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의 배신일까…'뚝뚝' 떨어지는 금·달러·채권 값

중앙일보

입력 2020.11.30 17:08

업데이트 2020.11.30 17:21

지난 8월 금 펀드에 8000만원 넘는 돈을 투자한 최모(41)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금값이 연일 하락하는 바람에 한두 달 사이 1500만원 가까이 잃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금값이 내년까지 계속 오른다는 얘길 듣고 투자했는데, 막차를 탄 것 같아 후회된다"며 "손실이 너무 커서 팔 수도 없고 스트레스가 심해 당분간 잊고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 절차가 시작되면서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지자 '안전자산'인 금값이 하락하고 있다. 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 절차가 시작되면서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지자 '안전자산'인 금값이 하락하고 있다. 뉴스1

국내 금값, 4개월 만에 21% 급락

안전자산의 배신일까. 올해 고공 행진했던 금·달러·국채 가격이 일제히 급락하고 있다. 30일 한국거래소(KRX) 금시장에서 금 1g당 가격(종가 기준)은 6만2970원으로 지난 7월 고점 대비 21.4% 폭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주요국의 막대한 '돈 풀기'로 7월 28일 8만100원까지 치솟으며 연초 대비 41% 넘게 올랐지만, 이후 내리막을 탔다. 국제 금값도 비슷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내년 2월 인도분 금값은 온스당 1788.1달러에 거래되며, 4개월 반 만에 가장 낮았다. 최고치였던 8월 6일(온스당 2069.4달러)과 비교하면 13.6% 하락한 수치다.

뒤늦게 여윳돈을 털어 넣었던 투자자들은 원금을 까먹는 신세가 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국내 금 펀드 12개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4.4%였다. 3개월 수익률은 -9.4%로 더 나빴다. 특히 '블랙록월드골드' 펀드의 3개월 수익률이 -15%대를 기록했다.

달러인덱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달러인덱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악' 소리가 나는 건 금만이 아니다. 안전자산의 대표 격인 달러 값도 추락하고 있다. 세계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올해 3월 102.8에서 지난 27일 91.8까지 하락했다. 달러 대비 원화값은 강세다. 지난 3월 19일 1285.7원까지 내렸던 달러당 원화값이 불과 8개월 만에 180원 정도 뛰어올랐다(환율은 하락). 달러 값이 싸지자 투자자들이 '달러 사재기'에 나서면서 11월 국내 달러예금 잔액은 역대 최대로 불어났다.

국고채 3년물 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고채 3년물 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뭉칫돈이 몰렸던 채권시장에서도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8월 5일 연 0.795%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지만, 이달 30일 연 0.983%로 상승했다. 채권은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 국고채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채권 가격이 약세를 보였다는 의미다.

미국 달러화. 셔터스톡

미국 달러화. 셔터스톡

"위험자산 선호"…가격 계속 하락하나

안전자산 '삼형제'가 체면을 구긴 것은 그동안 증시를 감쌌던 악재들이 점차 가시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코로나19와 미·중 무역 전쟁, 미국 대통령 선거 등으로 불확실성이 컸던 해였다. 하지만 미 대선이 끝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진 데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막바지라는 소식이 잇따르면서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졌다. 조 바이든 차기 정부 땐 미·중 무역 전쟁이 완화될 것이란 전망도 투자 심리 개선에 힘을 보탰다. 국제 유가도 상승세다.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전망이 바뀌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팔고 주식 같은 위험자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다우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만 선을 돌파했고, 한국 코스피와 일본 닛케이 지수도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강세를 보였다.

국제 금값.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제 금값.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당분간 코로나 백신 개발, 미국의 대규모 부양책 같은 호재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 지금 같은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특히 달러당 원화값의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완화 정책 기조 등으로 내년에 1040원대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값 전망은 엇갈린다. 금은 안전자산이기도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방어 수단이기도 하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에 저금리 장기화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헤지(위험 분산) 수단으로 금이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위기감은 1970년대 이후 지금이 최고"라며 "금값이 수개월 안에 23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맥쿼리는 "내년 금값이 1550달러 선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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