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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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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제갈량은 실체가 왜곡된 대표적 인물이다. ‘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 속 신출귀몰, 호풍환우(呼風喚雨) 하는 병법 귀재 이미지는 실제의 그와 거리가 멀다. 적벽대전 때의 외교적 성과를 제외한다면 그에게는 이렇다 할 큰 전공이 없다. 유비 생존 시에는 현장 전략가의 역할을 방통이나 법정에게 내준 채 보급에 주력했고, 주군의 사후에는 출사표를 던지며 북벌을 감행했지만, 실패만 반복했다. 정사(正史)『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그에게 “기묘한 책략에는 약점이 있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이 용병 책략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동남풍을 부르진 못했을지언정 진짜 제갈량 역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혹할 정도로 철저한 법치에 기반을 둔 채 국가를 경영한 큰 정치가였다. 정사 삼국지는 그의 법치를 “상 줄 때 자신과 먼 사람을 빠뜨리지 않고, 벌 줄 때 가까운 사람을 봐주지 않고, 공이 없는 사람에게 직위를 주지 않고, 권세가 있다는 이유로 형벌에서 빼주지 않았다”고 요약했다. 절정은 가정(街亭)에서의 패배를 이유로 아들처럼 아꼈던 마속을 참하고, 후주(後主)에게 청원해 자신에게도 3등급 강등이라는 처벌을 내렸을 때였다.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의 법치는 고담준론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무기였다. 제갈량의 나라 촉한(蜀漢)은 삼국 중 최후발주자인 약소국이었고, 내부적으로는 3대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사상누각이었다. 집권 세력인 형주 세력에 대한 불만 때문에 터줏대감인 익주 세력이나 유비에게 정권을 빼앗긴 동주 세력 중에서는 나라가 망하길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망국을 막을 길은 차별 없는 법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환생해 법에 대한 해동(海東) 집권 세력의 인식 수준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자신들이 밀어붙여 만든 법조차 1년 만에 갈아치우겠다고 공언하고, 법으로 보장된 검찰의 수사권 행사를 사사건건 방해하며, 국민적 합의는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다는 식의 행태를 보면서 문화 충격을 받지 않을까. 이런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건 역사의 진보로 백성이 주군을 선택하고 바꿀 수 있게 된 덕택이라고 설명하면 그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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