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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녹자 드링크 만든 묘수…'국민 플라세보' 탄생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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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박카스D의 D는 드링크(Drink)라는 의미였다. 1991년 박카스F(포르테)로 리뉴얼되면서 단종됐다. 2005년 타우린 성분을 두 배로 늘린 제품이 나오면서 다시 박카스D를 제품명으로 쓰고 있다. 현재의 D는 '더블(double)을 뜻한다. 사진 동아제약

박카스D의 D는 드링크(Drink)라는 의미였다. 1991년 박카스F(포르테)로 리뉴얼되면서 단종됐다. 2005년 타우린 성분을 두 배로 늘린 제품이 나오면서 다시 박카스D를 제품명으로 쓰고 있다. 현재의 D는 '더블(double)을 뜻한다. 사진 동아제약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거 한 병 마시면 어쩐지 힘이 나는 것 같다. 1961년 9월 세상에 나온 박카스는 힘든 일을 할 때 반사적으로 생각나는 드링크제다. 힘든 일이 있는 노동의 현장에서, 수고한다며 부담 없이 건네게 되는 반(半) 음료수, 반 플라세보(僞藥)다. 그동안 에너지 드링크 등 수많은 경쟁 제품이 나왔지만, 여전히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표 피로회복제다.

[한국의 장수 브랜드] 67. 박카스

사고가 가져온 행운, 알약에서 드링크로 

61년 박카스의 탄생과 성장엔 '사고'와 '우연'이 얽혀있다. 당초 박카스는 정제, 즉 알약 형태로 출시됐다. 간에 좋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종합강간영양제(綜合强肝營養劑)’라는 설명을 붙인 뒤 제품 이름 찾기에 나섰다. 고심하던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은 독일 유학 시절 함부르크 시청 지하 홀에서 본 바쿠스(술과 추수의 신의 로마식 명칭ㆍ그리스 신화에선 디오니소스) 신상을 떠올렸다. 주당들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도록 도와주는 바쿠스를 브랜드로 택했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집단 회식 문화에 길든 한국인에겐 꽤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박카스 변천사. 자료: 동아제약

박카스 변천사. 자료: 동아제약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도 술로 상하기 쉬운 간장을 보호한다는 점에 맞췄다. 음주 전후에 박카스를 먹으면 간의 손상을 예방한다는 계몽과 함께 대대적인 샘플링 행사를 했다. 박카스 정의 한 달 매출이 100정 포장단위로 1만개까지 늘어나면서 동아제약은 순조로운 대박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듬해 봄, 따뜻한 날씨와 함께 난관이 찾아왔다. 박카스 정을 코팅한 당의가 녹아내린 것이다. 항의와 대량 반품사태가 이어지자, 연구소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을 개선했다. 하지만 녹아내리는 약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관계자들이 애를 태웠다.

위기 속에서 묘수가 나왔다. 동아제약은 고민 끝에 분위기 쇄신을 위해 박카스를 20cc 앰플 제로 내기로 결정한다. 주사제와 유사한 앰플에 ‘박카스 내복액’이라고 붙여 62년 8월에 재발매했다. 마실때 청량감이 좋았던 덕에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이번엔 파손이 잘 되는 앰플 용기가 문제를 일으켰다. 운반할 때 잘 깨지고, 소비자가 손을 다치는 등의 안전사고도 잦았다.

1년 뒤인 63년 8월 현재와 같은 드링크 타입의 박카스가 탄생했다. 지방간을 억제하는 이노시톨과 비타민 B6를 첨가한 뒤 타우린을 보강했다. 시음 행사를 여러 차례 해 최적의 맛도 찾았다. 부활한 박카스를 기존의 박카스와 구분하기 위해 ‘박카스D(드링크)’로 명명했다.

한병 값이 짜장면 한 그릇과 맞먹어 

출시 당시 박카스 한 병 가격은 40원, 짜장면 한 그릇 가격과 맞먹었다. 당시 물가와 비교하면 상당한 고가 음료였다. 이 약점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극복했다. ‘젊음과 활력을!’이라는 슬로건도 붙였다. 한국 전쟁 후 건강 상태가 최악이던 국민에게 ‘간을 건강하게 해주는 건강 지킴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전략이었다.

친숙한 맛 덕에 여러 협업 제품이 있다. 사진은 배스킨라빈스 박카스맛 아이스크림. 사진 동아제약

친숙한 맛 덕에 여러 협업 제품이 있다. 사진은 배스킨라빈스 박카스맛 아이스크림. 사진 동아제약

인기 코미디언 김희갑이 등장한 증언식 광고, 여성 소비자를 붙잡기 위해 배우 남미리가 등장한 광고 등으로 세분화해 소비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인기 외화 프로그램이었던 ‘전투(Combat)’ 방송 앞뒤로 한 독점 광고를 집행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64년엔 월평균 판매량 35만병을 기록했고, 이듬해엔 56만병으로 늘었다. 중간 도매상을 없애고, 약국에 직접 갖다 주는 소매 직거래를 하면서 공격적으로 유통망을 확보했다. 67년 박카스 판매가 4700만병을 찍으면서 동아제약이 제약업계 정상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카스는 동아제약이 2012년까지 46년간 제약회사 매출 1위를 지키게 한 일등공신이자 지금도 대표 제품이다.

63년부터 지난해까지 팔린 박카스는 총 219억병, 약 5조원어치에 달한다. 지금까지 팔린 병의 길이(박카스 한 병 길이 12cm)를 더하면 지구(지구 둘레 약 4만km)를 약 60바퀴 돌고도 남는다. 2015년에는 단일 제약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국내 매출이 20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약 3000억원을 찍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통 사람으로 시대상을 담는 캠페인       

늘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76년 정부는 오남용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자양강장 드링크류의 일반 대중 광고를 금지했다. 성장은 곧 둔화했다. 91년 박카스F(포르테)로 이름을 바꾼 뒤 맛이 변하면서 소비자 반응이 시큰둥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후 3년은 ‘박카스 암흑기’에 해당한다. 경쟁 피로회복제가 대거 출현했고, 광고가 가능했던 식품 드링크가 나와 시장 잠식도 본격화했다.

박카스는 93년 다시 한번 반전의 기회를 맞았다. 자양강장 드링크류의 광고 해금이 찾아온 것이다. 기존 드링크제 광고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휴머니티 광고를 전개했다. 묵묵히 음지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을 담은 ‘새 한국인’ 시리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는 카피로, 휴먼 스토리를 펼쳤다. 박카스F의 매출액이 94년 1000억원을 찍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97년까지 ‘버스종점편’, ‘환경미화원편’, ‘노사화합편’ 등 총 13편의 ‘새 한국인’ 시리즈가 연달아 나왔는데 아직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올해 선보인 박카스 광고 '회복 편' 사진 동아제약

올해 선보인 박카스 광고 '회복 편' 사진 동아제약

97년 외환위기가 시작되고 주력 박카스 소비층이던 30~50대 남성의 구매력이 떨어지자 동아제약은 젊은 소비자 잡기에 나선다. ‘지킬 것은 지킨다’라는 유명 카피가 이때 나왔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당시 외환위기 등으로 침체해 있던 사회 분위기를 젊은이들이 먼저 나서 활력을 불어넣어 보자는 공익적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자 했다”며 “단순한 상품 광고가 아닌, 시대를 반영하는 메시지로 젊은 층까지 타깃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선 뒤에도 현재까지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엔 박카스가 피로회복을 외치듯 환경과 지구도 회복시킨다는 의미의 ‘회복’편을 선보였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한국의 장수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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