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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방대법원 "방역보다 종교자유"…트럼프 '대못' 위력 드러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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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은 25일(현지시간) 뉴욕주의 예배 인원 제한 조치에 대한 소송에서 종교계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에는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왼쪽)의 후임으로 임명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은 25일(현지시간) 뉴욕주의 예배 인원 제한 조치에 대한 소송에서 종교계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에는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왼쪽)의 후임으로 임명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AF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방역 조치보다 종교활동의 자유가 우선이라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보수 성향으로 기운 연방 대법원의 판도가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주 예배인원 제한 조치에 종교계 소송 #대법원 "감염병에도 헌법이 밀리면 안 돼" #5대 4 판결에 신임 배럿 대법관이 결정적 #트럼프, 소식 반기며 "즐거운 추수감사절!"

특히 이번 판결에는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공화당이 다수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상원과 함께 대법원이 차기 바이든 행정부의 '트럼프 정책 뒤집기' 시도에 결정적 변수로 등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방대법원의 이날 결정은 뉴욕주의 방역 강화 조치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가을 들어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자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종교행사 참석자 수를 제한했다. 위험지역(레드존)은 10명, 덜 위험한 지역(오렌지존)은 25명까지 모일 수 있게 했는데, 가톨릭과 정통파 유대교 측에서 이 행정명령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그리고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로 종교계의 손을 들어줬다.

연방대법원은 "감염병 사태에서도 헌법이 뒤로 밀리거나 잊혀서는 안 된다. 예배 참석 규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대법관 9명의 의견은 5대 4로 갈렸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대법관 6명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제외한 모두가 종교활동의 자유에 더 무게를 뒀다.

과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살아있을 때도 네바다와 캘리포니아에서 비슷한 소송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4대 5로 종교계의 소송이 기각됐다. 하지만 배럿 대법관이 후임으로 들어오면서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무너졌고, 판결도 뒤집어졌다고 CNN 등 외신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은 "교회에 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전히 와인숍이나 자전거 가게는 가고 있다"며 다수 의견을 옹호했다. 반면 소수의견을 낸 로버츠 대법원장은 "치명적인 팬데믹 기간 동안 공공의 안전을 위해 보건 당국이 내린 결정을 뒤집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가운데)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코로나19 관련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쿠오모 주지사는 코로나19 대응 방식을 놓고 자주 날카롭게 부딪쳤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가운데)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코로나19 관련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쿠오모 주지사는 코로나19 대응 방식을 놓고 자주 날카롭게 부딪쳤다. [EPA=연합뉴스]

대법원의 결정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응을 내놨다. 평소 쿠오모 주지사와 대립각을 세웠던 그는 트위터에 판결 소식을 전하며 "즐거운 추수감사절!"이라고 적었다. 미국 내 코로나19로 인한 하루 사망자 수가 2000명에 이르면서 추수감사절을 앞둔 보건당국의 경고가 잇따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히 '거리 두기'나 '모임 자제' 등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25일 성명을 통해 "모든 미국인이 우리가 받은 축복에 대해 신께 감사드릴 수 있도록 가정과 예배드릴 수 있는 곳에 모이기를 장려한다"고 밝혔다. 모임이나 여행을 자제하며 "서로를 지키자"고 호소한 조 바이든 당선인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실제로 정치 성향에 따라 미국인들이 이번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3~23일 사이 전국 15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추수감사절 동안 가정 이외의 다른 곳에서 식사할 거란 응답이 27%였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같은 답변을 한 비중은 지지 정당에 따라 차이가 컸다. 공화당 지지자의 경우 34%가 그러겠다고 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 중 같은 답변을 한 경우는 22%에 그쳤다.

주별로도 루이지애나·오클라호마·사우스캐롤라이나·앨라배마 등에서 가정 외 다른 곳에서 식사할 거란 응답이 30% 이상으로 높았는데 이들 포함, 상위 14개 주가 모두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곳이다. 반면 바이든 후보가 승리한 뉴멕시코·하와이·버몬트·워싱턴 등에선 같은 응답이 20% 전후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다.

사마라 클라 애리조나대 교수(정치학)는 NYT와 인터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지도자들의 분열된 메시지가 지지자들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추수감사절 계획에도 이런 추세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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