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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조원 슈퍼예산에도 또 꺼낸 재난지원금…재정 블랙홀 되나

중앙일보

입력

국회는 내년 본예산에 3차 재난지원금을 추가 편성하는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다. 사진은 2021년 보편적 재난지원금 정례지급 예산 편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오종택 기자

국회는 내년 본예산에 3차 재난지원금을 추가 편성하는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다. 사진은 2021년 보편적 재난지원금 정례지급 예산 편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오종택 기자

내년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을 1주일 앞두고, 정치권이 결국 3차 긴급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냈다. 예산안에 긴급재난지원금을 미리 편성하자는 야당 주장을 여당이 ‘조건부 수용’ 하기로 방향을 바꿨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대로 된다면 원래 계획에도 없던 수조원 규모의 신규 예산이 국회 예산 조정 소위에서 추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법정기한 1주일 앞두고 사실상 날림편성

끼워넣기식 3차 재난지원금 편성이 문제인 이유는 재정당국이 이미 제출한 내년 본예산 구성과 방향 자체가 뒤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예산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재정당국이 들어올 돈(세입)과 쓸 돈(세출) 규모를 정한 뒤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편성한다. 이 과정에서 각 소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과 오랜 논의를 한다. 이렇게 만든 예산안은 국회에서 상임위별로 추가 심사도 거친다. 상임위까지 통과한 예산안은 예결위에서 금액 증·감 정도만 논의한 뒤 확정한다.

현재 본예산은 국회 예결위 예산 조정 소위에서 1차 감액 심사까지 끝냈다. 여기에 3차 재난지원금이 들어간다면 원래 써야 할 돈을 깎거나, 아니면 예산 규모 자체를 늘려야 한다. 만약 기존 예산을 깎는다면 쓸 곳에 돈을 쓰지 못하는 셈이다. 기존 예산을 건들지 않고 증액을 하면 국가채무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누더기 예산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국가채무 한계인데 또 증액하나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총 4차례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다. 여기에 경기 활성화를 위해 내년에 556조원 슈퍼 예산까지 만들었다. 이미 국가 재정부담은 한계 수준에 달했다.

정부가 4차 추경 당시 밝힌 올해 말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3.9% 수준인 846조9000억원이다. 내년에는 이 수치가 47%대까지 올라간다. 또 9월까지 관리재정수지(108조4000억원), 통합재정수지(80조5000억원) 적자 모두 같은 달 기준으로 역대 최고다. 여기에 재난지원금으로 추가 증액까지 한다면 부담은 더 커진다. 정부가 내세운 재정준칙(GDP 대비 국가채무 60%, 통합재정수지 비율 -3%)을 못 지킬 수 있다고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도 “3차 재난지원금 추가 편성 이야기는 아는 바 없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재원도 없어 고려하지 않는다”며 강경한 톤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분배·경기 활성화 효과 모두 의문 

재난지원금 효과도 문제다. 이미 올해 2차례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경기 활성화와 피해 계층 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 모두 큰 실익을 거두진 못했다. 재난지원금 지급했던 2·3분기 평균소비성향은 각각 67.7%와 69.1%를 기록해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평균소비성향이란 각 가구가 쓸 수 있는 돈(가처분 소득)에서 실제 쓴 돈(소비지출)의 비율을 말한다. 재난지원금으로 소득이 늘었지만, 오히려 지갑은 닫았다는 이야기다.

취약계층 지원 효과도 불분명하다. 전 국민 모두 나눠준 1차 재난지원금은 소득과 상관없이 가구원 수에 비례해서 줬다. 그러다 보니 가구원 수가 많은 고소득층에 지원금이 몰렸다. ‘맞춤형 지원’을 강조했던 2차 재난지원금도 경제 사정보다는 코로나19 피해 여부만 주로 따져 줬다. 이 때문에 5분위 소득 격차는 지난해 3분기(4.66배)에 비해 0.22배 오히려 더 벌어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난지원금을 받으면 대면 소비로 이어져야 하는데 방역 상황 때문에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말로 필요한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 지원도 이뤄지지 않다 보니 소득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 마련해야”

이 때문에 재난지원금을 주더라도 그 규모와 대상 기준을 면밀히 살펴 지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즉흥적으로 예산 지원 카드를 꺼내면 재정부담만 커지고 효과성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본예산에 사회안전망 뉴딜이라는 사실상 재난지원금 성격 예산이 있는데도 추가 편성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재난지원금 지급 이야기가 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지급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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