가 쓰러졌다. 일용 근로자나 아르바이트생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반면 대기업 종사자의 임금은 올랐다. 소득주도성장이 노조의 깃발 아래 공고한 기득권을 구축한 계층에만 혜택을 준 셈이다. 경제가 일자리 고갈로 소리 없이 무너졌다. 명색이 일자리 정부라는 현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쏟아내는 부동산 증세 중심 대책 #사회보장 시스템마저 뒤흔들어 #세금 올리며 영향 평가도 안 해 #실질 소득 낮춰 내 집 꿈만 막아

이렇게 되자 확 줄어든 일자리 수는 슬그머니 감추고, ‘일자리 질이 좋아졌다’며 엉뚱한 얘기로 논점을 흐리려 했다. 그러다 비정규직 통계 조작 논란이 불거지며 휘청거렸다. 거창한 이벤트로 선보였던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도 못 본 지 오래다. 최근 들어 대놓고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내려놓거나 수정했다는 얘기도 안 들린다. 가끔 고집스럽게 꺼내 든다.

그 프레임이 부동산으로 옮겨붙은 느낌이다. ‘세금 주도 집값 성장’이라고나 할까. 세금을 확 올렸더니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니 말이다. 소득주도성장을 한다고 해 놓고, 소득도 안 올랐다. 그런데 세금만 올린다. 실질 소득은 뚝 떨어진다. 내 집 갖기는 더 힘들어졌다. 회사와 지루한 ‘밀당’을 하며 임금을 올리면 뭐하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집을 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현 정부 출범 당시 5억원이면 살 수 있던 서울 노원구의 민영 아파트(84㎡)가 3년이 지난 지금은 전셋값만 7억원이다. 서울 마포의 민영아파트(84㎡)는 현 정부 출범 초 8억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어느새 전세가가 10억원, 매매가는 17억4000만원이다. 이러니 3년 전에 집을 안 산 것을 두고 부부간에 다투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하는, 가정파괴의 참극까지 빚어졌다.

실질 세율, 한국 절반에 불과한 프랑스 종부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실질 세율, 한국 절반에 불과한 프랑스 종부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들이밀 때처럼 프레임을 더 공고히 하는 데 혈안이다. 하루가 멀다고 부동산 정책이라며 내놓는다. 그때마다 부동산 가격은 널뛴다. 정부 정책이 ‘더 올라라’라는 주문(呪文)이 됐다.

현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정책의 근간은 세금 인상이다.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취득세, 양도소득세, 증여세 등 집값을 잡겠다며 세금만 엘리베이터에 태워 고속 질주 중이다. 이게 집값 상승만 가져오는 게 아니다. 사회보장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얼마나 늘어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정부가 이와 관련된 시뮬레이션을 했는지 오리무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일 국회 기획재정위 답변에서 “시뮬레이션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금을 올릴 땐 그 영향을 예측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시뮬레이션 결과를 국민은 물론 경제부총리조차 접하지 못했다는 말 아닌가.

그래놓고 정부는 공시가격을 2022년까지 시세의 100%로 올린다고 한다. 공시가격이 활용되는 항목은 무려 60여 개에 달한다. 건강보험료, 실업급여 연장(개별연장급여), 기초연금 대상자 판단,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선정, 취업 후 학자금 장기상환 대상자 판단, 장애인 연금 판단 기준 등이다. 공시지가가 상승하면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하고, 실업급여를 더 받을 수 없게 되고,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온갖 공과금이 확 오른다. 이런 (준)조세는 또 다른 사회보장 정책으로 확산해 영향을 미친다. 올해 4월 긴급재난지원금 수령 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검토됐다. 경기도 부천시가 예술인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검토 중인 기준도 건강보험료다. 부동산 세금 상승이 건강보험료를 올리고, 이게 긴급재난지원금 수령을 막는다는 의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회보장 시스템의 오작동을 일으키는 셈이다.

정부 주장과 다른 대만 공시가격 현실화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부 주장과 다른 대만 공시가격 현실화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부는 공시가격 인상 방침을 밝히며 외국의 사례를 들었다. 그중 하나가 대만이다. 대만은 현실화율이 90%라고 정부는 주장했다. 한데 알고 보니 대만이 보유세를 계산할 때 쓰는 공시지가는 올해 기준으로 19.79%에 불과했다. 현실화율 90%인 항목은 양도소득세를 계산할 때 쓰는 ‘공고현가’다. 한국은 양도소득세를 실거래가로 매긴다. 대만은 양도소득세조차 10% 깎은 기준을 쓰는 셈이다. “엉뚱한 자료로 정부의 실정을 감추고 정당화하려 포장한다”(유경준 국민의힘 의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선진국은 어떨까. 부동산 보유세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도 한국보다 세율이 0.1~1.5% 포인트 낮다. 그나마 프랑스는 부동산에 포함된 부채를 과세표준에서 제외한다. 이 때문에 실질세율은 한국의 절반 정도다.(유경준 의원실)

영국의 공시가격인 카운슬세는 1991년 4월 1일 처음 결정됐다. 10년에 한 번씩 재평가한다. 한데 지금도 91년의 과세기준을 쓴다. 세금 인상에 따른 주민 부담 증가와 반발을 우려해서다. 독일의 기준시가는 무려 56~85년 전의 것을 쓴다. 구서독 지역은 1964년에 책정된 부동산 가치를, 동독지역은 1935년의 것을 현재도 쓴다. 미국 뉴욕시는 부동산의 감정 가치를 1년에 6% 이상 또는 5년에 20% 이상 올릴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서울지역은 올해만 15%가량 올랐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