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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송승환의 “버티고 버텨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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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년 전 이맘때다. 명동에서 그를 만났다. 송승환. 배우로 불리길 원하지만, 교수·연출가·문화 CEO로 더 많이 불리는 이름.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옆으로 봤다. 망막 시세포가 가운데부터 죽어가면 그렇게 된다고 했다. 그는 “시력 장애인들이 왜 사람을 옆으로 보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2년 전 망막 이상…시력 거의 잃어 #꼭 다시 서고 싶다던 무대에 선 날 #“견디고 또 견뎌서 여기까지 왔다”

그해 3월쯤부터였다고 한다. 그가 필생의 작업,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무사히 끝낸 직후였다. 처음엔 과로 때문인가 했다. 아니었다. 휴식도 소용없었다. 그는 어두워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붙잡으려 매달렸다. 세상의 내로라하는 의사들을 다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가 들은 답은 “알 수 없다”였다. 이유도, 치료법도 모른다. 제일 답답한 건 “언제 완전히 세상이 닫힐지, 그 날짜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당시 대체의학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사실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지만 “그것마저 안 하면 할 게 없어서 한다”고 했다.

그는 세상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다. 그래서 더 힘들다고 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해 먼저 인사할 수 없다. 그는 핸드폰 글자를 키우는 법이며, e메일을 음성으로 듣는 법을 배웠다며 짐짓 어린아이처럼 재미있어 했다. 케이블TV로 영화를 보고 싶은데 요즘은 더빙 영화가 별로 없다며, KT에 민원을 넣어야겠다고도 했다. 어두우면 더 안 보여서 갖고 다닌다는 손전등이 얼마나 환한지 비춰 보여줬다.

그는 그때 한 가지 소원이 생겼다고 했다. 자기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대에 꼭 한 번만 다시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늘 밝고 여유 있던 그는 세상의 빛과 멀어져 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밝았다. 그래서 나는 더 슬펐다.

2년이 흘러 지난 월요일 밤. 나는 그를 다시 봤다. 정동극장 무대에서다. 그는 연극 ‘더 드레서’의 노(老)배우 역을 열연했다. 다시는 설 수 없을 줄 알았던 무대여서였을까. 손짓·발짓·몸짓 하나하나 혼신의 힘이 담긴 듯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마음이 짠했다. 이 작품은 그가 직접 골랐다.

무대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영국 런던. 독일군의 공습으로 시민의 삶은 혼란과 암울뿐이던 시절. 포화 속에도 이어진 연극 공연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삼류 극단의 극단주인 노배우는 “살면서 처음으로 미래가 나한테서 도망쳐버린” 그날, 마지막 혼신의 연기를 하고 죽음을 맞는다. “가끔 내 얘길 해줘. 배우는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니까”라며.

나는 송승환이 왜 이 작품을,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를 공연작으로 골랐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시력이 좋아져서 무대에 다시 선 게 아니다. 어느 날 시력 악화가 멈췄다. 지난해 말이었다. 그에겐 기적 같았다. 매일 작아져 가던 세상이 더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그걸로 충분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그는 잠시 울먹였다. 그는 “다시 못 설 줄 알았던 무대에 다시 서게 됐다” “여러분의 염려와 기도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고 했다. 그가 연극 속 대사 “이 암울한 세상, 힘든 시절을 버티고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땐 그가 ‘견디고 또 견뎌낸’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지금이 그에겐 인생 최악의 시절일지 모른다. 개인뿐만이 아니다. 회사(PMC 프로덕션)도 버티기에 들어갔다. 97년부터 이어 온 난타 공연도 올 초 중단했다. 그런 그가 독일군의 공습에 떠는 공포의 세상을 무대에 불러냈다. “포연 속에서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며. 팬데믹에 떨고 있는 요즘 세상은 그때의 공포를 실시간으로 소환한다. 그래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 그렇게 그는 이 힘든 세상, 암울한 시절에 자신의 길에서 살아가는 법, 살아남는 법을 세상에 전했다. 나는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30년지기가 던진 화두에 대답해야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