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미국 정치 ‘467’ 전성시대

중앙일보

입력 2020.11.2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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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아래의 사진 속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①아시다시피 모두 미국의 대권 주자들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가 되기 위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겨뤘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②둘째로 모두 70대다. 워런 71세(49년생), 바이든 78세(42년), 샌더스 79세(41년), 트럼프 74세(46년). 이들은 1940년대 태어나 베트남전이라는 격동의 60년대를 거쳐 70대에 정치적 전성기를 경험하고 있으니 ‘467세대’가 되겠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대학 재학으로 베트남전 징집을 수차례 미뤘고, 워런의 오빠는 공군으로 참전했으며, 그때도 반전 운동을 했던 샌더스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했다. 그러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징집을 피했다고 한다.

올해 대선서 70대끼리 경쟁
40년대 출생 60년대 베트남전
70대 들어 정치적 황금기 맞아

미국 정치가 ‘467 황금시대’다. 미국 의회의 여야 지도부도 그렇다. 정치 9단인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78세이고,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80세다.

7080 정치인들이 전면에서 움직이니 대중의 관심은 자연스레 건강 문제로 쏠린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바이든은 스스로를 ‘실수 제조기(gaffe machine)’라고 불렀을 정도로 말실수가 잦다. 사람 이름도 잘 까먹는다. 대선 기간 중 밋 롬니 공화당 상원의원 이름을 순간적으로 잊어 기자들에게 “모르몬교 신자이고 주지사였던 상원의원 말이다. 오케이?”라고 한 적도 있다. 2008년 유세 땐 휠체어에 의지해 앉아 있던 주 상원의원을 거론하며 “지금 어디 있어요? 일어나 보세요”라고 했다가 곧바로 “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라며 정정했다.

서소문 포럼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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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노익장 정치는 왜 나왔을까. 인구학적 분석이 가장 힘을 얻고 있다. 유권자 수명이 늘고 있으니 노령 정치인들도 더 많아지고 있다는 구조적 접근이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미국 대선에서 65세 이상이 유권자의 23%를 차지하는데 이는 1970년대 이후 최대치다. 그래서 “나라가 나이가 들수록 더 고령화된 정치인을 만든다”(애틀랜틱)는 것이다.

또 미국에서도 젊은층에 비해 나이든 층의 투표율이 월등히 높은데 “유권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나이에 가장 근접한 후보자를 선호한다”(애틀랜틱)고 한다. 즉 나이 든 유권자들이 늘수록 나이 든 정치인들에게 불리하지 않다. 고령화는 정치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동일한 상수다. 애틀랜틱에 따르면 S&P500 기업들에서 신규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연령은 지난 14년간 14살이 늘었다.

둘째는 인물학적 접근이다. ‘오바마 효과’와 ‘트럼프 효과’로 지칭할 수 있다. 미국 민주당 진영은 아직 버락 오바마(61년생, 대통령 취임 당시 48세)에 버금갈 대형 신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역을 떠난 지 오래인 오바마는 아직도 50대다. 큰 나무 아래에선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오바마의 그늘이 지금까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오바마를 넘는 새 얼굴보다는 오바마와 함께 국정을 이끌었던 공동 주주가 이번에 트럼프 대항마로 선택받았다는 게 개인적인 해석이다.

이런 ‘오바마 효과’와 화학적으로 섞인 게 ‘트럼프 효과’다. 그간 민주당 대통령은 젊은 상원의원 오바마뿐만 아니라 아칸소 벽촌에서 상경한 빌 클린턴, 땅콩 농장의 아들 지미 카터, 아메리칸 드림의 존 F. 케네디 등 새로움을 내세운 정치인이 대부분이었다. 대선 3수인 바이든은 이런 포트폴리오에 맞지 않다. 하지만 바이든의 올드함은 트럼프의 예측불허와 대비하면 강점이 될 수 있다.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좌충우돌 4년을 경험하니 바이든의 연륜이 부각된다는 게 ‘트럼프 효과’다. “바이든은 타협할 줄 알고, 덜 이념적이며,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포린폴리시)는 평가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효과의 또 다른 측면은 트럼프가 워싱턴 정치의 늪을 말려버리겠다는 ‘트럼프식 새정치’를 내걸면서 나이로 신구 정치를 나누는 방식이 희미해졌다는 점이다.

평균 수명이 늘수록 노인의 기준점은 점점 올라간다. ‘60세 환갑’이 더는 노인이 아닌 것처럼 미국에서도 ‘70이 이제는 50’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노익장 시대는 인간 수명 연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 세상은 젊은이의 패기와 노년의 경륜이 정반합으로 주고받으며 굴러간다. 그러니 해방 전후기에 태어나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우리에게 물려준 467세대 어르신들 힘내시라.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던 여러분들은 삶의 궤적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기억하시기를. 미국 정치에선 70대가 나이를 잊고 뛰고 있다는 사실을.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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