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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빅딜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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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빅딜(Big Deal). 글자 그대로 ‘큰 거래’라는 뜻의 용어가 한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건 1998년 초부터다. 출범을 앞둔 김대중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 수단으로 ‘빅딜’을 꺼내 들었다.

이때 빅딜은 단순히 큰 거래가 아니었다. ‘대기업 간에 계열사를 맞바꾸는 사업교환’을 일컫는 ‘외환위기 신조어’였다. 대기업 집단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지양하고 전문화로 가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겠단 얘기였다.

재계가 뒤집혔다. “기업 맞바꾸기가 장난감 바꾸기냐”며 아우성을 쳤다. 1980년 군사정권의 ‘중화학 투자조정’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빅딜이란 말 자체에 대해서도 ‘해괴한 용어’라며 거부감이 컸다. 결국 그해 2월 초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빅딜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하란 뜻”이라며 물러섰다.

실제론 물러선 척했을 뿐이었다. 같은 해 6월 청와대가 5대 그룹(현대·삼성·대우·LG·SK) 빅딜 추진을 공식화했다. 모든 경제 이슈를 삼켜버리는 빅딜 정국이 시작됐다. 정부는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빅딜 안을 내놓으라며 압박했다. 확실한 협박 수단은 돈이었다. 금융당국은 “빅딜을 거부하는 기업엔 은행 여신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정부 주도 빅딜의 결과는 우려대로였다. 1999년 10월 LG반도체와 통합한 현대전자는 2년이 채 안 돼 부실로 쓰러졌다. 반도체 개발에 투자해야 할 수조 원을 빅딜에 쓰면서 투자 시기를 놓친 탓이 컸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간 사업교환은 협상 실패로 삼성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무산됐다. 1999년 8월 현대정유가 인수한 한화에너지(정유부문)는 2001년 자금난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빅딜은 실패로 끝났지만, ‘부적절한 용어’라며 손가락질 받았던 빅딜이란 단어는 이제 일상어가 됐다. 인수합병(M&A)은 물론, 외교·안보·정치 관련 중요한 협상에서도 ‘빅딜’이란 용어가 쓰인다. 프로스포츠의 선수 트레이드도 빅딜, 정치권의 법안처리 합의도 빅딜이라 부르는 식이다.

오랜만에 빅딜다운 빅딜이 등장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친다는 ‘항공 빅딜’이다. ‘빅딜=실패한 정부 주도 사업재편’이란 공식을 이번엔 깰 수 있을까. 빅딜의 씁쓸한 추억을 곱씹어본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