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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인감도장은 가고, 프로토콜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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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김문수’s Token Biz] 일본 기업들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재택근무를 쉽게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도장 문화가 꼽혔습니다. 더구나 일본 직장인들이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 대표이사를 향해 마치 절을 하는 듯한 모양으로 기울여 찍는 관례가 흥미롭게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역시 인감도장과 서류 중심의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백억원 이상의 부동산 계약을 할 때에도 인감도장에 인주를 묻혀 빈 종이에 꾹 찍어 본 후 사람의 눈으로 인감증명서와 대조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상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1. AI앞에서 인감도장의 효력은 언제까지?

인감도장의 진위를 판단함에 있어서 사람의 눈은 AI(인공지능)에 비해 얼마나 정확할까요? 그리고 갈수록 정밀해지는 AI의 성능 앞에서 인감도장 제도는 언제까지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요? AI가 만든 가상의 얼굴 사진과 진짜 사람 얼굴을  비교해서 맞추는 퀴즈 사이트를 방문하면 진짜 사람 얼굴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생성적 적대 신경망)이라고 불리는 AI 알고리즘은 ‘매우 진짜 같은 모조품 생성기’와 ‘모조품을 정밀하게 감별하는 판별기’를 서로 치열하게 경쟁시켜, 매우 정밀한 수준의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냅니다. GAN 알고리즘은 사람의 육안으로 구별하지 못하는 가짜 인감 도장을 매우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인감증명서의 유효 기간도 근거가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관공서, 금융 기관들은 발급일로부터의 6개월 이내의 인감증명서를 요구합니다. 6개월로 정한 기준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국가의 검증기관에서 부여한 신뢰가 6개월 후에는 사라지는 것일까요? 정부민원안내 콜센터에 의하면, 인감증명서에 관련된 법률은 인감증명서 효력의 기한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로 알려진 기간은 인감증명서의 유효기간이 아니라 위임장의 효력기간일 뿐입니다.

2. 프로토콜: 데이터 교환의 규칙과 약속

인감도장이 종이로 된 계약서를 주고 받는 약속이라면, 프로토콜(Protocol)은 데이터를 주고 받는 규칙과 약속입니다. 탈중앙화된 환경에서 참여자들이 공정하게 보상받는 규칙이 담긴 프로토콜을 통해 커뮤니티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시스템을 프로토콜 경제(Protocol Economy)라고 합니다. 프로토콜 경제는 블록체인 산업 태동 초기에 자주 등장하던 단어입니다. 탈중앙화된 플랫폼의 철학에 먼저 눈을 뜬 개척자들은 프로토콜 경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며 설득해 왔습니다. 하지만, 백서에 비해 실행력의 준비가 덜 된 ICO 초창기 프로젝트들과 투기적 거품으로 인해 프로토콜 경제를 통해 진지하게 파괴적 혁신의 성과를 내는 사례는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현대자동차와 배달의 민족 경영자를 만나 프로토콜 경제를 직접 소개하고 전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박 장관은 “프로토콜 경제의 핵심은 탈중앙화이며 현재의 플랫폼들은 지나치게 중앙집중화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는 “앱 내에 토큰을 만들어서 거래하면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며 토큰이라는 단어를 공식 사용하였습니다. 블록체인 초기 사업가들이 외쳤던 내용들입니다.

3. 프로토콜 경제를 구현한 흥미로운 사례

프로토콜 경제를 통해 인감도장 없이 거래할 수 있는 부동산 투자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한국의 카사라는 기업은 부동산의 소유권을 토큰을 통해 나누어 가지는 부동산 증권 플랫폼을 블록체인 상에 구현했습니다. 수만명이 가입한 이 플랫폼에서는 인감도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업용 건물의 소액 투자에 참여하고 소유한 지분을 사고 팔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음악 저작권을 투자하고 거래할 수 있는 뮤직카우라는 서비스도 음악 저작권에 특화된 프로토콜 경제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빅뱅, 아이유, 윤미래 등 유명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팬들에게 자신의 저작권 중 일부를 내어 놓고 있습니다. 팬들은 인감도장을 계약서에 날인하지 않고도 음악 저작권을 경매로 획득하고 매매할 수 있습니다.

썸씽은 코인 없는 코인 노래방입니다. 썸씽은 아날로그 코인이 아닌 디지털 코인으로 작동합니다. 전통적인 노래방에서는 소비자가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썸씽에서는 노래를 잘 부르면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네티즌들의 후원금을 토큰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썸씽은 칭찬과 보상에 특화된 프로토콜 경제를 통해 노래에 재능있는 분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4. 프로토콜 경제의 매력: 연결성과 확장성

프로토콜 경제 기반 서비스는 연결성과 확장성에서 매우 큰 장점을 가집니다. 프로토콜 경제는 디파이(DeFi)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로 연결됩니다. 기업의 전통적인 포인트는 별도 계약을 맺지 않는 한 국제적으로 호환되지 않지만, 기업이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발행한 토큰은 전 세계를 상대로 마케팅 활동을 유통될 수 있습니다. 즉 기업은 프로토콜의 연결성을 타고 기업의 잠재 시장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범용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고 프라이빗 프로토콜을 쓰더라도 다른 프로토콜과의 전략적인 결합을 통해 다른 플랫폼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썸씽은 한국에서는 카카오 클레이튼 프로토콜을 채택해 시장에 안착한 후, 일본에서는 라인 프로토콜과 결합해 시장에 진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썸씽은 한국에서 검증한 노하우와 보상의 모델을 일본의 네이버 라인 프로토콜과 결합함으로써 손쉽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응용하면 배달의 민족이 프로토콜 경제를 통해 한국에서 소상공인들의 수수료 절감의 해법을 찾으면, 배달의 민족이 진출한 베트남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메커니즘을 적용해 보다 더 빠른 성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프로토콜 경제와 디파이를 전략적으로 연동하면 전 세계에 판매된 현대자동차들의 운전자 보상 프로그램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아날로그 경제에서 한국 기업들의 국제화와 해외 진출의 중심에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활약이 있었습니다. KOTRA가 해외 곳곳에서 중요한 노드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 디지털 국제 경제에서는 어떤 프로토콜이 KOTRA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합니다.

김문수 aSSIST 경영대학원 부총장 및 ABC MBA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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