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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마다 감염병 왔다…'월드컵둥이' 험난한 수능 도전기

중앙일보

입력

'오~필승 코리아'

새빨간 응원 물결이 전국을 수놓았던 2002년. 한일월드컵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뜨거운 축구 열기 속에서도 아기들은 태어났습니다. 이때 세상의 빛을 본 '월드컵둥이'는 50만명에 육박합니다.

[영상] 2002 월드컵 때 태어난 고3 #휴교 자주 겪고 내년 새 수능 체제 #'비운의 세대' 넘어 '오 필승 수능!'

02년생은 쑥쑥 자라 올해 만 18세, 고3 수험생이 됐습니다. 전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응시생 49만명 중 고3 '현역'은 35만명가량입니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스스로를 '비운의 02년생'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대학 입시 직전 찾아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라네요.

202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9일 앞둔 24일 부산 한 고교에서 마스크를 쓴 고3 학생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9일 앞둔 24일 부산 한 고교에서 마스크를 쓴 고3 학생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툭하면 터지는 질병, 휴교 익숙해요

초등학교 1학년 : 신종플루
중학교 1학년 : 메르스
고등학교 3학년 : 코로나19

현 고3 학생들이 걸어온 길입니다. 학창 시절 동안 한 번 겪기도 어려운 감염병 유행을 세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초·중·고교 재학 기간마다 어김없이 새로운 질병이 찾아온 겁니다.

2009년 5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종플루가 국내에 상륙했습니다. '학교'라는 곳에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은 생애 처음 마주친 신종 감염병으로 뒤덮였습니다. 교내 집단감염이 발생하기도 했죠. 일부 학교의 개학은 미뤄졌고, 자체 휴업을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만 75만명에 달하는 신종플루 환자가 나왔죠.

2009년 신종플루로 휴업한 서울의 한 고등학교. 중앙포토

2009년 신종플루로 휴업한 서울의 한 고등학교. 중앙포토

졸업을 앞둔 2014년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세월호 사고로 304명(사망 299명, 실종 5명)의 승객들이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 참사로 인해 모든 수학여행이 취소됐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듬해, 중동에서 건너온 메르스와 마주했습니다. 치사율 20~46%(질병관리청 기준)에 달하는 무서운 질병이었죠. 새로운 바이러스의 위협에 일부 지역 학교들은 문을 걸어 잠가야 했습니다. 많을 때는 전체 유치원, 초·중·고교의 10% 이상이 휴업에 나섰습니다. 학교에 갔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은 힘들었던 시기죠.

이대로 감염병과 작별할까 했지만, 학창 시절 막바지에 가장 센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죠. 지난 1월 국내 첫 환자가 나온 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대규모 유행이 터졌습니다. 결국 개학이 4번이나 미뤄지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어렵게 등교를 시작했지만, 확진자가 나온 학교는 다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특히 수능을 앞둔 고3은 제일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행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3,4위전 터키 대 한국 경기 응원을 위해 서울시청 앞에 모인 응원단. [중앙포토]

2002년 월드컵 당시 3,4위전 터키 대 한국 경기 응원을 위해 서울시청 앞에 모인 응원단. [중앙포토]

마스크에 가림막까지…'재수'도 부담

질병뿐일까요. 새로운 교육 과정에 적응하는 것도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처음 경험한 게 02년생입니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받는데, 수능은 예전처럼 치르는 유일한 학년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재수'란 없다는 배수의 진을 쳐야 하죠. 내년 수능부턴 문·이과 구분이 사라지는데, 입시에 낙방한 수험생은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야 합니다.

달라진 수능 방식도 고3을 옥죕니다. 코로나 때문에 해마다 11월에 보던 수능이 12월로 미뤄졌습니다. 시험장에선 점심 식사할 때를 빼면 무조건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안 그래도 좁은 책상 앞엔 불투명 가림막이 설치돼 시험지를 펴기도 쉽지 않죠.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일 앞둔 23일 대전의 한 여고에서 고3 수험생들이 막바지 수능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일 앞둔 23일 대전의 한 여고에서 고3 수험생들이 막바지 수능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모든 국민이 부모 맘으로"…'오 필승 수능'

수능 수험생 중 코로나 확진자는 21명, 자가격리자는 144명(26일 기준)에 이릅니다. 수능(다음달 3일)을 일주일 앞두고 정부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우리 국민 모두가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마음으로 일주일 동안 모든 일상적 친목 활동을 잠시 멈춰달라"고 요청했죠. 고3 학생들에겐 "2020년 한 해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왔다"고 응원을 전했습니다.

'오대영' 비아냥을 이겨내고 18년 전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한국. 그 기운을 받은 '월드컵둥이'도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신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오 필승 수능' 응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김경미·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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