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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은 자본시장 추미애…무법 폭주" 항공빅딜 때린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구정물에 똥물을 섞어 어떻게 백산수를 만들겠다는 거냐."

이한상 교수 인터뷰

한 경영학 교수가 항공업 구조조정에 대해 페이스북에 남긴 코멘트다. 경영·부채 위기에 내몰린 대한항공을 '구정물'에, 그보다 더한 아시아나항공을 '똥물'에 빗댄 뒤, 둘을 합쳐 세계 7위 규모 항공사로 만들겠다는 산업은행에 "그게 백산수 맞냐"고 묻는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이한상(49·사진) 교수 얘기다. 항공업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글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교수를 지난 2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에서 만났다.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딜은 절차와 목적에 있어 전혀 수긍할 수 없는 딜이라서다. 산은의 폭주를 보면서 '이동걸은 자본시장의 추미애'란 생각이 들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가 20일 고려대 경영본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가 20일 고려대 경영본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어딜 봐서 그런가
"무법이라는 거다. 감춰진 목적과 사익이 있다는 점도 똑같다. 이 회장 말씀을 접하면 이 분은 자본시장과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전두환 시절 '해결사', 외환위기 때 관치 구조조정 담당자같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온 것 같다."

"아시아나 구조조정 실패 면피가 감춰진 목적" 

어떤 부분이 무법인가
"한진칼 주주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경영권 분쟁 중인 상태에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한다. 3자배정 유증엔 정관상 예외적으로 긴급한 자금의 필요성이 있어야 하는데, 한진칼은 부채비율 100% 언저리의 건실한 회사고 급하게 갚아야 할 단기부채가 있는 것도 아니다. 3자배정 유증을 하면 기존 주주들은 지분율 희석으로 피해를 본다. KCGI도 가처분을 제기했다. 상법 교수들은 법원의 인용 가능성을 70% 이상으로 본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산업은행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산업은행

산은이 왜 그런다고 보나
"감춰진 목적 때문이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처리에 실패했다. 처음부터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경영책임을 물어 지분을 차등 감자하고, 출자 전환을 해야 했다. 그 뒤에 굿컴퍼니를 분리해 매각하고 배드컴퍼니는 구조조정으로 팔릴만한 매물을 만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 눈치보느라고 호남 기업을 제대로 손도 못 본채 현대산업개발과 딜을 진행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졌다. 딜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 조건을 유리하게 조정해주면 그간의 구조조정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니 현산이 손 들 때까지 기다리다 이젠 코로나19 핑계를 대기로 한 거다. 그렇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가서 '경영권 지켜줄게' 하며 아시아나항공을 훨씬 좋은 조건에 넘겼다. 구조조정 실패 면피가 이번 딜의 감춰진 목적이었다고 본다.조 회장도 딱하다, 인사와 경영을 모두 통제 받으면서 부실 회사를 떠안았잖나."

"구조조정은 핑계…말장난 집어치우고 숫자를 보여라"

항공업 구조조정이 필요한 건 아닐까
"만약 진짜 국가 경제 차원의 항공산업 구조조정이라는 큰 그림이 필요했다면 최소한 작년말 현산이 딜에 참여하기 전부터 추진했어야 한다. 그런데 산은은 9월까지 현산과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언제부터 산업은행이 항공산업 전문가인가? 다 핑계고 말맞추기에 불과하다."
인천국제공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계류장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 뉴시스

인천국제공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계류장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 뉴시스

결과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생길 수는 있지 않나
"항공사 두개 합치면 규모는 커진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는 다른 얘기다. 비용절감이나 가격주도가 시너지의 원천이다. 산은은 '인력 구조조정과 운임조정은 없지만, 국민 편익은 더 커진다'는 언어유희를 한다. 세계 7위 규모의 FSC(풀서비스항공사)가 생긴다는 말만 반복한다. 문제는 그래서 어떻게 두기업이 돈을 벌어 정상화 되는가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통합 35조원 규모 부채를 가진 회사가 까딱 잘못해 법정관리라도 가면 이젠 대마불사라고 다 국민의 세금 부담이 된다. 산은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였다."
시너지가 없을까
"지금껏 부실했던 두 회사를 합쳐서 앞으로 시너지가 난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그 구체적인 경영정상화 계획을 공개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없다. 말장난은 집어 치우고 구체적으로 숫자를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사인 강성부? 재벌 반대말…공인 조원태는 어떤가"

강성부 KCGI 대표. 중앙포토

강성부 KCGI 대표. 중앙포토

강성부 KCGI 대표가 강하게 반발한다
"이동걸 회장이 '지분 6% 가진 조원태 회장이 문제라면 자기 돈 0원인 강성부 펀드는 문제가 안 되느냐'고 말했다. 이 발언은 수탁자 책임과 자본시장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연기금 투자와 스튜어드십코드 등 이 정부의 경제정책도 정면 부정된다. 반대로 묻고 싶다. 이동걸 회장이 결정하는 산업은행 돈은 본인 것인가? 같은 돈이지만 본인들이 움직이면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고,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운용하면 사익추구하는 거란 마인드는 조선시대 사농공상 수준이다. 그 과정에서 정작 본인들은 공익의 이름을 팔아 기업에 빨대 꼽고 사익을 실현한다. 내가 이 회장을 기업지배구조의 빌런(악당)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다."
이 회장은 강 대표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인(私人)이라고도 했다
"강 대표는 한진칼 지분 46% 이상을 확보한 펀드의 대표다. 경험으로 검증된 기업인들을 이사회에 넣겠다고 한다. 나는 이 '사인'이라는 단어가 재벌의 반대말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이동걸 회장은 자본시장의 기능을 믿지 못하는 재벌중독자이다. 그렇다면 공인 조원태는 그간 경영을 잘 했나. 2014년 선임된 이후 2019년까지 2017년 빼고 다 적자다. 누적적자만 1조7000억원이다."

"모피아와 무능 재벌의 공생, 이게 적폐다"

경영권 분쟁은 끝났다고 보나
"천만에. 가처분 소송이 기다리고 있다. 법원이 설령 한진칼 편을 든대도 경영권 분쟁은 살아있다. 경제개혁연대가 얼마 전 '산은의 한진칼 지분 10%에 대한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 내지 의결권 행사 요구 거부금지 약정이 있는지 밝혀라. 만약 그런 약정을 맺지 않았다면 그 사실 자체를 공시하라. 한국거래소는 이런 내용의 조회공시요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이동걸 회장은 자본시장에 혼란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 한진칼·대한항공 이사진도 마찬가지다. 주주에 대한 배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가 20일 고려대 경영본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가 20일 고려대 경영본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런 비판에 정치적인 입장도 영향을 미쳤나
"나는 과거 감리위원으로 나서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여당 의원과 함께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요구해 좌파의 환호를 받았던 사람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비판하거나 침묵하지 않는다. 학자로서의 양심과 자본주의가 부정 당하는 데 대한 반감에서 이런 비판을 쏟는 거다. 교수라면 항상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본시장에서 이 딜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 자본시장의 향후 10년을 가르는 중요한 케이스다. 가처분이 기각되고 정부의 뒷배와 산은의 완력으로 딜이 성사된다면 코리아 거버넌스(지배구조) 디스카운트는 계속된다. 아니 오히려 악화된다. 산은은 '캐스팅 보트를 건전하게 행사하겠다'고 할 게 아니라 '섀도 보팅하거나 경영권 행사를 포기하겠다'고 해야 한다. 이 사태는 국가 주도의 신(新)정경유착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모피아와 무능한 재벌의 공생, 이게 바로 적폐다. 이 딜로 두기업이 부실화하면 다음 정권에서 청문회·특검은 피할 수 없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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