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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나이 처먹은 게 무슨 자랑이냐" 말했다면 모욕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36)

옛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가 인간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속담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말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감정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잘못된 말로 인해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말’과 관련된 대표적인 범죄로는 ‘명예훼손죄’ 또는 ‘모욕죄’를 들 수 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명예훼손과 모욕에 관한 범죄는 2만8885건,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도 7594건에 달했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사건까지 합치면 실제 사건 수는 위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말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감정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사진 pxhere]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말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감정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사진 pxhere]

형법에서는 ‘공연히 사실(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명예훼손죄)’하거나 ‘공연히 다른 사람을 모욕(모욕죄)’한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일명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또는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한다.

위 규정에 ‘공연히’ 또는 ‘공공연하게’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연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명예훼손과 모욕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범죄가 성립하기 위한 ‘공연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간단하게 살펴본다.

명예훼손과 모욕의 차이

어떤 경우는 명예훼손이 되고, 어떤 경우는 모욕이 되는 것일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하였는가에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모욕죄에서 말하는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실을 들면서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말을 하였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단순히 추상적인 판단이나 감정에 관한 말만 했다면 모욕에는 해당할 수 있지만 명예훼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듣기에 기분 나쁜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모욕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표현이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정도는 되어야 모욕에 해당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은 개개의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경우에 명예훼손이 되고, 어떤 경우에 모욕이 되는 것일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하였는가에 있다. [사진 pxhere]

어떤 경우에 명예훼손이 되고, 어떤 경우에 모욕이 되는 것일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하였는가에 있다. [사진 pxhere]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가 관리소장의 외부특별감사에 관한 업무처리에 항의하기 위해 관리소장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관리소장과 언쟁을 하다가 “야, 이따위로 일할래” “나이 처먹은 게 무슨 자랑이냐”라고 말한 사안이 있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위와 같은 발언은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저속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관리소장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 교사가 중학교 교무실에서 어떤 학생을 두고 “부모가 그런 식이니 자식도 그런 것이다”라는 말을 한 사례에서도 법원은 그와 같은 표현으로 인해 상대방의 기분이 다소 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너무나 막연해 그것만으로 곧 상대방의 명예감정을 해쳐 형법상 모욕죄를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공연성’이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모두 ‘공연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공연성’이 인정될 수 있을까.

대법원에서는 공연성에 대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즉 실제로 다른 여러 사람에게 전파되었는지가 아니라 ‘전파될 가능성’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해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본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하는 경우는 매체의 특성상 아무래도 공연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공연성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우선, 상대방에게 그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을 한 경우 공연성이 부정된다. 대법원에서도 어느 사람에게 귀엣말 등 그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사람 본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사실을 이야기하였다면, 이 이야기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없어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설사 그 사람이 들은 말을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였더라도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피해자의 가족 등 피해자와 특별한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말해도 ‘공연성’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진 pxhere]

어떤 사람이 피해자의 가족 등 피해자와 특별한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말해도 ‘공연성’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진 pxhere]

하지만 개인 블로그의 비공개 대화방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비밀을 지키겠다는 말을 듣고 일대일로 대화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공연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즉, 개인 블로그의 비공개 대화방에서의 일대일 비밀대화라 하더라도 무조건 공연성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고 대화자 사이의 관계, 대화 당시 상황, 대화 이후 상대방의 태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과연 상대방이 대화 내용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다.

한편 어떤 사람이 피해자의 가족 등 피해자와 특별한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말해도 ‘공연성’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와 특별한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해자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들었더라도 그 내용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명예를 훼손할 만한 말을 한 상대방이 피해자의 배우자나 자녀인 경우 피해자와 동업관계 내지 사업관계로 친한 사이에 있는 사람인 경우, 피해자의 친구인 경우 공연성이 부정된 사례가 있다.

이상 ‘말’로 인한 대표적인 범죄인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다들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요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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