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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연상시키는 가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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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영남권 신공항 건설과 새만금 개발사업은 선거의 단골 메뉴다. 대선·총선·지방선거를 가리지 않는다. 역사도 오래됐다. 새만금은 1987년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선 후보의 공약부터 본다면 33년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34㎞짜리 방조제 물막이 공사는 1991년 시작됐다. 요즘엔 동남권 관문공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영남권 신공항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업 검토를 지시한 2006년을 기준으로 하면 14년, 그 이듬해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내 건 시점부터 보면 13년이다.

10조 예상 가덕도공항 특별법 추진 #표만 보고 경제성 검토는 말자는 것 #30년째 공사중 새만금 되풀이 안돼

1997년 2월 새만금 개발사업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환경오염, 새로 만들어질 땅의 용도, 사업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질 때였다. 바다를 막을 방조제를 쌓기 위해 돌과 흙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먼지를 휘날리며 오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물막이 공사, 부지 조성 등에 그간 7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지만, 새만금은 아직도 ‘현실의 땅’이 아니라 ‘미래의 땅’이다.

새만금에서 지난 24일 정세균 국무총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송하진 전북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하나 열렸다. ‘새만금 동서도로 개통식’이다. 새만금 내부 개발을 위한 첫 핵심 인프라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동서도로는 새만금 방조제와 전북 김제시 진봉면을 잇는 20.4㎞ 왕복 4차선 도로다. ‘핵심 인프라’가 만들어졌다지만 새만금이 애초 약속한 ‘황금의 땅’이 되려면 갈 길은 아직 멀다. 정부의 새만금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 전체 개발면적(291㎢)의 73%가 매립돼야 하지만 현재 매립이 완료되거나 진행 중인 면적은 40% 수준에 불과하다.

서소문 포럼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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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덕도 신공항 추진은 새만금을 떠오르게 한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초대형 공사를 지역 유권자에 내민다. 지역발전, 문재인 정부가 잘 쓰는 말로는 ‘균형발전’을 앞세운다.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후 더불어민주당과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국민의힘 일부 의원은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일 기세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야 하는 입지조건에서 10조원에 이르는 비용까지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검증 결과를 왜곡했네, 아니네 하는 얘기만 난무한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까지 나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 제정을 말한다. 특별법 제정이란 게 말은 그럴싸하지만, 요지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없이 빨리 공항 건설에 나서자는 거다. 세금을 귀하게 여긴다면 10조원짜리 공사를 하면서 경제성 검토를 건너뛰자고 말할 수는 없다. 새만금처럼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 없이 덜컥 시작했다가 돈만 퍼붓는 걸 막기 위해 1999년 도입된 게 예비 타당성 조사 제도다. 남북교류협력 등 예외가 있긴 하지만,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사업은 대상이 된다.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 발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데 핵심은 경제성 평가다.

경부고속도로의 성공 신화는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자주 사용된다. 국책 사업의 목적이 좋다면 어떤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추진하는 이른바 ‘결정-공표-집행’(DAD)방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의견 수렴이 부족해졌을 뿐 아니라 타당성 검토가 미흡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규모 국책사업에 있어 경제적 타당성이나 환경성 평가 검토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국책사업표류와 정책 혼선’, 한국경제연구원).

예비 타당성 검토를 거쳐도 예산 낭비로 결론 나는 사업이 수두룩한데 예타까지 면제해 주는 건 선심성 정책, 포퓰리즘이다. 균형발전을 위해 가덕도 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다. 공항이 없어서 균형발전을 못 한 건 아니다. 전국 수십 개 공항이 적자투성이다. 혁신도시 조성, 공공기관 이전, 거점 국립대 육성을 비롯해 균형발전 정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먼저 제대로 해야 한다.

공항이 필요하면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10조원대의 돈이 들어가는 공항사업은 사업성을 철저히 따져본 후 해도 늦지 않다. 진짜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될 수 있다. 새만금 동서도로 개통식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동서대로 양쪽 대부분은 땅은 없고 깊은 물만. 그 넓은 망망대해를 메꿀 때까지 건설회사, 관련 기관은 대대손손 먹고 살겠쥬….’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 없이 표만 잡으려 가덕도 공항을 덜컥 시작했다가 새만금 꼴 날 수 있다.

염태정 사회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