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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가려는 청춘들, 다양한 꿈에 날개 달아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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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호 16면

[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미래세대를 위한 협력’

“매일 내가 졸업한 대학의 교육에 감사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접하지 못했을 수많은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지적 탐구의 기회를 강의 중 얻을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교수와 전공인 화학뿐만 아니라 역사, 프랑스어, 물리학, 수학, 지리 그리고 경제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던 동료들과 강의실에서 교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에 기반을 둔 지적 환경을 제공해 준 곳이 나의 모교였습니다.”

영국, 2009년 국가 주도로 시작 #젊은이들 호기심·창의성 일깨워 #CEO 등 주요 기업인 700명 참여 #현장 전문가 5만5000명 자원봉사 #획일적 입시로 길 정해지는 한국 #꿈을 소멸시키는 교육 안타까워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 버클리대 교수가 자신이 졸업한 포모나 컬리지(pomona college)에 관해 회상한 내용 중 일부다. 열린 사고로 자연 현상과 세계에 관해 질문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대학에서의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는 말이다.

포모나 컬리지와 같은 리버럴 아츠 컬리지(Liberal arts college-학부중심대학교)는 우리에게 낯설다. 하지만 미국 내 최상위권에 속하는 이들 대학의 교육에 주목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어떤 꿈을 키워야 하는지 영감을 주는 데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다우드나 교수는 자신의 학부 시절 가장 큰 가치 중 하나가 직업의 멘토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 멘토로 꼽은 은사 중 한 명인 샤론 멀둔 교수도 37년 전 생화학 수업을 듣던 당시 2학년 여학생을 기억했다.

37년 전 멘토가 준 영감, 노벨상 이끌어

1,2,4 ‘나는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과 행사장 모습. [사진 Education & Employers] 3 올해노벨 화학상을 받은 제니퍼 다우드나 버클리대 교수. [사진 포모나 컬리지]

1,2,4 ‘나는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과 행사장 모습. [사진 Education & Employers] 3 올해노벨 화학상을 받은 제니퍼 다우드나 버클리대 교수. [사진 포모나 컬리지]

대부분 학생이 의학 대학원을 준비하던 때 그녀는 기초 연구에 관심을 갖던 몇 안 되는 학생이었다. 이 학부생의 작은 관심에 주목해 함께 연구한 경험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듯 조금 다른 꿈과 가능성을 갖는 학생에게 주목하고 꿈을 키워준 것이 세상을 바꾸는 도전의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었다. 학생에게 일자리를 구하는 것에 집착하고 경쟁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꿈꾸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에게 영감을 주었던 대학에 주목하는 것일까. 지난 10월 국내에서는 노벨 화학상 발표 직전 한국 과학자가 후보에 오르자 여론의 관심이 고조된 바 있다. 발표 직전까지 수상 여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더니 결과 발표 이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수상자가 누구인지는 고사하고 대학 연구 및 교육 여건 등 미래 학문과 과학 발전 방안을 고민하거나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 해법을 찾는 논의도 찾아볼 수 없다.

캠페인 이야기

캠페인 이야기

과학계 일부에서만 우리 아이들의 호기심과 창의성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절실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순간 “나는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고 있다(I am inspiring the future)”라는 캠페인이 떠올랐다. 이 캠페인은 영국의 공익단체 E&E(Education and Employers)가 ‘미래세대를 위한 협력’이라는 구호 아래 설립 10주년을 계기로 시작한 활동이다. 캠페인을 주도하는 E&E는 2007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고든 브라운이 의장을 맡았던 국가교육발전위원회(NCEE)의 설립 제안과 정부 지원으로 2009년 10월 런던에서 출범했다. 이 단체는 대학을 포함한 모든 교육기관이 젊은이들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동기를 부여하고,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숨겨진 잠재력을 발굴하자는 목적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젊은이들이 갖는 꿈의 다양성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교육의 현장, 직업에 대한 몰이해는 자연스럽게 꿈이 사라진 미래세대와 마주하는 현실을 초래했다는 문제의식도 한몫했다.

E&E 이사회 의장인 데이비드 크뤽섄크는 “다양한 직업의 가치를 이해함으로써 젊은이들이 창의적인 진로를 탐색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 캠페인을 전개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를 위해 2010년에는 각급 학교 및 대학 방문 캠페인을 진행했다. 기업인들이 교육현장을 방문해 그들이 지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탐색하도록 했다. 어떤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점검이 아니라 좀 더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위한 취지였다. 누군가 정해 놓은 교육 사업이나 강연 활동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산업 현장에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 상호 협력하도록 변화시킨 것이다. 이 활동에는 영국 주요 기업 최고 경영자를 비롯해 700여 명 이상의 기업인이 참여했다. 지역 공립 학교와 지방 대학교도 1000여 명 이상의 저명한 연사와 연결되는 기회를 얻었다. 지속적인 자원봉사자 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2013년에는 다양한 직급의 현장 전문가 5만5000여 명이 봉사자로 등록했다. 이들은 무료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학교의 멘토로 연결되고 자신의 직업과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 결과 약 10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중고교 80%, 초등학교 20%가 캠페인에 참여함으로써 봉사자들은 수백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다양한 직업과 역할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정 직업 강요 아닌 잠재력 발굴 도와야

5 ‘나는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과 행사장 모습. [사진 Education & Employers]

5 ‘나는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과 행사장 모습. [사진 Education & Employers]

안드레아스 슐라이 OECD 교육인적역량국장은 “7세 이하 어린이는 성별, 인종 및 가정환경 때문에 미래의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다양성이 제한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면서 “이 캠페인은 학생 스스로 잠재력을 발견하도록 기회를 확대해 주었다”고 말했다. 기성세대가 해야 하는 교육은 특정한 직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업에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도전적인 과제를 찾아내도록 도와주는 겸손한 역할이라는 걸 강조한 것이다.

매년 입시 철 대학을 선택하는 수험생들의 모습에서 진짜 꿈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진 지 오래다. 꿈이 사라진 현실 속에서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직업군에 착하게 순응한 학생들이 점수로만 평가받고 있는 모습만 무기력하게 바라보게 된다. 저들이 꿈을 키워야 할 청소년 시절 얼마나 많은 산업과 직업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을까.

주입식 교육에 찌들어 면접과 논술시험을 치르기 위해 들어서는 대학 캠퍼스에는 “00고시 00명 합격, 00전문대학원 00명 합격” 등 문구가 선명한 플래카드가 그들을 반길 뿐이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다우드나 교수가 경험했던 37년 전 포모나 컬리지의 생화학 강의실, 그녀가 2020년 한국 대학 강의실에 있다면 37년 후 분명히 어느 환자에게 처방전을 써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교육과 대학입시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꿈을 소멸시키면서 수많은 노벨상 후보자를 사라지도록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이종혁 광운대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공공소통연구소 소장이다. 디자인 씽킹과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캠페인 개발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발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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