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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침묵으로 명령한 文···검찰 목 물어뜯었다” 조은산 첫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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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시무7조' 필명 조은산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 기자

지난 24일 '시무7조' 필명 조은산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 기자

“검사는 검(劍)을 잃어 정처 없고, 판서(법무장관)는 왕의 졸개로 전락하니 법치는 수치가….”

지난 10일 진인(塵人) 조은산은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을 빗댄 ‘형조실록’이란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현실이 글을 따라간 걸까. 추 장관은 윤 총장을 매섭게 몰아쳤고, 검찰총장은 일손을 멈췄다. 대통령은 침묵했다. 갈등은 점입가경, 결말은 오리무중이다.

조은산이 이렇게 현실정치를 꼬집기 시작한 건 지난 7월부터다. ‘다치킨자 규제론’을 시작으로 ‘김현미를 파직하라’, ‘시무 7조’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연달아 올렸다. 그는 공손한 말투로 매섭게 붓을 휘둘러 정부 실정을 지적했다. 40만명 넘게 청원에 동의했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조은산의 물음에 답을 내놓기 바빴다.

아이 둘 가진 평범한 30대 샐러리맨인 조은산은 왜 ‘21세기형 상소문’을 올리며 현실 정치에 훈수를 두는 걸까. 지난 24일 중앙일보 상암 사옥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조은산은 잠을 잘 못 잤는지 눈이 빨갰다. 평범한 인상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직접 나선 건 처음이다.

논객 조은산이 처음 밝히는 ‘시무7조' 비하인드와 다양한 이야기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인터뷰 안 한다고 공언했는데.

필부(匹夫)가 대중과 익명으로 소통하는 데 한계를 좀 느꼈다. 와이프랑 상의해서 용기 냈다.  
전공이나 직업은 뭔가.
전공은 글쓰기랑 상관없다. 대학도 한 학기 다니다 관뒀다. 직업은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냥 ‘공기’ 같은 직업이다. 길거리 보면 “어, 저 사람 저기서 저거 하네?”, “어 여기도 있는데, 저기도 있네?” 이런 평범한 월급쟁이다.  
조금 더 힌트를 준다면.
안 된다. (단호)
필명 조은산(Good Mountain)은 무슨 뜻인가.
아명(兒名)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지어주려던 이름이다. 형은 ‘조은강’(Good River)이다.
반어·비유·고어체 등 글을 잘 쓴다.
글은 취미로 썼다. 따로 배운 적은 없다. 만화 삼국지 읽을 나이인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서 이문열씨가 쓴 ‘삼국지’를 선물로 사주셔서 책을 끼고 살았다. 그게 영향이 있었을까.
청원 글 이야기해보자. 처음 쓴 게 ‘다(多)치킨자 규제론’이다. 쓴 배경은.
솔직히 말하면 ‘다치킨자 규제론’은 화가 나서 술 마시고 쓴 글이다. 부동산 정책 때문에 형의 이사 계획이 무산됐다. 그래서 화가 났는데 글이 또 비공개 처리돼서 더 화났다. 치킨 브랜드 노출(명예훼손)을 이유로 비공개 처리한 건 납득할 수 있지만 그다음 글도 비공개 처리됐고 그래서 또 썼다.
(청와대가) 어떤 의도로 본인 글을 비공개 처리했다고 생각하는지.  
‘김현미를 파직하라(2차 상소문)’를 비공개 처리한 건 의도가 있다고 느꼈다. 글 쓴 사람만 아는 건데, 글을 올리니 ‘검토 중’이 떴다. 주소를 입력해야 글을 찾아볼 수 있었고 관심이 줄어들 때쯤 바로 비공개 처리됐다. ‘정권에 반하는 청원 글은 이렇게 없어지는구나’ 싶어서 ‘시무 7조(3차 상소문)’를 또 썼다.
조은산이 올린 청원에 대한 답변 완료됐다. [청와대 국민소통 홈페이지]

조은산이 올린 청원에 대한 답변 완료됐다. [청와대 국민소통 홈페이지]

시무 7조는 40만 명 넘게 동의받았다.  
청와대 대답이나 들어보자는 생각에 썼다. 40만명이 동의할 줄 몰랐다. 내가 누군지 알려질까 두려웠다. ‘밥그릇’이 깨질까 걱정됐다. ‘어느 직장 상사가 조은산을 부하로 두고 싶겠나’란 두려움이 컸다. 와이프도 무서워했다.
시무 7조에서 대통령에게 ‘정치는 백성과의 싸움이 아니라 백성을 뺀 나머지 것들과의 싸움’이라고 전했다. 요즘 문 대통령은 누구와 싸우고 있나.  
대통령은 지금 누구와도 안 싸운다. 투견들만 싸운다. 주인은 가만히 구경만 한다. 대통령도 목소리를 내야 할 땐 내야 한다. 뒤에 숨어선 안 된다.
누가 투견인가.
다들 알지 않나. 부동산 정책실패로 국민 목을 문 사람과 사법개혁 빙자해 검찰 목을 문 사람.
윤석열 총장에 직무정지 명령 내려졌다. 문 대통령은 알고도 묵묵부답했다고.
침묵이 때론 많은 걸 설명한다. 대통령 명령과 다름없다.  
정세균 총리는 “추 장관이 사법개혁 잘하고 있다”고 했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가 사법개혁 핵심인데, 이건 입법부가 주축이 돼서 할 일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법무장관이 검찰개혁을 위해 뭘 할 수 있거나, 해도 되는 자리인지 모르겠다.
추미애(左), 윤석열(右)

추미애(左), 윤석열(右)

시무 7조는 쓰는데 얼마나 걸렸나.
쓰는 데 보름 걸렸다. 직장 다니고, 퇴근하면 아이랑 놀아주면서 써야 해서 오래 걸렸다.
글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
없는 사실을 만들거나, 확인되지 않은 걸 감히 꼬집는 건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
글이 길고 어렵다거나, 과시적·현학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읽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다. 내가 그렇게 썼다는 뜻이다. 마땅히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나만의 스타일로 글 쓰고 싶은 욕심도 있다. 잘 타협해야 하지 않을까.
글 쓸 때 특별히 기억남은 에피소드 있나.
회사 서류에 이름 쓰다가 나도 모르게 본명 대신 ‘조은산’이라고 몇 번 썼다.  
‘인터넷 뒤에 숨어서 조선시대 놀이하느냐’는 비판도.
비겁한 게 맞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 합리화일 수도 있는데, 시민 입장에서 익명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더 진짜에 가깝지 않나. 인터뷰에 나선 것도 이런 비판이 조금 신경 쓰여서다. 비겁함을 덜고 싶은 마음에서.
정치 눈독 들인 적 있나.
전혀 없다. 난 내가 쓴 글에 자부심이 강하다. 30대 애 아빠로, 평범한 월급쟁이로, 이런 글 쓴다는 데 자부심이 있다. 그런 제의가 들어올 리도 없겠지만, 글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헛된 욕심 안 부린다.
정치성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했다고.
노 전 대통령 좋아했지만, 굳이 따지면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여당 정책에 일부 찬성한다고 진보도 아니고, 여당 비판한다고 보수는 아니지 않나. 요즘엔 야당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긴 한다.
요즘 여당 지지하다가 돌아선 사람들 이야기 보고 ‘뻔하고 지겨운 레퍼토리’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노무현 지지하다 민주당 비판하면 그럴듯하다. 지겹다고 말하기 전에 그 ‘지겨운 레퍼토리’가 왜 생겼는지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나.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으니까.
글 보면 부동산 정책 비판이 많다. ‘임대차3법’을 ‘토사물3법’이라고 표현했다.
(부동산 정책은) 모든 게 다 문제다. ‘계산’ 대신 ‘청산’이 정책 목표다. 부동산 정책은 파급효과나 상관관계를 잘 계산해야 하는데, ‘다주택자는 적폐고 청산대상’ 이런 생각에 사로 잡혀있다. 결국 무주택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지금(전세난)은 아무것도 아니다. 한 2~3년 후 전셋값이 감당될까 싶다.
얼마 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미래주거추진단장)은 “방 3개 임대주택, 내가 사는 아파트와 차이 없다”고.
서른살부터 4년 동안 빌라촌에 살며 출퇴근했다. 주차 고민에 매일 퇴근길이 스트레스였다. 주차 자리 찾느라 집 근처에서 30분을 헤맸다. 겨우 주차해도 불안했다. 집에서 술 한 잔도 마음 편하게 못 마신다. 차 빼달라고 전화 올까 봐. 그때 집도 방은 3개였는데, 그러면 살기 괜찮은 건가. 서민들도 학군·교통·주변 환경·편의시설 필요한데 따져보면 안 되나. (진 의원) 보도된 사진 보니까 집 구조만 훑던데 그러면서 무슨 서민의 주거 질을 논하나. 배부른 부르주아의 섣부른 자비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미래주거추진단장이 24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숲에리움' 행복주택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미래주거추진단장이 24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숲에리움' 행복주택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임대주택 필요하지 않나.
집값 안정이 먼저다. 그래야 임대주택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임대주택은 잠시 거쳐 가는 정류장이다. 집값이 천정부지인데 ‘임대주택으로 주거복지 실현됐다’고 말하면 결국 평생 임대주택에서 살라는 건가. 내 집 마련 꿈꾸면 안 되나. 내가 사는 집에서 쫓겨나는 것도 주거 불안정이지만 살고 싶은 곳에 못 사는 것도 또 다른 주거 불안정이다.
임태주 시인 비롯해 여럿과 논쟁을 벌였다.
임태주 시인과 글을 주고받으면서는 정말 행복했다. 멋진 글을 보냈다고 느꼈다. 나와 생각이 달랐지만, 글이 정말 아름다웠다. 논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희숙 의원에게 ‘주 52시간제 걸리면 더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이건 ‘쉬고 싶은 자유’와 ‘더 일하고 싶은 자유’가 부딪히는 문제다. 문제는 사람들이 일 자체가 좋아서 일을 더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거다.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돈을 더 벌고 싶단 뜻이지. 그래서 윤 의원에게 ‘이런 욕심을 법으로 막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윤 의원 답변대로 결국 월급을 줄어들 거다, 일 욕심도 못 채울 거고.
홍남기 부총리 답은 아직 못 들었다.  
들은 거나 마찬가지다. 답변이 없지 않나. 본인도 주 52시간제 확신이 없는 거라 생각한다. 다른 여권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전태일 정신을 모독하지 말라’고 호통만 쳤지. 본질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청래, 박진영 등 기성정치인과 논쟁 부담 없었나.
그분들 말이 너무 잔인했다. 그래서 굳이 끼어들었다. 박 부대변인이 진중권 전 교수를 두고 언급한 ‘예형’은 목이 잘려나간 인물 아닌가.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진 교수 그러다 (예형처럼) 죽어’ 이런 거다. 정청래 의원은 금태섭 의원 탈당하면서 덕담 한마디 건네줄 수 있는데도 비꼬는 듯한 글을 썼다. 그래서 못 참고 글을 썼다.
원래 화끈한 성격인가.  
반항심이 좀 있다. 불의를 보면 잘 못 참고.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나.
맞다.
사람들이 본인 글에 관심 갖는 이유 뭘까.
정치가 너무 팍팍해서. 항상 비슷한 정치인들이 특유의 말투로 비슷한 말을 주고받으니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또 마음껏 비판할 공간도 줄어드니 이런 방식이 주목받는 게 아닐까. ‘개콘’도 폐지됐다.
일상도 지키고, 글도 계속 쓰고 싶은 눈치인데.
내 글로 화가 조금 풀렸다는 분들도 계신다. 또 본인 사연 들려주며 대신 글 좀 써달란 분도 계신다. 스스로 발은 들였지만 이런 분들이 또 내 발길을 잡아끈다. 물론 나도 언젠간 잊히고 사라진다. 대중의 관심이 그렇지 않나. 그래도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까진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글 쓰면서 지킬 것과 포기할 것은 뭔가.
지킬 건 내 가족. 포기할 건 나 자신. 모든 가장이 다 그렇게 살지 않나.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장정음·김지수·윤세현·최경헌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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