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취임 후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별명을 굳혔다. “엄중하게 보고 있다”, “엄중하게 주의 드린다”는 말을 자주 반복하다가 그렇게 됐다. 국무총리 시절 ‘사이다 총리’, ‘전투 언어술사’로 불리던 속 시원한 모습이 사라졌단 평이 많지만, 이 대표 주변에서는 대신 그의 ‘츤데레 스킨십’ 일화가 최근 자주 흘러나온다.
“가혹하다”(호남 초선), “시큰둥하다”(수도권 친문)는 이 대표 겉모습 뒤에서 예상 밖의 인간적 면모를 발견했다는 전언들이다.
#1. 바삭함 못 잊어
이 대표는 당대표 선거를 앞둔 지난 7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탕수육은 찍먹이다. 그래야 바삭바삭하다”라고 했다. 즉답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화법을 패러디한 ‘이낙연 탕수육 먹는 법’ 게시물이 유행할 때였다. 얼마 뒤 다른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치킨은 후라이드냐, 양념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분위기 전환차 나온 가벼운 대화 주제였는데, 특유의 웃음기 없는 얼굴로 정색하고 나온 이 대표 답변이 이랬다.
“바삭바삭하니까 후라이드죠.”
당시 대화 자리에 있던 한 보좌진은 “대표 목소리가 유독 낮고 굵게 들렸다”고 회상했다. 엄근진 이미지를 얻은 이 대표는 진영 내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에 비해 “지루하고 올드(old)하다”(수도권 재선)는 평을 듣는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이 대표가 사석에서는 농담도 잘하고 일부러 무한 정색해 주변을 웃기는 스타일인데, ‘공적 자리에서의 농담·유머는 내 특기가 아니다’란 생각이 있어 공식 석상 발언만은 극도로 조심한다”고 전했다.
#2. 쿨내나는 막내 사랑
이낙연호 민주당에는 역대 최연소 최고위원인 박성민(24·여) 최고위원이 있다. 고려대 재학 중인 그는 발탁 때부터 ‘이낙연 픽(선택)’으로 주목받았다. 한 최고위 참석자는 “이 대표가 박성민 최고위원을 아주 아낀다. 중요한 자리에 갈 때 항상 찾는다”고 했다. “한 번은 긴급 간담회에 A 최고위원이 10분 정도 늦어 대표가 겉으로 언짢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뒤 박 최고위원이 회의에 늦었을 때는 ‘학업과 당직을 병행하느라 힘든 거 다 알고 있다’며 오히려 격려해 주더라.”
68세의 호랑이 대표도 지도부의 막내 앞에서는 한없이 너그럽다는 게 다른 최고위원들의 공통 반응이다. 대선을 1년 반 앞두고 당내에선 참신한 청년·여성 정치인에 대한 수요가 높다. 박 최고위원에 예비 대선 주자들의 러브콜이 쇄도하는 분위기를 감지한 이 대표가 하루는 넌지시 이런 말을 꺼냈다고 한다.
“나와 같이 가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고, 편하게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박 최고위원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정치적 거물이면서도 항상 더 나은 정치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3. 기습 전화의 실체
민주당 대변인단은 출범 초기부터 ‘군기반장 이낙연’에 시달렸다. 기자 출신인 이 대표는 말과 글에 유독 깐깐한 거로 정평이 나 있다. 때론 “말을 해줘도 그걸 글로 못 풀어내냐”, “내 말귀를 못 알아듣냐”는 직격탄을 날린다고 한다.
정대철 전 고문 등 동교동계의 민주당 복당 타진 보도(10월 11일) 다음 날, 상임위(산자중기위) 회의 중인 신영대 대변인 휴대폰에 이 대표 이름이 떴다. 불길한 예감을 받은 신 대변인이 몸을 굽혀 “회의 중입니다”라고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의외의 외마디가 돌아왔다.
“잘하셨습니다. (딸각)”
상상도 못 한 기습 칭찬을 당한 신 대변인은 “전날 비번이었는데, 복당 보도를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지도부에 강하게 ‘적극 대응하자’는 의견을 냈다. 대표가 결과적으로 합당한 조치였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보도 이튿날 “동교동계 원로들은 민주당 바깥에서 원로다운 방식으로 민주당을 도와주시리라 믿고 있다”고 직접 상황을 정리했다.
7개월 시한부로 시작한 이낙연호 민주당은 이제 출항 석 달을 앞두고 있다. 현시점의 당내 여론은 “대과(大過) 없이 안정적으로 왔지만, 눈에 띄는 정책 성과를 내기엔 시간이 아쉽다”(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쪽에 모인다. 이달 초 외부 비판을 뒤집어쓰고 조기 당헌 개정이라는 강수를 감행,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방침을 굳힌 건 나름의 승부수로 평가받는다.
“어릴 때부터 영감 목소리를 내서 동네 누나들이 ‘생영감’이라고 불렀다.”(저서「어머니의 추억」중)
중저음 목소리만큼 무거운 점잖음이 트레이드 마크인 이 대표를 두고 한 청와대 출신 의원은 “정책에 대해서 신중하고, 공직자로서 사리사욕이 없는 점은 큰 장점”이라고 했다. 대선 주자 이낙연의 당대표 임기는 내년 3월 9일까지다.
츤데레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
심새롬·김효성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