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정재의 퍼스펙티브

“스물네 번이나 실패했으면 이젠 복기할 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호거(호텔에 사는 거지)’에 이어 ‘벼락 거지’란 말까지 나왔다. ‘호거’는 19일 빈 상가·호텔의 주거용 전환을 담은 전세대책을 내놓으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반응이 좋다”고 하자 “그렇게 좋으면 장관부터 살아보라”며 나온 말이다. ‘벼락 거지’는 “이 정부 말을 믿고 집값 내릴 때를 기다리다 집값이 3년 새 몇억씩 뛰는 바람에 갑자기 다시는 집을 살 수 없게 (벼락 거지가) 됐다”며 벼락부자에 빗댄 비아냥이다.

부동산을 정치로 보고 힘으로 눌러 #실패 지적엔 “국민이 틀렸다” 훈계 #하나 있던 시장 친화적 정책도 폐기 #서민·중산층부터 곡소리나도 “노답”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각종 여론조사의 부정 평가 단골 1위가 부동산이다. 정부·여당이 부동산 대책을 내놓거나 부동산 관련 언급을 할 때마다 국민 반응은 차갑다 못해 싸늘할 정도다. 문 대통령이 3년 내내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 “우리 정부에서 전·월세 가격은 아주 안정돼있지 않습니까” “주머니 속에 대책이 많다”고 한 말들은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래도 여전히 정부·여당은 오불관언 “내 길을 간다”다. 요즘은 한술 더 떠 국민의 머릿속까지 고치려 한다.

김현미 장관의 “전세난, 임대차 3법 때문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말은 그렇다 치자.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의 “전세 시장 제도 변경에 따른 일시적 영향은 감내하고 참아줘야 한다”는 말이나 윤성원 국토부 1차관 “임대차 3법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아 넘어야 하는 성장통”이란 주장은 국민에 대한 훈계나 다름없다. 더불어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장인 진선미 의원이 20일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훨씬 다양한 주거의 형태가 가능하다”고 한 말은 국민에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라”던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소환했다. 덕분에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모든 국민이 강남 살 필요는 없다”는 말도 다시 회자한다. 실패한 정책을 고치기는커녕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며 국민을 가르쳐 끌고 가려는 오만과 편견의 증거들이다. 이래서야 24번이 아니라 240번이라도 불감당이다. 민심을 거스르는 어떤 정책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이쯤 됐으면 부동산 정책을 제대로 한번 복기할 때가 됐다. 어느 정부인들 집값을 폭등시켜 서민을 더 궁핍하게 하고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겠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목표도 ‘집값 안정’ ‘주거의 질 향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현실은 반대로 ‘집값 폭등’ ‘주거의 질 악화’일까. 애초 그림을 잘못 그린 데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덧칠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못 그리면 찢고 다시 그리는 게 옳고 쉽다. 덧칠로는 잘못을 가리기는커녕 더 키우기 십상이다.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첫 번째 실수는 부동산을 정치로 본 것이다. 부동산을 잘 모르는 정치인 출신을 국토부 장관에 앉힌 것부터 일이 꼬였다. 김현미 장관은 대뜸 “투기와의 전쟁”부터 선포했다. 시장과 소통하거나, 시장의 흐름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서울 집값이 뛰는 데도 “공급은 충분하다”며 재건축·재개발을 꽁꽁 묶었다. 박원순 전 시장의 8년 재임 기간 서울의 아파트 공급이 지속해서 줄고 있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집값 오름세가 이어지자 더 센 처방으로 응수했다. 2017년 8월 2일 이른바 8·2 대책을 내놓으면서 김현철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시장 예상의 딱 두배를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경제교사, 부동산 사령탑인 김수현 당시 청와대 사회수석도 전면에 나섰다. 핵폭탄급 대책을 한목에 쏟아붓고는 “집으로 돈 벌 생각 말라”고 경고했다.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를 설계했던 김수현으로선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말이었지만 시장엔 잘못된 신호를 줬다. 되레 ‘노무현 시즌 2’를 기대하는 돈이 몰렸다. 강남 공인중개사 정보경씨는 “반도체 호황과 저금리로 돈이 넘치는데 강남 아파트 공급은 막혔다”며 “강남 아파트에 돈이 몰리지 않는다면 그게 비정상일 상황이었다”고 했다. 정부와 시장, 똑같이 ‘노무현 학습효과’를 돌아봤지만, 각각 반대 얼굴만 쳐다본 셈이다. 결과는 불문가지, 시장 이기는 정부는 없었다.

두 번째 잘못은 그나마 괜찮았던 정책만 콕 짚어 폐기한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부동산 대책 중 실패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임대사업자에 대해 정부가 2~3년 만에 (정책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가 말한 것은 2017년 8·2 대책이다. 다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줬다. 김수현 전 수석의 ‘부동산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김수현은 다주택자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는 “모두가 내 집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아무리 집값이 싸도 모두가 집을 살 수는 없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보유세 인상은 결국 임대료 인상으로 전가돼 서민 주거의 핵심인 전·월세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김수현의 고민은 이 지점에 있었다. 그는 다주택자를 ‘주택 공급자’로 봤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적절한 임대료 규제, 의무 등록을 통해 다주택자에게 공공역할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양도소득세와 임대소득세의 빅딜’을 제안했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임대소득세를 내면 양도세 중과와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당근을 제시했다. 속도 조절도 했다. 임대소득자 등록 의무화는 유보했다. 하지만 이 대책으로 다주택자의 매물이 잠겨 되레 집값이 올랐다는 비판이 여권에서 커지자 정부는 올해 7·10 대책에서 이 제도를 사실상 폐기했다. 그나마 시장을 이해하는 척이라도 했던 김수현마저 폐기된 것이다. 다주택자는 다시 여느 좌파 정부에서처럼 ‘절대악’이요 ‘사회 공적’이 됐다.

세 번째, 23번이나 실패하고도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힘으로 눌렀다. 임대차 3법을 밀어붙이고 양도·취득·종부세를 일제히 강화하는 부동산 입법 11건을 여당이 일방 상정, 표결했다. “시장의 백기 투항”을 요구하며 퇴로를 모두 차단했다. 역시 결과는 불문가지, 전셋값 폭등에 이어 집값 상승이 이어졌다. 24번째 대책이 나온 19일, 전국의 집값·전셋값은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대책→집값 상승→더 센 대책→전셋값 상승→더더 센 대책→집값·전셋값 동반 상승의 악순환이다. 국민은 앉으나 서나 집 걱정, ‘코로나 블루’보다 ‘부동산 블루’가 더 무서운 세상이 됐다.

복기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답은 다 나와 있다. 예컨대 ‘보유세는 높이되 거래세는 줄인다. 다주택자를 공공임대의 영역에 편입한다. 살고 싶은 곳에 공급을 늘린다. 주거 사다리를 복원한다’는 상식과 시장 원리에 따르면 된다. 진보 정부의 정체성 때문에 부동산 불로소득은 한 푼도 용납 못 하겠다면 차라리 양도세로 100% 환수하면 될 일이다. 그런 일은 하지 않고 편 가르기 증세만 고집하니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없는 문제를 만들고 더 키운다는 소리만 듣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나, 올바른 질문 던지는 게 시작

요즘 집값·전셋값은 왜 널뛰나. 전직 고위 관료 A는 “요즘 골프장에 좋은 사례가 있다”고 했다. 올해 들어 골프장은 초호황이다. 그린피와 음식값, 캐디피를 맘대로 올려도 골퍼들이 몰린다. 골프장마다 만원사례다. 왜 그런가. 답이 바로 나온다.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골프장 수는 똑같은 데 해외 골프가 막히니 골퍼들은 국내 골프장밖에 대안이 없다. 장사가 안돼 골프장이 줄 파산하던 게 불과 1~2년 전인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과천이 좋은 예다. 이달 들어 과천 아파트값과 전셋값은 동반 하락 중이다. 국민은행 집계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 아파트값은 0.02%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전셋값은 -0.04%였다. 이 기간 아파트 전셋값이 내린 곳은 전국 226개 시·군·구 중 과천이 유일하다. 비결은 공급이다. 과천엔 2026년까지 2만 가구 넘는 공급이 쏟아진다. 2018년 현재 과천 전체 가구 수와 비슷한 규모다. 공급이야말로 주택시장 안정의 첫째 비결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A는 “문재인 정부 3년간 집값·전셋값 폭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빚내서 집 사라”던 박근혜 정부 시절, 그때 왜 사람들은 집을 안 샀을까, 그땐 안 사다가 지금은 왜 갑자기 ‘영끌’해 집을 살까. 쉬운 질문이지만 정부는 별로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을 듯하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