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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조 예산안의 절반, 두 남자 손에…‘호텔방 심사’ 오명 벗나

중앙일보

입력

16일 예결위 소위 회의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간사(오른쪽)와 국민의힘 추경호 간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16일 예결위 소위 회의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간사(오른쪽)와 국민의힘 추경호 간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555조 8000억원 ‘슈퍼 예산’ 심사가 마지막 문턱에 섰다. 국회 예산안 조정소위(예산 소위)가 23일 1차 감액 심사를 마치면서, 나머지 보류 예산안은 ‘소(小)소위’로 불리는 여야 3인 협의체로 넘어갔다. 사업 예산 570건 중 211건이 보류됐는데, 국회 관계자는 “보류된 예산은 전체 예산안의 절반에 달한다”고 전했다.

협의체 구성원은 예결위원장인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당 간사 박홍근 민주당 의원, 야당 간사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다. 다만 정 위원장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향후 전체적인 감액 내역 등만 살핀다. 세부 협의는 간사들 몫”이라고 말했다. 정부 예산안 556조원 중 절반의 운명을 놓고 두 간사는 국회 모처에서 예산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간 소소위는 ‘깜깜이’ ‘짬짜미’ 예산 심사의 온상으로 불려왔다. 회의 속기록도 전혀 남기지 않는 데다가, 민원성 ‘쪽지 예산’이 소소위에 쏟아져서다. 2013년 예산안 심사 당시에는 ‘호텔방 심사’라는 오명도 썼다. 당시 예결위 간사인 김학용 새누리당 의원, 최재성 민주통합당 의원은 여의도 한 호텔방에서 예산 4조원을 증액시켰는데, 호텔방엔 민원 쪽지 수천 건이 쏟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소위원회의. 23일 예산소위의 1차 감액심사가 종료되면서, 보류 예산안 심사는 여야 간사 협의 테이블로 넘어갔다. 오종택 기자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소위원회의. 23일 예산소위의 1차 감액심사가 종료되면서, 보류 예산안 심사는 여야 간사 협의 테이블로 넘어갔다. 오종택 기자

이번 예산 국면에서 여야는 “쪽지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상임위 의결 등 사전 절차를 거치지 않은 증액이나 신규 예산 반영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정성호 위원장은 “이달 들어 기관 등에서 ‘쪽지 예산을 넣겠다’며 신규 사업을 가져오는 일이 있지만, 이는 금지돼 있다”며 “쪽지 예산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예산소위 위원도 “올해도 여러 곳에서 쪽지가 들어온 게 사실이지만, 예산에 반영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무늬만 다를 뿐 민원성 예산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앞서 여야는 ‘예결위 요청사업’이란 명목으로 정부 예산안에 없던 신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133건(약 1조 7000억원 규모)의 예산 반영을 요구했다. 예결위원 50명이 지역구의 철도·교통 사업 등을 요구한 것인데, 광주 송정역 KTX 역사 증축(200억원), 부산 부전역~마산역 복선전철 구간 전동열차 도입(255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쪽지 예산과 ‘의원 요청사업’은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고 지적했다.

국회 예결위원장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 정 의원은 국회 예결위원들의 SOC 사업 반영 요구에 대해 "정부 예산은 옳고, 국회의원 요구 예산은 틀렸다는 건 잘못된 전제"라고 했다. 뉴스1

국회 예결위원장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 정 의원은 국회 예결위원들의 SOC 사업 반영 요구에 대해 "정부 예산은 옳고, 국회의원 요구 예산은 틀렸다는 건 잘못된 전제"라고 했다. 뉴스1

그간 국회 예산 조정소위 '소소위' 회의는 쪽지 예산의 온상으로 불렸다. 여야는 "이번 예산 심사에서는 쪽지 예산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중앙포토

그간 국회 예산 조정소위 '소소위' 회의는 쪽지 예산의 온상으로 불렸다. 여야는 "이번 예산 심사에서는 쪽지 예산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중앙포토

이에 대해 정성호 예결위원장은 통화에서 “정부가 마련한 예산은 옳고, 국회 의원이 요구하는 예산은 틀렸다는 건 잘못된 인식”이라며 “오히려 정부 예산안은 지역 주민들이 진짜 원하는 사업이 누락되기도 하는데, 현장에서 주민들과 접촉하는 의원들이 사업 필요성을 더 잘 안다”고 주장했다. 예결위원들의 SOC 사업 반영 요구에 대해선 “예전엔 예결위에서 논의조차 된 적 없는 예산이 쪽지로 끼어들었지만, 이제는 의원 요구 사업 내역이 공개돼 투명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야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예결위원들 요구는 각 당 검토를 거친 사업들로, 은밀하게 오갔던 ‘쪽지 예산’과는 거리가 멀다”며 “다만 문제가 있는 정부·여당 사업은 철저하게 감액하겠다”고 말했다.

보류된 예산안은 대부분 여야 입장 차이가 큰 것들이다. 국민의힘은 21조3000억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예산을 절반 이상 삭감하고, 통일부 예산과 정부 홍보성 예산을 깎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이 띄운 3차 재난지원금(약 3조 6000억원)도 협상 변수로 떠올랐다. 국민의힘은 뉴딜 예산을 깎아 재난 지원금으로 돌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국채 발행으로 본예산을 순증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보류 예산안 심사가 마무리되면, 예결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한다. 예산안 의결 법정 시한은 12월 2일이다.

손국희·하준호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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