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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중앙일보

입력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일까." 요즘 가장 핫한 래퍼 머쉬베놈의 킬링 벌스(Killing Verse, 인기 구절)이다. 자본시장에서 요즘 가장 핫 이슈인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빅딜을 보면서 이 킬링 벌스가 자꾸만 떠오른다.

빅딜을 두고 사회 각계 각층이 그야말로 시끄러워서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왕상한 서강대 로스쿨 교수 등 학계는 물론 경제개혁연대·경제민주주의21 등 시민단체, 이용우·박용진·민병덕·민형배·송재호·오기형·이정문 등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국회의원, 한진그룹 주주들까지 나서서 빅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산업은행이 '항공업 구조조정의 시급성'이란 명분을 내세우며 잠재우려 해보지만 그럴수록 잡음은 더 커진다.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일까. 딜의 핵심인 '한진칼의 산업은행에 대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 때문이다. 3자배정 유증의 대상부터가 문제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항공업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정작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유증을 한다. 이유를 묻자 "대한항공에 증자하면 지주사인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율이 떨어져서"라고 답한다. 항공업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에서 사기업의 지분율을 산은이 왜 걱정해줄까.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일까.

3자배정 유증이란 방식도 문제다. 산은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 있는 한진칼에 3자배정 유증을 단행하면서, 지분율이 희석되는 피해를 입을 기존 주주들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자금 수요가 긴급해서"란다. 3자배정 유증은 한달이면 끝낼 수 있는데 기존 주주들이 참여하는 주주배정 유증은 2~3개월이 걸린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아시아나항공의 인수주체 대한항공은 대대적인 주주배정 유증을 통해 내년 3월 12일 인수자금을 모집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중앙포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중앙포토

이 복잡하고 뜻 모를 딜 구조가 엉뚱하지만 명확히 효과를 내는 데가 있다. 내년 3월 한진칼 주총이다. 산은이 한진칼에 긴급한 3자배정 유증을 하면, 산은은 내달 22일 한진칼 지분 10.66%를 얻게 된다. 그 뒤 주주명부가 폐쇄돼, 내년도 주총에서 이른바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KCGI 측이 법원에 한진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까닭이다.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언론과 사회 각층에서 이런 지적이 빗발치자 산은이 보인 반응이다. 항공업 구조조정이 시급한데 왜 이리 시끄럽게 구느냐는 타박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KCGI의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긴급자금 투입이 무산된다. 연내 파산을 피할 수 없다. 항공산업 전체가 붕괴된다(한국경제 인터뷰)", "후폭풍에 대해 고민하고 법원이 잘 헤아려 판정해주길 바란다. 빅딜 무산 시 책임을 져야 한다(파이낸셜뉴스 인터뷰)"고 말하거나 "우리 국익을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생각으로 기사를 써달라(19일 간담회)"고 압박한다.

KCGI를 향해서는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 공격에 나섰다. 이동걸 회장은 "KCGI는 항공업 미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롯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사냥꾼의 면모를 스스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이 딜을 깨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역시 사모펀드의 한계는 못 벗어난다(파이낸셜뉴스)"고 말했다. 한진칼은 KCGI에 대해 "투기 세력의 욕심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생존이 위기에 처했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항공산업 재편까지 발목이 잡힐 위기"라고, 대한항공 노조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두고 이를 막아보려는 투기자본 KCGI"라고 공격했다. 딜로 인한 잠재 피해자를 딜을 깨기 위한 가해자로 전환하는 전형적 '프레이밍'이다.

산은과 한진칼의 주장대로 이 딜에 숨은 절차적 문제점을 우리 사회는 조용히 덮고 넘어가야 하는 걸까. 양대 항공사 통합이 사실상 정부 방침이고, 한진칼·대한항공 이사회 의결까지 이미 끝난 확정적 결정이라고는 한들 그런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딜 구조를 짠 이들은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고 다그칠 게 아니라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일까'를 자문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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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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