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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협회 엉터리 부수 인증…“신문·디지털 통합지수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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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ABC협회의 일간지 부수 공사(公査) 결과의 신뢰성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공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내부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ABC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공사 작업을 직접 해본 사람이라면 이 조사가 엉터리임을 안다”며 “유가율(발행부수 대비 유료부수 비율)이 80%만 넘어도 모범 지국으로 평가받는데, 90% 넘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협회가 이를 알면서 발표를 강행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 신문 90%대 유가율은 불가능 #이성준 회장 취임 뒤 조사 불투명” #내부 직원 잇단 증언에 문체부 조사 #발행부수 줄어도 유료부수 늘기도 #이 회장 “협회 규모는 구멍가게 #여론조사도 100% 맞는 것 아니다”

실제 ABC협회의 부수 순위는 연간 1만명을 면접 조사해 발표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리서치(HRC) 구독률 결과와는 차이가 현격하다.

ABC협회의 주무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조사에 들어갔다. 김근호 문체부 미디어정책과장은 25일 “조사를 위한 자료 요청 공문을 오늘 중 ABC협회에 보낼 것”이라고 했다. 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신문 유료부수 공사 결과는 광고 단가 등에 영향을 끼친다.

신문 지국 “협회서 30분 조사하고 끝”

ABC협회에서 발표한 A, B 신문사 인증 부수

ABC협회에서 발표한 A, B 신문사 인증 부수

앞서 지난 9일 문체부 미디어정책과에는 “ABC협회 공사 결과는 신뢰성을 잃었고 공사 과정은 불투명해 구성원으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태”라는 내부 진정서가 접수됐다. 진정서엔 “2020년(2019년도분) 공사 결과 A신문은 95.94%, 2019년도(2018년분) 공사 결과 B신문은 93.26%의 유가율을 보였다”며 “현실에서 나올 수 없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ABC협회 공사 결과에 따르면, A신문 발행부수는 5년 전인 2014년의 167만3049부보다 27.5% 줄어 121만2208부를 기록했지만 유료부수 감소 폭은 10.2%(129만4931부→116만2953부)에 그쳤다. B신문은 발행부수(24만4830부→21만4832부)가 줄었는데도 유료부수(19만8931부→20만343부)는 증가했다.

일선 현장의 지국도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서울 은평구의 한 지국 대표는 “공사원이 와서 컴퓨터를 열어보고 수금 여부를 살펴보는데 30분~1시간이면 끝난다”며 “심지어 가상의 독자를 만들어 그 돈을 입금하면 본사에서 돈을 넣어주는 신문사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조재영 청운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현 ABC제도는 광고계에선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ABC협회 이사로 인증위원회에 참여하는 곽혁 광고주협회 상무는 “지금의 인증 시스템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독자명부, 수금내역 등 유료부수 산정 기준이나 근거를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표본 지국 선정에 대한 정보도 없어 특정 매체에 우호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BC협회 내부에선 특히 2015년 이성준 현 회장 취임 이후 공사 과정이 불투명해졌다고 얘기한다. 한 관계자는 “과거 부수공사 보고는 ‘공사팀원-공사팀장-사무국장-부회장 및 회장’으로 진행됐는데, 이 회장 취임 후 ‘공사팀원-공사팀장-회장’으로 압축됐다. 결과 확정에 이 회장의 입김이 강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2월 임기 후 고문으로 추대돼 부수공사를 계속 관장하려 한다는 얘기도 돈다”고 했다. ABC협회 박용학 사무국장은 “이 회장 취임 후 시스템이 바뀐 것은 맞다”고 했다.

양적 평가 인증 시스템 개편 목소리

인증 부수 신뢰성 논란에 휩싸인 ABC협회의 이성준 회장.

인증 부수 신뢰성 논란에 휩싸인 ABC협회의 이성준 회장.

ABC협회 이성준 회장은 12일 기자를 만나 “ABC협회의 규모는 구멍가게 수준이다. 전수조사가 아니라 몇 명의 공사원이 샘플로 얻는 수치라서 실제와 다른 오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도 100% 다 맞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현재 ABC협회의 공사원은 22명이다. 이 중 회장 등 간부를 제외한 16명이 175개 일간지를 비롯한 1113개 매체를 실사하고 있다. 이 회장은 또 “의도적인 부수공사 왜곡은 말도 안 된다. 문체부에서 이를 조사한다면 얼마든지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적인 평가만으로 이뤄지는 부수 인증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재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ABC제도는 사실상 영향력을 잃었다. 이제 신문 발행 부수가 의미 있는 시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광고대행사 플랜미디어의 권오범 대표는 “뉴욕타임스 등 해외 유력지들이 100만부 넘게 판매해 권위를 갖게 된 게 아니다. 독자층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기존 TV시청률 조사에 스마트폰이나 IPTV 등의 시청률을 합산, 통합시청률을 산정하는 것처럼 신문도 종이신문 구독율과 온라인에서의 소비를 합산하는 형태의 측정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혁 광고주협회 상무도 “이미 미국에선 오프라인 부수와 온라인 페이지뷰를 함께 산정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다”며 “이사회 차원에서 ABC협회 지도부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s) 제도

신문·잡지의 부수를 실사를 거쳐 확인하고 공개하는 제도. 1989년 설립된 한국ABC협회는 협회의 부수 인증을 받은 매체만 정부광고를 게재할 수 있다는 정부 훈령이 2009년 제정된 이후 본격적인 공사 업무를 해왔다. 신문 부수 인증은 협회 공사원들이 각 신문사의 표본 지국을 방문 조사해 산정한 유가율을 토대로 발행부수와 유료부수를 정하고, 이를 인증위원회에서 인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성운·편광현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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