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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고객돈으로 사은품’ 피해 줄잇는데…공정위 5년째 “소비자가 주의를” 말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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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모(39)씨는 지난달 한 디지털방송에 가입했다. 원래는 2년 약정을 고려했다. 하지만 3년 약정으로 가입하면 20만원어치 상품권 교환 포인트를 사은품으로 준다는 판매자 말에 계약 기간을 늘렸다. 계약 절차는 전화로 이뤄졌다. 그러나 다음 달 요금 청구서를 받은 김씨는 깜짝 놀랐다. 매월 3300원씩(3년간) 나가는 ‘기타 요금’이 상품권 구매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의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계약서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안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그 이후엔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서울 강남의 한 디지털방송 서비스업체는 가입 고객에게 신세계 상품권과 교환할 수 있는 포인트를 사은품으로 지급한다.(위) 그러나 사은품 관련 대금은 고객에 청구한다. (아래) [업계 취재]

서울 강남의 한 디지털방송 서비스업체는 가입 고객에게 신세계 상품권과 교환할 수 있는 포인트를 사은품으로 지급한다.(위) 그러나 사은품 관련 대금은 고객에 청구한다. (아래) [업계 취재]

비대면 통신 판매가 늘면서 사은품 구매 비용을 고객에 떠넘기는 불완전 판매 행위가 빈번해지고 있다. 디지털방송은 물론 인터넷·정수기·상조 서비스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수년째 이어져 온 문제이기도 하다.

유료방송·상조 비대면 판매 늘며 #‘계약 14일 내 취소’ 취약점 악용 #할부상품도 소비자 배상 받게해야

방송·인터넷·상조처럼 업체가 달라도 품질이 비슷한 서비스는 ‘사은품’이 고객 선택을 좌우한다. 판매자도 이를 알고 사은품을 미끼로 공격적으로 마케팅한다. 판매자 말을 믿고 계약한 고객이 구체적인 계약서 내용을 잘 확인하지 않는 데다, 현행 할부거래법상 소비자는 계약서를 받은 뒤 14일 이내에만 해지할 수 있다는 점을 기업은 악용한다. 고객 대부분은 한 달 뒤 요금 청구서를 받고 나서야, 자기 돈으로 사은품을 샀다는 사실을 알게 돼 해지 시점을 놓치기 일쑤다.

공정위도 이런 계약 행태는 “사기에 가깝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대응 방식은 ‘소비자가 주의하라’는 보도자료를 주기적으로 배포하는 일뿐이다. 공정위는 상조업계에서 이 같은 불완전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2015년부터 ‘소비자 피해 주의보’ 자료를 매년 1~2번꼴로 배포했다.

그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제도는 그대로다. 여전히 소비자는 판매자 설명과 실제 계약 내용이 다르다는 점을 증명할 녹취록·문자메시지 등이 있어도 구제받지 못한다. 이승혜 공정위 할부거래과장은 “공정위는 산업 규율을 관장하는 부서가 아니다 보니, 법도 최소한으로 마련돼 있다”며 “(할부거래법의) 입법 조치가 선행돼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할부 거래가 활발해지는 만큼 소비자 보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계 반발에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밀어붙이면서, 정작 민생을 침해하는 소비자 보호 규제엔 소극적이란 지적이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할부 상품도 금융 상품처럼 판매자 설명과 실제 거래 내용이 다를 때는 소비자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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