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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권력 수사’를 꿈꾸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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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가영 사회1팀장

이가영 사회1팀장

일본 NHK는 매년 한 편씩의 대하드라마를 내보낸다. 해마다 어떤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지가 뉴스거리가 되고, 때에 따라선 신드롬이 일어나기도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취임 이후 1년 4개월도 충분히 그 소재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기간은 짧지만 그만큼 스펙타클해서다. 윤 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라는 드러난 두 주인공과, 주변의 무수한 인물들. 개개인이 스토리를 지닌 이들이 일맥상통하는 주제로 분연히 맞선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윤) vs ‘권력 수사, 꿈도 꾸지마’(추).

25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약 주연급으로 발돋움하려 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윤 총장에 대해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추 장관을 향해선 “스타일이 문제”라며 예의 양비론을 펴던 그다. 그런 그가 이날 윤 총장의 ‘혐의’ 중 ‘판사 사찰’을 문제 삼으며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1강’ 대선주자의 지위가 옅어진 뒤 친문 세력들의 표가 간절한 그로선 이제 분명한 뜻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노트북을 열며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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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조국 장관 수사 이후 정권 재창출을 넘어 20년 이상 집권을 꿈꾸는 여권은 불편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윤 총장’으로 모시던 윤 총장의 칼잡이 본능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윤 총장 ‘축출(또는 순치)’의 사명을 띤 추 장관은 수차례의 수사지휘권 발동, 윤 총장 가족 및 측근들에 대한 수사 재개, 본래 성격상 ‘영수증이 필요 없는’ 특활비 등을 문제 삼아 윤 총장을 압박했다. 하지만 수사지휘권 발동은 30~40대가 주를 이루는 법조 기자들 사이에 94%의 ‘부정적’ 여론이 나올 정도(법조언론인클럽 조사)로 호응을 얻지 못했고, 특활비 문제는 거꾸로 추 장관과 심재철 검찰국장으로 번졌다. 이 와중에 대전지검의 원전 월성1호기 폐쇄 관련 수사가 속도를 냈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통하지 않자, 결국 추 장관은 윤 총장을 직무배제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튿날 이낙연 대표가 전면에 나서며 총공세의 면모가 드러났다. 깃발엔 선명한 글귀가 새겨졌다. “우리 권력 수사? 어림도 없다.”

이렇게 분명한 메시지 속에서도 권력에 대한 수사를 꿈꾸는 검사들이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럴수록 그 수사를 더 하고 싶어지는 게 검사란 거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좌천돼 지방을 전전하던 7년 전의 윤석열이 그랬던 것처럼. “윤 총장 거취와 관련 없이 원전 수사는 차질 없이 진행될 거다.” 대전지검 검사의 말이다. 아직도 눈치 없는 검사들은 권력 수사를 꿈꾸고 있다.

이가영 사회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