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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러시아가 미워서 한국전쟁 파병 온 쿠르드족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65) 

혹시 날아가는 거북이를 본 적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을 편하게 산 사람이다. 거북이도 날 수 있다. 코너에 몰려서 죽을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는. 한민족도 그리 편하게 살지는 못했다. 왜구와 오랑캐에 시달렸던 역사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한시도 편한 날 없이 살아가는 민족이 지구 저편에 있다. 살아갈 터전을 잃고 하루하루를 급박하게 쫓기듯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팔레스타인, 체첸, 티베트, 위구르 등등. 그중 하나가 쿠르드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굽어보며 할렘을 품고 있는 톱카프 궁전,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아야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의 범상치 않은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 pixabay]

보스포루스 해협을 굽어보며 할렘을 품고 있는 톱카프 궁전,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아야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의 범상치 않은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 pixabay]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고, 동서양이 만난다는 그곳. 천 년 동로마와 600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이자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고색창연한 건물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돌담길과 이국적인 물건들로 가득 찬 시장 골목을 거닐어 보라.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부라더” 하면서 친근하게 다가서 물건을 파는 손이 큰 그들. 값도 무척 싸지만, 디자인과 품질은 유럽의 것 못지않게 고급스럽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굽어보며 할렘을 품고 있는 톱카프 궁전,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아야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의 범상치 않은 역사를 말해준다.

그런 이스탄불에도 명암이 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비극적 사연을 내면에 감추고 수많은 쿠르드인이 숨죽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쿠르드족은 산악 민족이다. 터키 남동부, 이란 이라크 북부의 산악지대와 시리아 북쪽 국경이 그들의 땅이다.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으로 인구는 3000만~4000만으로 추산된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닌 민족이지만 나라 없이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며 독립문제로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와 수시로 충돌하고 있다.

영화 ‘거북이도 난다’는 이라크 전쟁 난민 캠프에서 지뢰와 폭탄을 제거하며 팔다리가 잘린 채 천진난만한 웃음을 던지는 쿠르드 애들을 조명한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쿠르드 출신으로 그들의 비극적인 역사, 쫓기고 또 쫓기는 그들의 고달픈 현재를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호소한다.

영화 ‘거북이도 난다’는 이라크 전쟁 난민 캠프에서 지뢰와 폭탄을 제거하며 팔다리가 잘린 채 천진난만한 웃음을 던지는 쿠르드 아이들을 조명한다. [사진 영화 거북이도 난다 포스터]

영화 ‘거북이도 난다’는 이라크 전쟁 난민 캠프에서 지뢰와 폭탄을 제거하며 팔다리가 잘린 채 천진난만한 웃음을 던지는 쿠르드 아이들을 조명한다. [사진 영화 거북이도 난다 포스터]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500만명의 쿠르드는 터키에 골치 아픈 존재이다. 1차 대전 당시에는 연합국 편에 서서 오스만 튀르크에 대항했고, 끊임없이 터키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있어 정부의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한때 제국을 경영했던 터키는 종교·영토 문제로 이웃 국가와의 분쟁이 적지 않다. 최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는 같은 무슬림 아제르바이잔 편에 섰다. 이웃인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오명도 있고, 국경 남쪽 시리아 내전에도 깊이 개입하고 있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 편에 서서 러시아 남진정책에 강력한 저지선 역할을 했다. 트럼프의 미국과 사이가 틀어져 지금은 러시아에 다소 경사돼 있다. 한국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사를 파견해 형제국으로 불린다. 그 배경에는 흑해를 두고 러시아와 12번의 전쟁을 치른 역사가 있다. 러시아가 한국전쟁에 개입한다는 소식에 분개해 한반도에 그렇게 많은 병사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은 오르한 파묵의 자전적 에세이다. 오스만 튀르크의 영광을 기억하고, 쇠락해 가는 이스탄불을 탄식한다. 그리고 작가 자신의 가족사를 되뇌며 이스탄불의 과거와 현재, 그 명암을 격조 있게 그려낸다. 오르한 파묵은 터키보다는 ‘이스탄불의 소설가’로 불리기를 좋아했을 만큼 이스탄불에서 그의 정체성을 찾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 책을 2006년 노벨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파묵은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과 복잡한 문화적 충돌을 탐색하고 잘 조명했다”고 했다.

최근 『이스탄불 이스탄불』이라는 또 다른 소설이 나왔다. 이번 이스탄불은 깊디깊은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 아마도 혁명에 가담했을 것 같은 네 남자의 얘기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그들, 누구보다도 아프고 외로운 그들의 얘기를 통해 인간 심연의 애잔한 모습과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 부르한 쉰메즈는 쿠르드 출신 인권변호사였다가 정치적 이유로 박해를 받은 후 소설가로 전업했다. 이 소설은 45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며, ‘21세기의 고전’으로 불리고 있다.

이스탄불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도시이다. 수많은 색깔로 엮어진 양탄자와 같다. 동서가 혼합되고, 영광과 쇠락이 함께 하며, 현란함과 우울함이 혼재한다. 이스탄불은 보면 볼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고혹적이고 풍요로운 도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제국을 경영했던 오스만 튀르크의 당당한 후손들이 있는가 하면, 수백 년을 나라 없이 유랑하고 있는 쿠르드,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그리고 시리아 난민의 비애가 있다.

아득한 꿈속의 도시이자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역 이스탄불. 몇 번을 가보아도 마치 넉넉한 형제의 집에 온 듯 항상 푸근하고 따뜻하다. 그리스와 로마가 있고 오스만 튀르크도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그곳 술탄 아흐멧 지구의 유서 깊고 웅장한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이스탄불의 과거와 현재를 깊이 음미해 보기를 권한다.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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