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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인물난? 누가 한들 오거돈·박원순보다 못 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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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앙일보 ‘정치 언박싱(unboxing)’은 여의도 정가에 떠오른 화제의 인물을 3분짜리 ‘비디오 상자’에 담아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정치권의 새로운 이슈, 복잡한 속사정, 흥미진진한 뒷얘기를 ‘3분 만남’으로 정리해드립니다.

300명의 현역 국회의원 중 가장 신실한 불교 신자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꼽힌다. 20대 국회 때 불교 신자 의원 모임 '정각회' 회장을 지낸 그는 21대 국회에서도 명예회장이다. 그래서 그럴까. 주 원내대표는 목소리 데시벨을 잘 높이지 않고, 얼굴도 대개 웃는 표정일 때가 많다. 판사 출신으로 사고가 논리적이고, 정치 성향도 한쪽으로 확 치우쳤다기보단 ‘합리적 보수’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선 패배 후 취임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당을 추스르는 게 제1 과제였다. 취임 후 반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힘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를 꽤 좁혔다.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당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주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총선 패배 후 취임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당을 추스르는 게 제1 과제였다. 취임 후 반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힘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를 꽤 좁혔다.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당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주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그런데 인터뷰를 위해 지난 19일 만났을 때는 조금 달랐다. 욕설은 없었지만, 그의 입에서 ‘저주’나 ‘단두대’ 같은 단어가 나왔다. 이날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추천위가 최종 후보 두 명을 압축하지 못한 채 활동 종료를 선언한 다음날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을 바꿔 야당의 거부(veto)권을 없앤 뒤 후보 추천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애초 이날 오후 4시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는데, 관련 대책을 논의하려는 긴급 의총이 열리면서 인터뷰 시간도 오후 5시 30분으로 늦춰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공수처 얘기부터 해보자.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일방적으로 법안을 만들 때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며 야당의 거부권을 보장해줬던 거다. 5월 28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만났을 때, 대통령도 우리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거부권을 남용했다’면서 뺏어가겠다고 한다. 뭘 남용했나. 두 번 했나, 세 번 했나. 총선에서 이겨 173석 갖고 있다고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의원총회 때 ‘이 공수처법의 저주가 민주당에 내릴지 모른다’고 했다.”
저주라니 뭘 얘기한 건가.
“단두대를 만든 사람이 단두대에서 죽었다. 중국 진나라의 상앙(商鞅)은 도망치다가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잡혀 죽었다. ‘내가 대상이 되면 어떨까’를 염두에 두고 중립적·객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울산시장 선거 부정사건, 월성 원전 1호기 부당 폐쇄 사건, 라임ㆍ옵티머스 등 검찰 수사가 전부 자기들 여권이 대상이다. 공수처 만들어서 사건 빼앗아 가려는 건데,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다급한 모양이다.”

(※인터뷰 이후 국회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23일 박병석 국회의장 주제로 한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한번 더 열기로 해서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야의 동의를 얻는 후보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더는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호언했고, 주 원내대표 역시 “힘 믿고 무리하다 망친 정권이 한두 개가 아니다”며 맞서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여권을 향한 검찰 수사를 얘기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깨어있는 검사들이 하는 수사”라는 표현을 썼다. 그래서 윤 총장에 대해 물었다.

‘정치인 윤석열’은 어떨 거 같나.
“나는 일관되게 정치도 경륜이 필요한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말해왔다. 정치 외 영역에 있는 사람을 인기가 있다고 데려온다? 잘못된 현상이다. 정치하지 않은 사람이 정치판을 흔드는 경우는 있지만, 궁극적으론 정치도 정치를 잘 아는 의인이 바꿔야 성공한다. 현직 검찰총장이 지지율 조사에 들어가는 것도 대단히 잘못된 현상이다.”

정치권에선 일부 여권 인사가 예상외로 윤 총장의 높은 지지율을 반긴다는 얘기도 있다. 야당 후보나 야권의 존재감을 약화하고, 나아가 본선에 나서면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빗대 '정치인 윤석열'도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란 논리다.

여당 일부에선 윤석열 현상을 반긴다고도 한다.
“그쪽에서 반길 일은 아니지. 지금 윤 총장이 ‘뜨는’ 것은 반(反)문재인, 반민주당, 반추미애 지지율이 거기에 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정권의 부정·비리를 철저히 수사해 처벌해야 한다는 사람의 응원이 거기 모인 것이다. 야권 주자들의 존재감이 엷다? 반문재인 표는 모여 있다가 때가 되고 후보가 정해지면 그 사람에게 갈 거다.”
당장 내년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먼저 두 전임 시장의 잘못으로 선거가 열리는 점을 분명히 해 두자.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 사람은 죄는 분명한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만약 이기지 못한다면 당을 지속할 수 없다. 저쪽은 이런 구도를 극복하려고 가덕도 신공항 문제 같은 걸 꺼내 들었다. 민심은 우리 편이지만, 저쪽은 권력과 정책 수단이 있어 어떤 수든 다 쓸 거다. 그래서 선거 결과가 아주 팽팽할 거다.”
같은 맥락에서 ‘구도는 좋은데 인물이 마땅찮다’고들 한다.
“인물난은 만들어 낸 프레임이다. 누가 한들 오거돈ㆍ박원순보다 못하겠나. 이름 조금 덜 알려졌다고 사람 없다고 하면 안 된다. 이름 알려진 사람 뽑았다가 늘 ‘손가락 잘라내고 싶다’고 한탄하는 게 아닌가.”

주 원내대표는 재차 “국민의힘에 훌륭한 후보가 많다. 경선을 거쳐 후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제3 후보 영입론이나 야권 연대는 선택지에 없거나 뒷순위란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는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해 “얼마 전까지 대척점에 있던 사람이 우리당의 후보가 되기는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혁신플랫폼’에 대해서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자칫 잘못 논의하다 보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맞물려 주호영 원내대표의 임기도 끝난다. 보궐선거 승패는 그의 향후 정치적 행보와도 직결돼있다는 의미다. 주 원내대표는 "당 내에 훌륭한 자원이 많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맞물려 주호영 원내대표의 임기도 끝난다. 보궐선거 승패는 그의 향후 정치적 행보와도 직결돼있다는 의미다. 주 원내대표는 "당 내에 훌륭한 자원이 많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결국 ‘국민의힘’만으로 보궐선거에 나서겠다는 뜻인데, 그러려면 당의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최근 국민의힘엔 가덕도 신공항에 따른 내분이란 변수가 돌출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를 ‘좌클릭’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공수처 문제 외에 김해신공항 백지화 이슈도 의총의 주요 쟁점이었을 텐데.
“월성 원전 조기 폐쇄와 똑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이낙연 대표가 ‘가덕도 신공항, 희망고문 끝내겠다’고 한 뒤 검증위원회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것 아닌가. 이 대표보다 더 윗선이 작용했을 확률이 더 크다고 본다. 애초 가덕도에 10조원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몇 년새 비용이 확 뛰어 20조원까지도 든다고 한다. 여권은 전문가의 견해는 다 무시하고 부산시장 선거, 또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계속 희망고문 할 거다.”
국민의힘 일부 부산 의원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발의한다는데.
“국회의원이 나라의 의원이지 지역의 의원은 아니지 않나.” (※지난 20일 국민의힘 일부 의원이 실제로 가덕도 특별법을 발의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도부와 논의도 없이 법안을 낼 수 있느냐”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일 해보니 어떤가.
“경륜이 많고, 선거에 대한 감각도 대단하다. 다만, 당을 구체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는 우리가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당내 일부에선 ‘좌클릭했다’고 비판하는데.
“전체 국민의 행복이나 복지가 증진하면 그게 좋은 거지, 기존에서 조금만 옮겨도 좌클릭이라고 하면 우리당은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해야 하나. 우리 생각만 고수하고 선거에서 질까, 변화해서 집권할까.”

내년 4월 재보선이 끝나면 주 원내대표의 임기도 마무리된다. 향후 행보에 대해 “원내대표 열심히 하고 나면 당분간 쉬어야 한다. 지금은 도무지 내 시간이 안 난다”며 “이후 당과 나라를 위해 내가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데가 뭔지 확신이 서면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는 점이 있다면 한 가지만 얘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대구 말투로 "뭐가 있겠노…”라며 10초가량 뜸을 들이던 주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적인 엄청난 논쟁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도 말씀 안 하고 참는 것. 윤석열·추미애도 그렇고, 김해 신공항 문제도 그렇고.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는 사안인가. 국정 최고 책임자인데 말씀 안 하고 참는, 저런 내공이 어디서 나올까. 아, 자기편이면 끝까지 챙기는 게 보스로서 대단하다.”

권호·김기정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gnomon@joongang.co.kr
제작=오종택·황수빈·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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