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숭배하는 종교도…'축구의 신' 마라도나, 60세에 신의 곁으로

중앙일보

입력 2020.11.26 03:27

업데이트 2020.11.26 09:33

마라도나

마라도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숨졌다. 향년 60세.
AFP 등 외신들은 25일(현지시간)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티그레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두부 외상 후에 출혈이 생겨 뇌수술을 받고, 1주일만인 11일 퇴원했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펠레와 더불어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 전설적인 축구 스타다. 펠레는 '축구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그에게는 '축구 악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거침없는 언행과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5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다. 잉글랜드와 8강전에서는 마라도나의 손을 맞고 들어간 게 골로 인정됐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없던 시절엔 곧잘 있던 일이다. 경기 후 마라도나는 "신의 손에 의해 약간, 나머지는 머리로 넣은 골"이라고 인터뷰했다. 그 이후 '신의손'은 마라도나를 따라다니는 닉네임이 됐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바로 5분 뒤 하프라인부터 상대 수비수 6명을 제치고, 골키퍼 마저 쓰러뜨린 뒤 넘어지며 골을 터트렸다. 그 골은 지금도 축구 역사상 가장 멋진 골로 평가받곤 한다.

2010년 6월, 아르헨티나 감독 시절. 연합뉴스

2010년 6월, 아르헨티나 감독 시절. 연합뉴스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조별리그에서 우리나라와도 싸웠다. 허정무는 진돗개처럼 마라도나를 물고 늘어졌다. 한국의 거친 태클을 그는 태권도에 비유해 비난했고, 태권 축구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골을 넣지 못했지만 아르헨티나는 3-1로 승리했다. 한국의 한 골은 박창선이 넣었다.

198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마라도나(왼쪽)와 한국 박창선(오른쪽). [사진 대한축구협회]

198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마라도나(왼쪽)와 한국 박창선(오른쪽). [사진 대한축구협회]

허정무-마라도나, 중앙포토

허정무-마라도나, 중앙포토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남 4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빈민가에서 빛나는 축구 실력을 뽐낸 그는 아르헨티나 노스 주니어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6세에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를 거쳐 클럽에서는 보카 주니어스, FC 바르셀로나, SSC 나폴리, 세비야 FC 등에서 뛰었다.

마라도나-한국팀과 보카주니어스팀 경기

마라도나-한국팀과 보카주니어스팀 경기

마라도나가 가장 굵은 족적을 남긴 팀은 이탈리아의 나폴리다. 마라도나가 입단하기 전까지 나폴리는 우승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이류 팀이었다. 하지만 마라도나가 뛴 후 점점 성적이 올라 1987년에는 사상 첫 리그 정상에 올랐다. 1989년 나폴리는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을 차지했고, 1990년에도 다시 리그에서 우승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도 신처럼 추앙받고 있다.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떠난 후 아직 리그 우승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나폴리에서 188경기에 출전해 81골을 터트렸던 것을 포함해 클럽에서 491경기에 출전해 259골을 넣었다.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1979년 세계청소년 월드컵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국가대표로는 1977년부터 1994년까지 91경기에 출전해 34골을 터트렸다. 아르헨티나에서 마라도나를 잇는 스타는 단연 리오넬 메시다. 하지만 리오넬 메시는 마라도나와 달리 아직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지 못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아랍에미리트 알 와슬, 알푸자이라에서 감독을 맡았지만 선수 때와는 달리 큰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2008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에 올라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사령탑을 맡았지만 8강에서 독일에 0-4로 패했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리고 있는 '축구화가'라고도 불리는 우희경 작가. 박진호 기자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리고 있는 '축구화가'라고도 불리는 우희경 작가. 박진호 기자

그라운드에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했던 그는 일상생활에서는 충동적인 사고뭉치였다. 나폴리에서 뛰던 1992년에는 코카인 복용이 밝혀져 15개월 동안 자격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뛸 때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나중에 이탈리아 입국 때 고가의 시계와 보석을 압류당하기도 했다. 자신의 별장까지 쫓아와 취재하던 기자에게 공기총을 쏴 법정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의장, 후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반미주의자이기도 하다.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신적인 존재다. 아르헨티나에는 실제로 그를 숭배하는 마라도나교가 존재한다.

마라도나 노년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마라도나 노년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당신은 우리를 세계의 가장 높은 지점으로 이끌었고, 지극한 행복을 선사했다. 당신은 모든 것 중 최고였다. 우리와 함께해 감사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조의를 표했다.

펠레는 "분명히, 언젠가 하늘 위에서 우린 함께 공을 차게 될 것"(“Certainly, one day we’ll kick a ball together in the sky above”)이라고 동료의 죽음을 기렸다.

이해준·홍수민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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