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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연욱의 미래를 묻다

금융·전자상거래 암호 풀기, 양자컴퓨터엔 식은 죽 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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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양자역학이 바꿀 세상

정연욱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

정연욱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

『쥐라기 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1999년 『타임라인』이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역시 영화로 제작된 이 소설에서는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당시 양자컴퓨터는 공상과학소설(SF) 속 상상의 대상이었다. 소설이 나온 지 정확히 20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구글은 학술지 『네이처』에 양자컴퓨터 개발과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구글·IBM 등 양자컴퓨터 개발 #슈퍼컴퓨터 1만 년 걸릴 계산 #단 200초에 풀어 젖히기도 #10년 후면 본격 상용화 전망

슈퍼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릴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을 단 200초 만에 해냈다는 내용이었다. 소위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을 처음 실증한 것이다. 그렇다면 드디어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온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과연 양자컴퓨터란 무엇인가’부터 한 번 살펴보자.

아인슈타인도 갸우뚱했던 양자역학

구글은 지난해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계산을 양자컴퓨터로 200초 만에 해냈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구글은 지난해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계산을 양자컴퓨터로 200초 만에 해냈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히든 피겨스’에는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이렇게 ‘계산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금의 컴퓨터란 0과 1의 디지털 신호를 이용해 엄청난 계산을 하는 기계다. 우리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기계가 돼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더 뛰어난 성능의 컴퓨터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면 디지털 컴퓨터가 ‘양자역학’이란 것을 만나 양자컴퓨터가 된 것일까. 답은 “아니오”다. 양자컴퓨터는 절대로 지금 컴퓨터의 연장선, 혹은 컴퓨터를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다. ‘디지털 컴퓨터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뭔가 다른 일을 하는 기계’라는 설명이 현실에 가깝다.

양자역학은 원자나 전자처럼 아주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설명해 주는 체계다. 동시에 직관적으로는 참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기도 하다. 입자이면서 파동이고, 0이면서 1이고, 유령 같이 뭔가 흐릿하고, ‘불확정성의 원리’란 것이 지배하는 애매모호한 세상이다.

무슨 소리인지 감이 안 잡힌다고 느낀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마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으니까. (그러면서도 아인슈타인은 양자 현상인 ‘광전 효과’로 노벨상을 받았다.) 양자역학이 설명하는 세계는 우리의 직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역학을 믿고 잘 따라가 보면, 그 수학적 체계 안에는 우리의 세상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IBM도 올 1월 CES에서 양자컴퓨터를 공개했다. [구글 홈페이지]

IBM도 올 1월 CES에서 양자컴퓨터를 공개했다. [구글 홈페이지]

양자컴퓨터는 이러한 양자역학적 원리로 작동하는 기계다. 원래 세상은 다 양자역학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양자역학 원리가 아닌 기계가 있을까만, 양자컴퓨터라 하면 특히 우리가 능동적으로 양자역학 현상을 제어하면서 작동시키는 기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양자컴퓨터가 잘하는 일들이 여럿 있다. 지금의 암호 체계를 풀어내 무력화하는 데는 거의 천하무적이다. 새로운 화합물을 설계하고 화학반응을 분석해 신약을 찾아내는 데도 최고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도로 네트워크에서 가장 효율적인 운송 방법을 찾아내는, 이른바 ‘최적화 풀이’에도 최적이다. 인공지능(AI)의 성능 개선 역시 양자컴퓨터가 활약할 분야다. 금융에서는 각종 파생상품과 위험 분석에 양자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크라이튼의 『타임라인』에서처럼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쓰는 디지털 컴퓨터의 정보 저장 기본 단위는 ‘비트(bit)’다. 양자컴퓨터에서는 이 기본 단위를 ‘큐비트(qubit)’라 부른다. 큐비트의 개수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한다. 이론적으로 큐비트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계산 능력이 두 배가 된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이게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큐비트 10개면 약 1000배, 20개면 100만 배, 40개면 1조 배가 된다.

지금은 IBM을 비롯한 여러 기업이 큐비트 수십 개짜리 초보적인 소규모 양자컴퓨터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구글이 발표한 양자컴퓨터는 큐비트가 53개였다.

양자컴퓨터 전문가가 부족하다

미국 벤처 아이온큐가 만든 양자컴퓨터 핵심 칩. [중앙포토]

미국 벤처 아이온큐가 만든 양자컴퓨터 핵심 칩. [중앙포토]

IBM 등은 자기네 양자컴퓨터를 누구나 쓸 수 있도록 공개했다. 인터넷을 통해 접속해 사용토록 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양자컴퓨터가 들어 있다. 하지만 큐비트가 수십 개인 현재의 양자컴퓨터는 규모가 작고 계산의 정확도도 제한적이다. ‘초보적인 소규모 양자컴퓨터’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아직은 장난감 수준”이라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IBM과 아마존이 공개한 양자컴퓨터는 ‘양자컴퓨터로 프로그램 만드는 법’ 같은 연구나 교육 목적으로 활용할 뿐, 암호 풀기처럼 실용적 응용을 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암호를 풀려면 큐비트가 수백만 개는 있어야 한다고 예상한다. 물론 지난 20여년간 양자컴퓨터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지금의 기술 수준과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실용적인 양자컴퓨터가 등장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는 시점은 아마도 앞으로 10년 혹은 그 이후일 것이다.

세계 각국은 최근 양자컴퓨터를 중심으로 양자기술에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발전 속도가 점차 둔화하고 기술의 한계점이 전망되는 시점이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양자기술은 일종의 돌파구다. 쉽지는 않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컴퓨팅과 양자역학의 세계를 다 이해하는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양자역학 아니었던가. 이를 디지털 컴퓨터 전문가가 새로 익히기를 기대하기는 난망이다. 어려서부터 양자컴퓨터 관련 과학기술 분야를 융합해 습득한 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이제 양자기술에 막 뛰어든 후발 주자다. 양자컴퓨터로의 거대한 기술 전환기에 패스트 팔로워로서 적절한 전략을 세워 접근해야 한다.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전문가에 의한 연구개발 체계 수립과 효율적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인력의 양성과 확보가 단기적으로 제일 긴요한 이슈일 것이다.

이제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양자컴퓨터 시대는 온 것인가.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으나 아직은 ‘초보적인 소규모’다. 강력한 양자컴퓨터의 등장이 결국은 가능하겠지만, 한참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래서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에도 기회가 열려 있다. 양자컴퓨터 시대를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한다.

양자컴퓨터, 엉뚱한 답 내놓기도

양자컴퓨터는 묘하다. 슈퍼컴퓨터가 1만 년 걸릴 계산을 구글의 양자컴퓨터가 200초 만에 해냈지만, “양자컴퓨터는 빠른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 곤란하다. 암호 풀기 같은 몇몇 분야에서는 탁월한데 다른 분야에선 한숨이 나올 정도여서다. 복잡하게 돌이 놓인 바둑판을 쓱 보고 반집 승부까지 맞추면서 거스름돈 계산에는 한참 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결코 프로기사분들을 폄훼하려는 뜻은 없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양자컴퓨터는 이른바 ‘양자 알고리즘’이란 것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훨훨 난다. 위에서 예로 든 신약 개발, 최적화 풀이 등이 바로 그런 분야다.

컴퓨터의 계산 속도를 좌우하는 ‘시스템 클락’이란 것을 봐도, 현재 양자컴퓨터는 노트북PC의 100분의 1 수준이다. 그래도 양자컴퓨터가 중요한 것은, 신약 개발처럼 어마어마한 경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분야에서 막강한 실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양자컴퓨터는 다른 약점도 있다. ‘신뢰도’의 문제다. 양자역학적 특성 때문에 똑같은 계산을 시켜도 어쩌다가 다른 답을 내놓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이런 에러를 없애는 기술이 필수다. 이 기술도 많이 발전해 현재 양자컴퓨터는 최소한 99% 이상의 신뢰도를 보인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에러를 찾아 바로잡는 것 역시 큐비트의 역할이다. 그래서 양자컴퓨터에는 계산하는 큐비트가 있고, 오류를 보정하는 ‘보조 큐비트’가 있다. 암호를 풀 정도의 양자컴퓨터에는 큐비트 수백만 개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그중 대부분은 오류를 찾아내 바로잡는 보조 큐비트다.

양자컴퓨터는 또 크기가 크다. 작은 방만하다. 극저온까지 온도를 낮춰야 하고 진동도 거의 없어야 해서다. 아주 먼 미래라면 모를까, 데스크톱 PC 수준으로 크기가 줄고 값이 싸질 가능성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양자컴퓨터는 지금의 PC처럼 집집이 놓일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잘하는 일은 몇몇 특정 영역에 한정됐다. 이런 점들로 인해 양자컴퓨터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디지털 컴퓨터와 함께하면서 디지털 컴퓨터로는 불가능한 계산을 도맡는 동반자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연욱 교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양자정보연구지원센터의 센터장이다. 또한 ‘초전도 범용 양자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독일 율리히연구소,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거쳤다.

정연욱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