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스마트 축사 이어 바이오플랜트로 탄소배출권 획득

중앙일보

입력 2020.11.3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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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기자

농업 ‘넷 제로’에 도전하는 홍성 원천마을

추수가 끝난 들판. 초록을 걷어낸 논엔 흰색 원통 모양 짚단 뭉치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논과 밭을 이어가는 좁은 시멘트 포장길 사이로 단출한 양옥과 파란 지붕을 이고 있는 축사들이 눈에 띈다. 지난 24일 찾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의 겉모습은 겨울 초입에 들어선 평범한 농촌이었다. 하지만 안쪽에선 에너지 자립마을을 넘어 농업 넷제로(Net Zero, 온실가스 발생과 감축량이 같아지는 수준)를 추진하는 열기가 뜨거운 곳이기도 하다. 중심엔 증권사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돼지 농장주로 변신한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가 있었다.

온실가스 ‘발생량=감축량’ 이뤄
증권사 상무, 축산업에서 제2 인생
바이오플랜트로 냄새·전기 잡아
남는 열에너지로 시설원예 추진

돼지 축사의 변신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가 12월 초 공식 가동을 앞두고 최종 점검 작업 중인 원천 에너지전환 센터 내부 보일러(왼쪽)와 발전기 용량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가 12월 초 공식 가동을 앞두고 최종 점검 작업 중인 원천 에너지전환 센터 내부 보일러(왼쪽)와 발전기 용량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돼지를 키우는 일은 질병과 냄새, 그리고 열과의 전쟁이다. 축사는 열과 싸우는 최전선이다. 돼지는 땀샘이 적어 추위는 상대적으로 잘 견디지만 더위엔 약하다. 30도를 넘어가면 생육이 나빠지고, 집단 폐사하기도 한다. 생산비 상승을 감수하며 에어컨을 설치하는 곳도 있다. 성우농장은 원천마을 본농장에서 차로 5분쯤 떨어진 곳에 제2 축사를 지었다.  단열과 공기순환만으로 전기 없이 냉난방이 되는 패시브 하우스 개념을 도입했다고 한다.

소독과 환복을 거쳐 다소 평범해 보이는 축사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런 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런데 축사 출입문을 열어보니 확실히 다른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2m 너비에 100m가량 쭉 뻗은 중앙통로는 배관과 환기구, 계측기들로 빼곡했다. 농장이 아닌 자동화 공장 같은 느낌이랄까. 꽤 높은 천장 바로 아래 창을 만들고 그 앞에 커튼을 드리웠다. 여름엔 커튼을 타고 찬 물이 흐르게 해 들어오는 공기를 식힌다. 겨울엔 창을 막고 지하 배관과 연결된 흡기구를 연다. 열기나 냉기를 1차로 제거한 공기가 중앙통로에서 2차 예열된 뒤 흡기구를 통해 통로 양쪽에 늘어선 16개의 돈방에 흘러 들어간다. 전기 없이도 돈방의 일교차는 3도 이내로 줄었고, 36도 넘는 여름도 무사히 넘겼다.

각 방에는 센서가 달려있다.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농도가 30초 단위로 측정된다. 데이터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농장의 ICT 자회사의 클라우드 컴퓨터로 모인다. 그곳에선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실내 공기 상태를 제어하는 신호를 농장으로 보낸다. 물과 사료 소비량도 자동 체크해 관리한다. 프로그래밍한 것과 달라지면 시설에 고장이 발생했거나 돼지에 질병이 생겼다는 징후다. 미리 대처할 기회가 생긴다. 폐사율은 낮아지고 사료량도 줄다 보니 생산성이 확 올라갔다. 돼지 농가 생산성 척도인 PSY(Piglet per Sow per Year, 어미돼지 한 마리가 연간 낳는 새끼 돼지 수)가 24로 국내 평균(21.3)을 크게 웃돈다.

성우는 이 축사 유지관리 시스템을 국내외에 공급할 생각이다. 이미 중국 쪽에서 관심을 갖고 접촉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도헌 대표는 “ICT 서비스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하기 때문에 단순 모방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한 투자, 성공한 축산가

에너지전환 센터 전경. 프리랜서 김성태

에너지전환 센터 전경. 프리랜서 김성태

농장 자동화를 넘어 농업 ICT 서비스 회사의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표의 독특한 이력과 무관치 않다. 대학 졸업 후 쌍용증권에 입사했다. 당시 쌍용증권은 미국 뉴욕의 헤지펀드 회사인 LTCM과 공동 헤지펀드를 운용했는데 이 대표가 실무자로 파견됐다. 컴퓨팅과 결합한 첨단 금융기법이 국내에 막 소개되던 시기에 귀한 경험을 쌓았다. 얼마 뒤 회사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이강 파이낸스를 공동 창업했다. 이 대표는 주로 리스크 관리와 금융 IT 컨설팅을 맡았다. 이 인연으로 말레이시아 채권평가사 대표, 아시아 개발은행의 인도네시아 자문역을 맡은 뒤, 40대 초반에 한국투자증권 해외사업 담당 상무로 돌아왔다.

이런 화려한 이력도 금융위기라는 세계적 흐름은 피해 가지 못했다. 동남아 진출 프로젝트가 차례로 중단된 뒤 부서 구조조정까지 떠맡게 되자 회의가 몰려왔다. “마흔셋 나이에 새로 시작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금융업의 고성장 시기는 끝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그렇게 회사를 나와 1년간 전국을 돌며 시장조사를 했다. 진입장벽은 높고, 수요는 꾸준하며 시장 개방 영향을 덜 받을 것. 이 까다로운 조건에 맞는 산업이 1차산업이고, 다시 시설원예와 양식·돼지농장 정도로 압축됐다. 이중 고민 끝에 고른 게 돼지농장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농촌에 내려가 직접 돼지 키울 생각은 없었다. 생산성은 좋은데 부채가 많은 농장을 골라 지분 투자를 하고 배당을 받겠다는 게 그의 복안이었다. 지인과 전문가의 도움까지 받으며 고른 곳이 이곳 성우농장이다.

그런데 세상 꼼꼼한 듯했던 그가 결정적 실수를 한다. 장부만 믿고 현장 실사를 생략한 게 화근이었다. 번지르르한 장부는 농장 대표가 가장 실적이 좋은 축사의 생산성을 바탕으로 조작한 것이었다. 분식은 구제역과 돼지고기 수입으로 인한 가격 폭락이 덮치자 금세 맨얼굴을 드러냈다. 부도위기에 몰려 농장주가 손을 들어버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대표를 맡아 현장에 눌러앉았다. 그는 “철저히 비자발적인 귀농이었다”고 웃었다

다행히 위기는 1년 만에 수습이 됐고, 2014년 흑자로 돌아섰다. 지금은 두 곳의 농장에 있는 5개의 축사에서 7000여 마리의 돼지를 기르는 탄탄한 농업법인이 됐다.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고, 직원 자녀가 대학에 가면 장학금을 주며, 연말 서울의 고급 음식점에서 가족 동반 송년회를 하는 모습은 금융회사를 빼닮았다.

마을기업과 함께 탄소중립 농업으로

패시브 하우스 개념으로 지어진 성우농장 제2 축사 안 돈방. 이곳이 온도와 습도, 암모니아 농도는 자동으로 제어된다. 프리랜서 김성태

패시브 하우스 개념으로 지어진 성우농장 제2 축사 안 돈방. 이곳이 온도와 습도, 암모니아 농도는 자동으로 제어된다. 프리랜서 김성태

성우의 본 축사는 원천마을 동남쪽 끝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다. 농장 전면엔 축사 대신 회색의 커다란 저장탱크 3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천 에너지전환센터란 이름이 붙은 바이오플랜트다.

원천마을은 마을 회의체가 잘 발달한 곳이다. 중요한 마을 사업은 총회에서 결정한다. 2014년엔 마을발전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친환경 에너지타운과 바이오플랜트 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처음 바이오플랜트는 악취 제거가 목표였다. 농장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늘 송구스러웠던 이 대표가 제안했다. 분뇨를 모아 고형분과 액체로 분리한 뒤 액체를 저장탱크에서 발효해 메탄가스를 뽑아낸다. 이 가스로 발전기를 돌리고, 남은 암모니아는 액비로 만들어 마을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고형분 역시 퇴비로 활용하게 된다. 전 과정이 밀폐된 공간과 파이프를 통해 이뤄지다 보니 냄새를 거의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반대도 많았다.  이 마을 송영수(60) 이장은 “축산 분뇨를 모아 처리한다는 설명에 ‘똥 공장’ 들어서는 것 아니냐며 질색하는 사람도 있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먼저 플랜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남 양산 농가를 견학해 냄새가 거의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뒤 만장일치로 추진을 의결했다. 국가와 지자체 지원사업에 두 차례 도전한 끝에 농식품부와 홍성군 지원 사업을 따냈다. 자비와 지원금 110억원을 투자한 플랜트가 다음 달부터 가동되면 하루 110톤의 분뇨를 처리하며 시간당 최대 430㎾의 전기를 얻게 된다.

플랜트 준공을 앞두고 ‘협동조합 머내’라는 마을기업을 세웠다. 플랜트의 남는 열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난방비 걱정은 전혀 없으니 온실을 만들면 열대과일이 딱이다. 올 추수가 끝난 뒤 마을 사람들은 전국에서 소문난 시설원예 농가를 찾아다니며 재배할 작물 선정에 고심 중이다.

원천마을은 이제 탄소배출권 사업에 도전해보려 한다. 이미 플랜트에서 생산하는 전기량에 비례해 인근 서부발전에서 배출권을 받기로 계약했다. 전기 생산에 탄소 사용을 줄이고, 비료 생산과 폐기물 처리 때 나오는 온실가스 감축량을 국제기준에 따라 인증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을 경작지 일부에 벼 대신 빨리 크는 나무를 심어 배출권을 추가로 받을 계획이다. 송천균(56) 마을발전추진위 사무국장은 “아직은 낯선 구상이어서 반신반의하는 분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플랜트가 정상가동되고 마을기업에서 본격적으로 수익이 나면 새로운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넷 제로를 책상에서 아무리 고민해봐야 소용없다”며 “실제 살아가는 사람에게 수익이 나는 것을 보여주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논설위원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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