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바이든, 한국에 기대도 요구도 많이 할 것

중앙일보

입력 2020.11.2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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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미국 대선 4일 후 맞은 토요일, 마스크를 쓴 채 황금빛 은행나무가 우거진 워싱턴 거리를 걷다 조 바이든의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순간 기쁨보다 안도감이 압도했고 다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살아남았고 투표율은 사상 최고였습니다. 자원봉사자를 기반으로 하는 이 거대한 나라의 선거 인프라는 팬데믹과 정치 문제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운영됐습니다. 결과는 미국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명확했습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전체 득표와 선거인단 득표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미국 민주주의 실험은 살아남아
바이든, 트럼프와는 달리
동맹·가치 공유 중요시 여겨
대북한 ‘전략적 인내’ 회귀는 기우

미국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경제적인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끝까지 승복하지 않고 규범을 방해하는 중입니다. 앞으로 대통령 취임식까지 많은 위험이 나라 안팎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미국 공화당 의원보다 많은 해외 정상들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발빠르게 연락을 취한 민주주의국가 리더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정상의 첫 통화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 직전 한국 언론에 보낸 기고문에서 한·미 동맹과 재미 한인사회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일 당선인으로서 필라델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방문했을 때도 같은 메시지를 반복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직면한 수많은 국내외 문제들을 감안했을 때 한국과 바이든은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는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십을 바로잡고 안심시켜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걸 우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바이든은 미국이 주도권을 재확보하거나 공유하기를 바라며 다자주의를 옹호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보호 같은 가치가 다시 의제로 다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국제 신뢰 회복은 반드시 자국내 쇄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바이든주의는 한·미 관계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에 있어 바이든 행정부와 전·현직 공무원들은 부담을 분담하는(바이든의 표현에 의하면 착취하는) 부끄러운 트럼프식 접근을 내려놓고, 합의에 이르길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주요 20개국(G20), 유엔 등의 무대에서 기후변화 문제부터 고차원적 국제 무역 규범을 마련하는데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나 보안 같은 새로운 기술을 위한 프로토콜과 보호 방침을 마련하는데 기술적 역량과 정치적인 의지를 제공할 것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한 실질적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동맹국 간에도 신중한 경청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국내 상황과 지정학적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 단일 강대국 세계에선 대접받지 못하던 접근법입니다. 미국은 앞으로 격식을 차린 합의보다 ‘단품(a la carte)’식 접근을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무게를 둘 것입니다. 그리고 개선하도록 독려할 것입니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동맹과 가치 공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한국에 더 많이 요구하고 더 많이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중 경쟁의 궤적을 감안하면 이는 한국에게 있어 피하고 싶은 선택에 내몰릴지 모른다는 해묵은 불안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한국은 바이든 정부에 나름의 희망과 기대를 가질 것입니다. 북한은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한·미 양국은 서로 선호하는 정책에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검증되지 않은 미완성 정책이지만 말입니다. 초기에 회담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선 바이든이 오바마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거나 북한 문제를 등한시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지만 이는 기우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정책을 검토하는 동안 한국과 북한은 약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한·미 두 나라의 대통령은 깊은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에 놓인 공통 과제에서 협력의 기틀을 만들기 위해 긴밀히 협의해야 합니다.

오늘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최근 저와 60~70년대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한 미국인들은 감사할 일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생존팩’이라는 예상치 못한 우편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한국산 마스크 100장, 은젓가락, 인삼 맛 사탕, 부채 등이 한지로 아름답게 포장돼 있었습니다. 우리의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영상이 담긴 USB도 있었습니다. 제 SNS엔 당시 봉사단원이었던 60~70대들의 뜨거운 반응이 올라왔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 우리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그대를 분명히 기억합니다!’

한국, 평화봉사단을 기억해 줘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국,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말했듯 ‘더 나은 재건’을 위해 미국과 협력할 준비를 해줘 감사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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