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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교육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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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천인성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24부디렉터(EYE)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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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교육정책 중 지난 정부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무엇입니까?’ 3년 전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2000명을 설문한 ‘교육여론조사’의 첫 번째 문항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10가지 정책 중 1·2순위를 고르는 식이었다. 조사 결과 가장 많은 학부모가 1순위로 꼽은 건 ‘꿈과 끼를 키우는’ 자유학기제도, 국가장학금(‘반값 등록금’)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도 아니었다.

학부모가 선택한 ‘잘한 정책’ 1위는 초등 돌봄교실(27.7%)이었다. 맞벌이·저소득층 자녀에게 방과후 돌봄을 제공하는 돌봄교실은 ‘새 정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도 꼽혔다. 감염병에 시달린 올해, 같은 문항을 다시 물어도 마찬가지 아닐까. 4차례의 개학 연기, 원격수업 장기화가 빚은 돌봄 공백에 노심초사했던 맞벌이에겐 돌봄교실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요즘 돌봄교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달 초 하루 파업에 이어 다음달 8·9일 2차 파업이 예고된 상태다. 시간제로 고용하는 돌봄전담사를 8시간 전일제로 채용하라는 요구다. 하지만 밑바닥엔 교사, 학교, 교육당국과 돌봄인력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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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교실을 향한 교사, 학교의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교사가 안내문 발송, 수요 조사를 떠맡고 교장·교감이 노무 관리, 민원 대응을 맡게 되면서 불만이 커졌다. 이들의 생각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학교는 교육 기관이다’→‘돌봄은 교육이 아니라 보육이다’→‘따라서 돌봄은 학교, 교사 본연의 역할이 아니다’.

결국 교원단체들이 나섰다. 지난 5월 방과후 돌봄을 학교 업무로 정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지만, 전교조와 한국교총의 반대로 좌절됐다. 현재 교육부가 마련 중인 법안은 이들의 입장을 반영한 듯 학교는 공간만 제공하고 운영·관리는 지자체에 맡기는 내용이다.

학부모의 뜻에 얼마나 부합할지는 의문이다. 올해 교육부 초등돌봄 수요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희망하는 돌봄 서비스’로 학교 돌봄교실을 꼽았다. 지자체 아동센터같은 다른 보육기관이 좋다 한들 상당수 맞벌이에겐 ‘그림의 떡’이다. 하교시간이 이른 자녀를 그곳까지 데려다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10년 전 논란거리였던 급식이 필수 업무로 자리 잡고, 온라인 수업이 정식 수업으로 인정받은 것처럼 말이다. 학교가 교육과 보육, 복지가 통합된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도 시대적 요청일 수 있다. 교육부가 교육 수요자이자 납세자인 학부모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