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하경 칼럼

대통령의 침묵…떠나가는 민심

중앙일보

입력 2020.11.30 00:33

지면보기

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혈투를 벌이고 있다. 검찰총장 직무배제의 정당성에 대한 행정법원 부장판사와 징계위원들의 판단이 기다리고 있다. 흔쾌한 승복 대신 듣도 보도 못한 송사로 이어질 것이다. 5선인 민주당 이상민 의원조차도 “쓰레기 악취 나는 싸움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참여연대도 “국민의 염증과 피로감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대통령이 결자해지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은 불안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입을 다물고 있다.

윤석열 쫓아내려는 추미애 무리수
악성종양 없애는 수사가 잘못인가
윤 내쳐도 비리·부패 뿌리는 남아
‘친문’ 눈치 살펴 누구도 직언 못해

여권은 윤 총장을 ‘판사 사찰’ 총책으로 낙인찍어 감옥에라도 보낼 태세다. 송영길 의원은 “총장직을 내려놓고 비리 혐의에 대해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직무정지와 해임의 정당성을 다투는 소송에서 윤 총장이 이기면 거꾸로 추미애 법무장관이 당할 것이다. 최악의 혼란이다.

대통령의 침묵은 “윤석열을 쳐내라”는 신호다. 박근혜 정권을 몰아낸 윤석열의 시퍼런 칼날이 현 정권을 향하고 있는 데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시발점은 조국 사태다. 대통령은 윤석열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엄정하게 법 적용을 해 달라”고 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윤석열을 무장해제시키면 울산시장 선거부정, 라임·옵티머스 비리 의혹 등 여권으로 향하는 수사를 한순간은 “동작 그만!”시킬 수 있다. 전세 대란,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논란, 김해신공항 백지화 등 국정혼선도 잠시 덮을 수 있다. 하지만 부정부패·무능의 뿌리까지 소멸시킬 수는 없다. 전국의 평검사 1789명 가운데 1761명이 “총장 직무정지는 문제 있다”고 서명했다. 이들이 한꺼번에 부패척결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악성 종양을 방치하면 온몸으로 퍼지고 피해는 국민 전체가 본다. 미리 환부(患部)를 도려내겠다는 ‘우리 윤 총장’이 왜 거세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대선 주자와 유력 정치인들이 나서서 대통령의 이성적 대처를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친문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오히려 “윤 총장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 달라”며 사퇴를 압박했다.

윤호중 국회법사위원장은 윤 총장을 출석시키는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인 언론인 출신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에게 “‘찌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막말을 했다. 그럼 이 신문 출신 이낙연 대표와 청와대 대변인 출신 윤영찬 의원도 ‘찌라시’ 출신이란 말인가. 비판적인 언론을 매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윗사람을 괴롭히는 ‘쓴소리 전문가’였다. 12년이 채 안 되는 벼슬살이 기간에 명종·선조를 상대로 130편의 상소를 올렸다. 1574년 천재지변이 거듭되자 선조가 초야(草野)의 백성들에게까지 구언(求言)을 했다. 율곡은 1만여 자에 이르는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린다.

“잘못된 자를 공격하면 모함한다고 의심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명을 내리실 때는 말씀 속에 감정이 들어 있고 좋아하고 싫어하시는 것이 일정치 않으십니다. (중략) 들보에서부터 서까래에 이르기까지 썩지 않은 게 없는데… (중략) 여러 목수가 둘러서서 구경만 하고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형국과 같습니다. (중략) 백성들의 힘은 이미 바닥나 버린 상태입니다. (중략) 10년이 채 안 돼 화란(禍亂)이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율곡은 1582년 “전하께서는 오늘날 국가의 형세에 대해 의관만 정제하고 가만히 앉아 있더라도 끝내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라고 선조를 몰아세운다. 임진왜란 10년 전의 일이다. 선조는 “일을 해보고 싶지만 너무도 몽매하고 재주와 식견이 부족해 지금까지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니 생각해 보면 한탄스러울 뿐이다”며 쩔쩔맨다(『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 임철순, 열린 책들). 권력의 곁불이라도 쬐려고 아부와 침묵의 대열에 선 여권 정치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서울대 학생 전용포털 스누라이프에는 ‘박근혜 대통령님, 미안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두 집 살림 한다고 채동욱 잘랐을 때 욕했었는데 이번에 사찰했다고 윤석열 찍어내는 거 보니 그건 욕할 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고 적었다. 민심이 문 정권을 떠나고 있다. 맹자는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되느냐”는 제선왕(齊宣王)의 질문에 “인(仁)과 의(義)를 해친 도적은 한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율곡은 그런 맹자를 “나의 스승(斯人吾所師)”이라고 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고금(古今)을 떠나 정당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좌파가 ‘동일한 사고에 지배되는 집단(intellectual monoculture)’이 되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공격하고,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미국 신(新)좌파에 경고했다. “진실은 다른 관점을 통해 발전한다”는 그의 주장은 권력에 취한 한국의 진보도 외면하고 있는 ‘참인 명제(命題)’다. 여당은 오만하고 야당은 무력하다. 혼돈을 벗어날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이하경 주필·부사장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