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딧불이면, 마라도나는 태양…태권축구 아니면 못막아"

중앙일보

입력 2020.11.26 11:03

업데이트 2020.11.27 00:07

아르헨티나의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 심장마비로 향년 60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에서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거칠게 수비하는 모습.[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 심장마비로 향년 60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에서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거칠게 수비하는 모습.[연합뉴스]

“내가 반딧불이라면, 마라도나는 해와 달 같은 선수였다. 선수 능력은 그 정도 차이가 났다.”

허정무가 추억하는 마라도나
"86월드컵 발에 공이 붙어다녀
그래도 우리랑 할때 가장 못했다
메시와 우열 가리기 힘들지만
가히 수퍼스타, 천재는 마라도나"

허정무(64)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이 신의 곁으로 떠난 ‘신의 손’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를 애도했다. 마라도나는 현지시간 25일 60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허 이사장은 26일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어제 저녁 늦게 (창원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올라왔다. 아침 일찍 씻고 있는데 지인이 전화로 마라도나 소식을 전해줬다”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아직 많지 않은 나이인데 일찍 타계했다. 한 때를 풍미한 세계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데…운동장에서 다투긴했지만, 인연도 인연이고. 제 마음이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진심을 애도하고 싶다”고 했다.

허 이사장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 한국-아르헨티나전 당시 마라도나를 전담 마크했다.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걷어차는 장면이 사진에 찍혀 화제가 됐다. 아르헨티나가 3-1로 이긴 이 경기 직후 세계 언론은 “허정무가 축구 대신 태권도를 했다”며 ‘태권축구’라는 별명을 붙였다.

허 이사장은 “사진에 공이 나오지 않아 억울한 측면도 있다. 당시 드리블 과정에서 공이 떠있는 상태였다. 공 없는 상황에서 찼다면 퇴장이지만 옐로카드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 대회에서 마라도나가 원맨쇼를 펼친게 눈에 아직도 선하다. 발에 공이 붙어 다녔다. 생고무처럼 퉁퉁 튀는 탄력이 있었다”면서 “우리가 상당히 거친 축구를 했다. 그렇게 안하면 막을 수 없는 선수였다. 개인적으로 잡을 수 없었다. 상대를 두려워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허 이사장은 “그래도 위안이 됐던건, 마라도나가 우리랑 할때 가장 못했다. 골도 못넣었다”고 했다.

2010년 6월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마라도나와 허정무 감독의 모습. 이 두감독은 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24년만에 감독으로 다시 대결했다. [연합뉴스]

2010년 6월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마라도나와 허정무 감독의 모습. 이 두감독은 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24년만에 감독으로 다시 대결했다. [연합뉴스]

허 이사장과 마라도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땐 사령탑으로 맞대결을 펼쳤다. 24년 만에 월드컵에서 맞대결이었는데,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맞붙었다. 허 이사장은 “선수 때는 고무처럼 탄력 넘쳤는데, 지도자로 재회하니 마치 두부처럼 몸이 불어있었다. 격세지감이었다. 지도자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우리와 경기를 앞두고 ‘한국이 거친축구(태권축구)를 한다’고 심리전을 펼쳤다. 간접적으로 심판을 압박하는 수를 썼다. 감독으로도 승부사 기질이 탁월했다”고 했다. 조별리그 B조에서는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1-4 완패를 당했다. 곤살로 이과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했고, 메시의 드리블과 돌파를 막지 못했다. 이청용이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쳤다.

마라도나는 2017년 3월 20세 이하 월드컵 조추첨을 위해 방한했다. 마라도나는 14일 수원 화성행궁 앞 광장에서 진행된 5대5 미니축구 경기에 출전했고,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였던 허정무는 무릎이 안 좋아 미니축구에는 나서지 않았다. 허 이사장은 날 기억하는 것 같기도하고, 형식상 인사하는 것 같기도 했다”며 웃었다. 이어 “이렇게 훌륭하고 뛰어난 선수도 은퇴 뒤 사생활이 중요하다고 새삼 느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선수들에게 몸관리를 잘해야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마라도나는 은퇴 후 약물, 알코올, 비만 등 여파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2010년 6월 7일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공식 훈련에서 아르헨티나 감독인 마라도나가 리오넬 메시의 드리블을 바라보는 모습.[연합뉴스]

2010년 6월 7일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공식 훈련에서 아르헨티나 감독인 마라도나가 리오넬 메시의 드리블을 바라보는 모습.[연합뉴스]

허 이사장은 선수로 마라도나, 감독으로 메시를 상대해봤다. ‘마라도나와 메시 중 누가 더 위대한 선수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허 이시장은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선수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김정우가 메시를 마크했다. 끝나고 정우에게 물어보니 ‘경기 전에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해보니 그냥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볼을 가졌을 때 정말 빠르더라’고 하더라. 둘 다 섬세하다. 파워풀만한 점에서는 마라도나가 앞선다”고 했다.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 선수인가’란 질문에 허 이사장은 “역대 최고선수를 꼽는다면 펠레도 있고, 푸스카스, 크루이프, 마라도나, 가린샤, 보비 찰튼, 에우제비오, 플라티니 등 수도없이 많다. 마라도나는 인상 깊은 선수 중 한명이다. 펠레는 이전 세대라 느껴보지 못했지만, 난 크루이프, 마라도나, 베켄바워와 직접 부딪혀 본적이 있다. 난 운이 좋은 선수 중 한 명이다. 이 중 가히 축구계에서 스타를 넘어 수퍼스타, 천재라 표현된 선수는 마라도나였다”고 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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