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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1인3역해 10대 꾀어낸 군인···대법 '무죄' 뒤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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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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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3개의 계정을 돌려가며 사칭해 미성년자를 꾀어내고 이를 빌미로 협박해 강간하려 한 20대 남성 이모씨. 2018년 9월 고등군사법원은 이씨에게 “페이스북 사칭과 강간 시도 시점이 시기상 멀다”며 강간미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이 이를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이씨가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와 청소년성보호법 위반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다른 혐의도 함께 재판받은 이씨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2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위 두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었다.

협박남ㆍ친구ㆍ여성…혼자 세 사람 노릇

소셜미디어.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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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수법은 교묘하고 복잡했다. 페이스북에서 본인 명의 계정과 박씨, 정씨의 계정을 만든 이씨는 나이 어린 여성들에게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접근해 신체 노출 사진을 찍게 하고 이를 빌미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협박남’ 계정은 박씨였다. 돈을 준다며 자기를 위로해 줄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한 뒤 신체 노출 사진을 받으면 돈을 준다는 핑계로 집 주소를 받아냈다. 그런 뒤 피해자를 더욱 협박하며 자신의 친구인 이씨(실제로는 본인)와 내기를 했다며 성관계를 하라고 강요하는 수법을 썼다. 만나서 성관계하면 사진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지금껏 보낸 사진도 지우고 약속한 돈도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에 올려버리겠다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여성 행세도 했다. 또 다른 계정인 정씨 이름으로 ‘협박남 박씨에게 사진을 보내고 대가를 받은 여성’인 척한 것이다. 이씨의 지속된 요구에 피해자 A양이 응했고 그의 계획은 실행되는 듯 보였지만 수사가 시작되며 강간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는 게 이씨의 범죄 사실 중 하나였다.

2심은 페이스북 메시지로 협박할 당시와 실제 만나기로 한 날까지 두달여의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고, 강간까지 구체적 계획이나 의도는 드러나지 않은 점, 이때 이후 다른 협박을 하지는 않은 점을 들어 강간미수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협박은 인정됐지만, 이 협박으로 강간을 시도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의 이런 판단이 틀렸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씨가 1인 3역까지 해가며 집요하게 A양에게 접근한 목적은 바로 결국 피고인의 성욕 때문이라고 짚었다. 교묘하게 협박남이 아닌 친구를 내세워 상대 여성의 경계심을 풀고 피해자를 결심하게 해 성관계로 나아가려 한 건 모두 일련의 과정으로 봐야 하고, 그 사이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이를 달리 볼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만 15세의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신중히 판단해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스1]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스1]

이씨의 범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비슷한 무렵 만 15세인 B양에게도 접근했다. 이씨가 받은 혐의는 B양과 성관계 중 B양이 “그만하면 안 되냐, 힘들다”라고 말했는데도 계속해서 성관계했다는 혐의였다.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행위를 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이 행위가 성적 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을 했다. 만 15세라면 미숙하나마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고 군검사가 애초 기소할 때 성관계 자체에 대해서는 학대 행위로 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은 이 부분 역시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아동ㆍ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판단할 때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판결했었다. 아동ㆍ청소년이 겉으로 보기에 성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타인의 속임수나 잘못된 신뢰관계를 이용한 동의라면 이를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했는지를 신중하게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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