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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리면 끝장’ 또다른 방역 전투…조류인플루엔자 막아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또 다른 방역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 있다. 이곳의 적은 조류인플루엔자(AI)다. 전파력도 강하고 폐사율이 높은 고병원성 AI가 각국에서 확산하는 탓에 방역 당국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5일 현재까지 국내 가금류 농장(닭이나 오리를 키우는 농장) 중 AI가 발생한 곳은 아직 없다. 지난달 21일 충남 천안시 풍세면 봉강천에서 채취한 야생 원앙 분변에서 고병원성(H5N8형) AI 항원이 처음 검출된 이후 30여 일째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진된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철새 도래지에 차량 소독기가 설치되고 있다. 뉴스1

지난 23일 오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진된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철새 도래지에 차량 소독기가 설치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언젠간 뚫린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가금 농장이 아닌 야생 조류 분변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된 건 2018년 2월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천안에 이어 경기도 용인시 청미천(10월 24일), 이천시 복하천(11월 10일), 제주도 하도리(11월 17일) 등 철새 도래지에서 고병원성 AI 항원이 잇따라 검출됐다.

전국으로 날아드는 철새를 통해 국내 가금 농가에 AI가 확산할 위험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고병원성 AI는 2년 만에 전 세계에 대유행 중이다. 가축 방역 선진국으로 꼽히는 일본과 유럽 국가까지 뚫렸다. 특히 한국과 인접한 일본에서 AI가 일반 가금 농장을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해 한국 가축 방역 당국의 긴장감은 더 커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 24일 야생 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AI가 처음 확인되고 불과 12일 만에 가금 농장으로 번졌다. 지난 5일 카가와현 미토요시에 위치한 산란계(알을 낳는 용도로 키우는 닭) 농가에서 첫 발생한 이후 25일 현재 총 9개 농장으로 확산했다. 140만 마리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유럽도 비상이다. 덴마크ㆍ네덜란드ㆍ독일에서도 야생 조류에서 고병원성 AI가 검출되고 일반 가금 농장으로 번지는 데는 불과 열흘 안팎 시차밖에 나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 아예 가금 농가에서 먼저 발생(10월 24일)하고 이후 야생 조류(11월 3일)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됐다.

일본 AI 피해 규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일본 AI 피해 규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국은 30일 넘게 방어선을 지켜내며 선방하는 중이다. 2016~2017년 ‘계란 파동’으로까지 이어진 국내 AI 대유행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에는 정부 차원의 예찰도, 사전 대응 시스템도 없었다. 2016년 10월 28일 대학 연구팀이 철새 분변에서 고병원성 AI를 검출해 보고했지만, 정부는 한 달여의 ‘골든타임’을 고스란히 흘려보냈다. 그리고 11월 16일 전남 해남군 한 산란계 농장에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뒤 하루 만에 고병원성 확진 판정이 났다.

이후에도 정부 대응은 느리기만 했다. 농식품부 장관 주재 회의는 가금 농장 최초 의심 신고 이틀 뒤(11월 18일)에 처음 열렸다. 가금류 차량ㆍ인력 ‘일시 이동 중지(스탠드 스틸)’ 조치는 하루 뒤(11월 19일), AI 위기경보 주의→경계 상향 조치는 회의 닷새 뒤(11월 23일)에야 이뤄졌다.

늑장 대응의 결과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이후 5개월 사이 전국 353개 농가에 AI가 발생했고 닭ㆍ오리 등 3379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국내 가금 산업 전체가 사실상 붕괴하는 역대 최대 규모 피해였다. 산란계가 대량 살처분되며 달걀값이 치솟아 외국산 달걀을 비행기로 실어 수입하는 유례없는 일도 벌어졌다.

국가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상황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가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상황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 때의 뼈아픈 경험이 바탕이 돼 가축 방역 체계가 달라졌다. 2015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잘못을 교훈 삼아 지금의 ‘K-방역’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정부는 지난 9월부터 ‘가축질병상황실’을 운영해왔다. 올해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고병원성 AI가 대규모로 확산하는 만큼 비상 대응팀을 미리 꾸려놓은 것이다. 겨울철 철새 유입 시기에 접어들면서 대규모 분변 채취, 포획 검사도 벌였다.

25일까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등에서 AI 검사 목적으로 포획한 야생 조류는 1000마리, 채취한 분변 시료는 4만 점이 넘는다. 전통시장에서도 가금류 4만2400마리에 대한 검사를 시행했다. 닭ㆍ오리 외에도 꿩ㆍ메추리ㆍ칠면조ㆍ타조ㆍ기러기 등 시료도 4만3964건(항원) 채취해 검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21일 야생 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AI가 처음 검출되며 가축 방역 당국 움직임은 더 분주해졌다. 농식품부는 지난 10일 고병원성 AI 위험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농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올겨울 철새 유입 규모는 183종, 94만5000마리에 이른다. 지난해와 비교해 종류는 10.2%, 개체 수는 33.9% 늘었다. AI에 감염된 야생 조류를 차단 방역하는 일이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국내 철새 유입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철새 유입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농식품부 산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전학규 사업처장은 “항원 검출 지점에 초동 대응팀을 투입해 사람ㆍ차량 등을 통한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를 하고 있다”면서도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 예방 등을 위해 ▶가금 농가 종사자와 축산 차량은 절대 철새 도래지를 방문하지 말고 ▶거점 소독시설에서 차량과 운전자는 철저히 소독하고 ▶농장 안팎에서도 소독과 청소, 차단 벨트(생석회) 구축 등을 성실히 따라달라고 당부했다. 갑자기 닭ㆍ오리 등이 폐사하거나 알을 덜 낳고 사료 섭취량이 주는 등 의심 증상이 나오면 즉시 방역 기관에 신고해달라고도 했다.

모인필 충북대 수의학과 명예교수는 “과거 국내 가금 농장의 AI 감염 대부분이 12월 중순부터 1~2월까지 나오는 경향이 있는 만큼 농가 발생이 아직 없다고 긴장을 늦출 때가 절대 아니다”며 “앞으로 농가 감염을 피하기 어렵더라도 발생한다면 주변 농가로 번지는 수평 감염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 교수는 “AI 발생 시 살처분, 사육 제한을 하고 이를 세금으로 막는 건 근본적 처방이 아니다”며 “방역 시설 구비 정도에 따라 등급을 다르게 매기는 ‘농가별 차단방역등급제’ 등 농가 단위에서도 평소에 잘 대응 체계를 갖춰놓도록 하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조현숙ㆍ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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