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이 시대의 위안, 솔직할 수 있는 용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임미진
임미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임미진 폴인 팀장

임미진 폴인 팀장

누구나 마음속에 다양한 자신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른 아침에 “자, 오늘도 열심히 달려볼까”하고 굳게 마음먹은 당신이 저녁 무렵이 되어 “아, 너무 지친다. 다 그만두고 싶어”라고 내뱉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치지 않는 게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 우리의 일터와 일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시대니까요.

이런 시대에 진정한 위안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성수동 한 맥줏집에서 열린, 실패담을 공유하는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는 모였지요. 마스크를 단단히 쓴 채 세 명 연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흔치 않은 이야기였어요. 보통의 강연에서 우리는 성공의 비결을 듣는데, 이날은 오로지 실패의 경험만 들었으니까요.

노트북을 열며 11/25

노트북을 열며 11/25

처음 강연에 나선 정효진씨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짤막하게 들려드릴까요. 유튜브와 야후 같은 기라성 같은 외국계 IT 기업을 거쳐 여행업계로 발을 들였습니다. 독일계 숙박 중개 회사에서 한국 사업개발을 총괄하는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어느 정도의 실적을 증명하면 독일 본사로 적을 옮기기로 계약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이들을 전학시켜가며 이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를 맞았습니다.

잠시 방황하다가 그는 오픈마켓의 셀러가 되었습니다. 양말을 1000켤레 샀다가 산더미 같은 재고를 안은 일, 유아용 텀블러를 팔아보려 했지만 공장에서 주문 수량이 적다며 거절당한 일, 그리고는 결국 달콤한 간식 선물을 팔게 되며 배운 점들을 담담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셀러가 되었다는 말을 한동안 가족에게 하지 못했다고 해요. 사무실 절반에 가득 찬 재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짓눌렸다고 해요.

누구나 잘난 척만 하고 싶은 게 본능입니다. 왜 실패의 경험을 들려주기로 그는 마음먹었을까요. “저같이 힘든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당신 혼자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도 그동안의 일을 정리하고 싶었구요.”

크고 작은 실패의 이야기가 오갔지만 분위기가 마냥 무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떤 모임에서보다 많은 박수와 웃음이 오갔지요. “우울한 분위기일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힘을 얻었다”고 한 참석자가 말했는데요, 다른 이의 불행에서 얻은 위안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나 정말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용기를 보며 자신을 이렇게 도닥이게 된 건 아닐까요. ‘누구나 힘들 수 있어. 그럴 땐 그냥 털어놔도 돼.’ 이날 오간 용기 있는 이야기들은 곧 폴인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임미진 폴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