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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 기소 임박 알고도...'마이웨이' 윤석열, 검사들과 간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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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은 지난 18일 윤 총장이 미국 연방검찰 반독점국장과 ‘한미 반독점 형사집행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는 모습. 사진 대검찰청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은 지난 18일 윤 총장이 미국 연방검찰 반독점국장과 ‘한미 반독점 형사집행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는 모습. 사진 대검찰청

"평검사 시절 대구 가스폭발 사건을 수사했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4일 일선 검사들과의 오찬에서 재해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구 가스폭발 사건을 수사했던 경험을 꺼냈다. 1995년 대구백화점 신축 공사장에서 도시가스 배관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해, 누출된 가스가 인근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돼 10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대구지검 평검사였던 윤 총장은 수사팀에 참가해 대구백화점 공사를 맡은 회사 관계자 9명을 업무상과실 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윤 총장이 수사 당시 선배들에게 배웠던 수사 노하우가 향후 검사 생활에 도움이 됐었다고 이날 검사들에게 전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은 "중대 재해로부터 위협받는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가장 높은 수준의 대응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윤 총장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편법'과 '반칙'이 누적돼, 선량한 다수의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보는 인재"라며 엄정한 수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간담회 직후, 중앙지검 장모 기소 발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뉴스1]

오찬에는 경기 이천 물류창고와 용인 물류센터 화재 사건, 안산 유치원 집단식중독 사건을 수사한 이선혁 수원지검 형사 1부장(사법연수원 31기),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32기), 안동완 안산지청 형사 2부장(32기)과 평검사 3명 등 6명이 함께 했다. 이날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박순배 부장검사)가 장모 최모 씨를 요양병원을 설립해 부정수급한 혐의로 곧 기소할 거란 상황을 인식하고 간담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참석 검사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앙지검은 간담회 직후 최씨를 불구속 기소 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장모 기소가 임박했음을 알고도 일정을 그대로 소화한 것이다. 윤 총장은 지난주부터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소위 '갑질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과 오찬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7일 아파트 경비원 갑질 폭행 사건 등을 수사한 검사들과 만나 "수학의 정석도 '기본' 문제가 아닌 '실력' 문제부터 풀어야 실력이 늘 수 있다"며 "후배들에게 어려운 사건도 맡겨서 사건 해결 능력을 키우게 하라"고 당부해 화제를 모았다. 대검은 애초에 간담회를 총 3회로 예정했고, 내달 1일 마지막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다.

윤 총장 '마이웨이' 놓고 해석 분분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감찰, 수사지휘권 발동, 측근 수사 등으로 연일 공세를 펼치는데도 윤 총장이 별다른 대응 없이 일선 검사들을 접촉하는 행보를 이어가는 것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윤 총장은 전날인 23일에도 '공판 중심형 수사 구조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검사의 배틀 필드는 법정"이라며 수사 구조를 '공판 중심형'으로 개편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대검은 "공식적인 일정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내부 결속 다지기 행보"라고 봤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대외적인 공세 속에 검찰 조직마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도권의 한 평검사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총장이 총장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보면 일선도 흔들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일종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분명 정치적 야망을 품은 듯하다”고 평가했다. 윤 총장이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것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고위간부는 "총장이 일선 검사들을 만나서 격려하는 것조차 정치적 행보로 본다면 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비판했다.

정유진 기자 jung.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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