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포스트 코로나, 새로운 일상인가 새로운 야만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0.11.2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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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책이 말하는 코로나 시대의 삶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코로나19가 한국에서 발견된 지 열 달이 지났다. 그사이 팬데믹을 말하는 책들이 수없이 쏟아졌다. 11월 중순 현재 코로나·팬데믹·전염·감염·바이러스 등이 키워드인 책이 400여종에 이른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코로나라는 말이 제목이나 부제에 들어간 책만 9월 말까지 217종, 총 판매량은 12만3049부에 이른다. 아직 진행 중인 사태에 대해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책이 쏟아진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독자들 마음은 절박하고 출판의 응전은 기민하다.

비대면 세계가 지식 노동자와 육체 노동자의 일자리 양극화
중산층 몰락 가속하고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삶 무너뜨려
공생·돌봄 바탕으로 지역적·생태적·민주적 삶 도입하지 않으면
팬데믹 반복되며 인류는 자기 파괴의 새로운 야만의 길 들어서

뉴노멀의 철학

뉴노멀의 철학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언젠가 끝난다. 이것은 의심할 수 없다. 스페인 독감은 두 해 만에 저절로 사라졌고, 천연두와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백신으로 해결했다. 이 바이러스도 비슷할 것이다. 이후에 인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분기가 생겨날 것인가. 『뉴노멀의 철학』(동아시아)에서 김재인은 말한다. “기후 위기, 인공지능, 코로나19라는 삼각 편대는 근대를 산산조각낸 진정한 다이너마이트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 아래 감춰졌던 ‘노멀’의 참혹함이 폭로된 사건이자, 미래의 인류가 살아갈 ‘뉴노멀의 등장’이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극단

방역에 바탕을 둔 거리두기 생활이 오래도록 지속하면서 우리 일상의 기본 구조가 변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플랫폼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일상의 정보화가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미디어숲)나 『언컨택트』(퍼블리온)에 따르면 여행·모임·집회 등 ‘함께’와 ‘이동’의 체험은 약해지고, 집콕·혼밥·온라인교육·화상회의·배달 음식 등 ‘홀로’와 ‘정착’의 비접촉 생활이 퍼진다. ‘함께’와 ‘홀로’를 잇는 것은 ‘디지털’이고, 이 연결을 독점하는 ‘플랫폼’이다. 만나지 않고 업무하고 회의하고 거래하고 교육하는 세상의 등장이고, 이러한 비접촉 세계에 대한 전 국민적 체험이며, 데이터 제국들의 발흥이자 일상에 대한 지배 선언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쿠팡과 배달의민족과 마켓컬리의 손에 쥐여 주었다.

비접촉 세계는 일자리를 양극으로 분리한다. 제이슨 솅커에 따르면 코로나19는 “기술을 통해 원격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직업 종말의 시기에 살아남는 방법”임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감염의 공포를 무릅쓰고 현장을 지킬 수밖에 없는 대면 노동자의 삶은 위기에 빠져들었다. 이 추세는 코로나 이후에도 지속할까.

빅체인지, 코로나19 이후 미래 시나리오

빅체인지, 코로나19 이후 미래 시나리오

『빅체인지, 코로나19 이후 미래 시나리오』(김영사)는 교육·의료 등의 영역은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재택근무가 표준이 되지도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많은 분야에서 원격 노동이 가능한 지식 노동자의 힘이 강해지고 육체 노동자의 지위는 빠르게 하락할 것이다.

팬데믹은 약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중산층 몰락을 가속하고, 소상공인·자영업자·프리랜서 등 취약 계층의 삶을 무너뜨린다. 『포스트코로나』(한빛비즈)에 따르면 1997년 IMF 국가 부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과거의 두 위기가 빈익빈 부익부의 골을 더 깊게 팠듯, 코로나 팬데믹 역시 양극화를 심화한다. ‘디지털 뉴딜’로 상징되는 플랫폼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극단적 구현이자 심화이기 때문이다.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빨간소금)는 플랫폼이 노동자도 없고 재고도 없고 시공간의 한계도 없는 전 지구적 독점 기업의 탄생이라고 말한다. 결과는 부의 쏠림이고 빈부 격차의 격화이다.

또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돌베개)은 ‘언콘택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키고, 돌봄 재난을 일으켰으며, 비대면 업무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했고, 배달 노동자를 무휴식의 삶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한다. 팬데믹이 비판적 논의 구조를 파괴한 사이에 인공지능은 ‘노멀’을 급속히 감염시켜 ‘뉴노멀’이라는 ‘강요된 진화’를 일으켰다. 천천히 할 것을 빨리하면, 면역이 무너져 질병이 생겨난다. 실업을 폭발시키고 공동체를 해체하는 등 인공지능의 팬데믹 역시 심각하다. 장밋빛 ‘뉴딜’ 놀이를 벗어나 새로운 일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코로나는 자연과 분리된 인류에 성찰 촉구

『코로나 사피엔스』(인플루엔셜)에서 홍기빈은 “지난 40년 동안 지구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치던 구조”인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 생태 위기”의 적폐가 드러났다면서 이 사태가 ‘새로운 문명의 씨앗’이 될 것을 기대한다. 『오늘부터의 세계』(메디치미디어)에서 원톄쥔은 “바이러스는 현대화에 대한 비평문을 작성”했다면서, 자연과 분리된 인류의 삶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팬데믹 패닉』(북하우스)에서 뿌리가 드러난 “우리 삶의 기반”이 저절로 복구되진 않으며,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갈 길”은 이미 막혔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우리 앞에는 새로운 일상과 새로운 야만, 두 가지 길이 나 있다. 불행히도 인류가 새로운 야만을 택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출현 중임을 경고하면서 지젝은 “인류를 자기 파괴에서 구하려는 노력”만이 “새로운 인류”의 “창조”로 이어질 것이라고 호소한다.

많은 책이 제시하는 공동의 답은 분명히 있다. 공생과 돌봄에 바탕을 둔 더 지역적이고 더 생태적이고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삶의 도입이다. 과연 인류가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 이타적 문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팬데믹이 인류의 마음을 조금도 바꾸지 못했다면 또 다른 팬데믹이, 기후 위기 등 더 심각한 재앙이 닥쳐올 것이다. 결국, 미래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감염병은 지구적 규모의 정보 공유와 협력이 해결책
1349년 페스트가 프랑스를 습격했을 때 시인 기욤 드 마쇼는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은 온통/ 술집의 식견”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세계는 이 우쭐한 떠버리의 세계로부터 얼마나 멀어졌을까. 여전히 헛소문에 넘어가 섣부른 희망을 품고, 거짓에 속아 방역에 구멍을 내며, 선동에 휩쓸려 혐오의 유혹에 빠지는 아비규환을 연출하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책이 코로나19는 위험하다고, 두 번째 폭풍이 곧 인류를 덮치리라고 경고한다. 또 이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고 인류와 공생하리라고 말한다. 코로나19와 싸우는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나머지 주장은 가짜뉴스에 가깝다.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

김우주의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반니)에 따르면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은 예측 불가능성이 높다. 바이러스는 살아 움직이면서 수많은 변종을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행 단계를 끈질기게 추적해 그때그때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확진자 한 명을 빠르게 격리해 다른 사람의 감염을 한 명 이하로 줄이면 언젠가 병의 유행이 잦아든다. 따라서 환자의 증상 시작과 확진 격리 간의 시차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방역의 핵심이다. 바이러스는 막을 수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

바이러스를 이기는 방법은 혐오와 봉쇄가 아니라 연대와 협력이다. 이재갑·강양구의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생각의힘)에 따르면 “감염자를 낙인 찍고 질책하고 혐오하는 분위기”에서는 의심 환자가 치료를 주저하게 되어 “방역은 어려워지고 공동체는 위험에 빠진다.” 혐오는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다.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또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푸른역사)는 중세 이래 봉쇄가 국가 간 방역을 위한 전략이었으나 무역이 확대되고 교류가 늘면서 유효성이 약해졌다고 말한다. 교류를 영영 끊지 않는 한 언젠가는 유입되기 때문이다. “상품, 금융, 인간 노동”이 “전례 없는 속도로 이동”하는 현재와 같은 “거대한 융합”의 시대에는 위생 장벽을 높이는 게 아니라 지구적 규모의 정보 공유와 협력을 통한 공동의 위험 관리만이 실질적 해결책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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