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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왕따 자처했던 트럼프···시진핑 일생일대 기회 날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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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에게 지난 4년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평가다. 4년은 어떤 시기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기간이다. 어떤 기회인가. 트럼프의 ‘헛발질’로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을 기회다.

애틀랜틱은 이렇게 봤다.

“트럼프 집권 4년 동안 시진핑 주석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가졌다. 전 세계에 중국의 영향력을 확실하고 영구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그것도 미국이 쓴 비용으로 말이다.”

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취임 때부터 4년간 왕따를 자처해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리 기후변화협약, 세계보건기구(WHO) 등 미국이 활약한 국제기구에서 탈퇴했다. 동맹국엔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내라고 압박했다. 무차별 관세도 때렸다. 동맹국이 적대국 못지않게 미국에 반감을 가지게 됐다. 결정타는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 세계에서 감염자와 사망자를 가진 나라란 오명만 썼다.

중국의 코로나19 의료진이 파견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지난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과 함께 ‘시 형제 감사합니다’ 문구를 쓴 전광판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코로나19 의료진이 파견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지난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과 함께 ‘시 형제 감사합니다’ 문구를 쓴 전광판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중국은 역병 혼란에서 가장 먼저 회복했다. 이후 미국 대신 WHO에 예산을 지원하고 외국에 의료물품을 제공했다. 트럼프가 탈퇴한 TPP를 대신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만들어 국제 자유무역을 주도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에 전문가들 일부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중국의 시대’가 올 것이란 생각마저 했다. 전직 싱가포르 외교관 키쇼어 마부바니는 애틀랜틱에 “(트럼프 집권 후) 미국 워싱턴에선 외교가 사라졌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중국이 (미국에) 승리할 수 있을 충분한 (외교적) 공간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시진핑, 기회를 날렸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중국은 미국 못지않은 ‘비호감 나라’가 됐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6∼8월 한국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14개국 성인 1만 4276명에 설문조사를 했다. 10월에 공개된 결과에서 열에서 일곱명 꼴(73%)로 ‘중국은 비호감’이라고 답했다. 시 주석 평가는 더 안 좋았다. 78%가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

[퓨리서치센터 캡처]

[퓨리서치센터 캡처]

왜 그럴까. 애틀랜틱 분석은 이렇다. 중국은 팬데믹 와중에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한다며 선심을 썼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엔 여러 나라와 싸웠다. 미국 못지않게 으르렁댔다. 지난 6월 중국과 인도 국경에서 벌인 양국 군인 간 난투극으로 인도 군인 20여 명이 숨졌다. 인도에선 중국 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을 중국에 돌린다는 이유로 캐나다와 호주엔 수입 제한 조치 등 무역 보복을 감행했다. 홍콩보안법 통과로 영국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마스크를 쓴 아프리카인들이 지난 4월 중국 광저우의 아프리카 집단거주지역을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스크를 쓴 아프리카인들이 지난 4월 중국 광저우의 아프리카 집단거주지역을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4월엔 광둥성 광저우시 등에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차별 논란이 벌어졌다. 아프리카인이 다수 거주하는 광저우에서 흑인이 집주인으로부터 쫓겨나거나 맥도날드 등 상점에서 입장이 거부당했다. 주중 아프리카 대사들이 앞다퉈 중국 정부에 항의를 했다.

[퓨리서치센터 캡처]

[퓨리서치센터 캡처]

중국 외교관이나 언론인은 요즘 “중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 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게 애틀랜틱 평가다. 심지어 “호주는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다 만 껌처럼 느껴진다(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장)”는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이른바 ‘늑대 전사 외교’다.

애틀랜틱은 중국이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거다. 중국은 아직 미국만큼의 문화적 매력을 국제사회에 어필하지 못한다. 소프트파워가 없다고 어렵게 말했지만, 결국 멋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인심까지 잃었다는 뜻이다.

왜 중국은 거칠게 행동할까.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9일 베이징에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9일 베이징에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 외교의 방점이 국제가 아닌 국내에 과도하게 쏠려있기 때문이다. 보니 글레이저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국내에서의 정치적 안정성과 정당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5년에 나온 영화 ‘전랑(戰狼·Wolf Warrior)’은 짙은 애국주의적 색채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세련되고 은유적인 화법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사’로 부른다. [사진 바이두바이커]

2015년에 나온 영화 ‘전랑(戰狼·Wolf Warrior)’은 짙은 애국주의적 색채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세련되고 은유적인 화법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사’로 부른다. [사진 바이두바이커]

애틀랜틱은 “중국 공산당은 외국 침략자에 당하던 중국이 자신들의 영도하에 세계 무대에 다시 일어섰다는 내러티브를 만들었다”며 “외교 분쟁에서 유독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외세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면 집권 정당성이 약해진다고 보는 거다. 최근엔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속된 말로 ‘말발’이 외국에 잘 먹힌다. 무역보복과 같은 행동으로 상대국을 다그친다. 이런 기류는 시진핑 주석 집권 후 더 강해졌다.

어쨌든 트럼프의 4년은 지나갔다.

[애틀랜틱 캡처]

[애틀랜틱 캡처]

중국에 좋은 기회는 사라졌다. 이제 조 바이든이 이끄는 미국이 온다.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 일성이 “미국이 게임(국제 외교)에 돌아올 것이다” 였다. 그래서일까. 시 주석은 “쌍순환은 폐쇄경제가 아니다” “중국은 해외 국가들과 함께 성장할 것” “중국은 자유무역을 추구한다” 등 요즘 들어 부쩍 유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외세 침략 내러티브’를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10월 말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시 주석은 “중국의 참전은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정의의 싸움”이라고 정의했다.

트럼프 때와 달라질 미국이다. 시진핑의 중국, 이제 국제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갖게 될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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