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가덕도에 금메달 주는 격, 신공항 평가 다시 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21 00:02

업데이트 2020.11.2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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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호 04면

동남권 신공항 또 표류

“여지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가덕도, 비용 많이 들고 접근성 부족
2016년 평가에서 밀양에도 밀려

예타 마치고 환경평가 하던 김해
김경수·오거돈 반대에 무기 연기

표 욕심에 원칙 잃은 10조 국책사업
‘고추 말리는 정치공항’ 재연 우려

박완서 작가는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순위와 관계없이 달리는 마라토너에게 성원을 보냈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에 우리는 꼴찌 주자에게도 갈채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꼴찌에게 주는 금메달은 다른 얘기다. 정부 여당이 가덕도를 동남권 신공항으로 밀고 있다. 부산 지역 야당 의원들은 질세라 갈채를 보낸다.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행보다. 10년간의 갈등 끝에 결정된 10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이 엉뚱한 결론으로 뒤집힐 판이다. 전문가들은 “김해가 적합하지 않다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왜 꼴찌인가

동남권 신공항의 뿌리는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1월 당선인 시절 부산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신공항 건의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3년 뒤인 2006년 공식 검토를 지시했다. 실질적인 조사는 대선 공약으로 ‘영남권 신공항’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졌다. 2011년 발표된 입지평가위원회의 결론은 100점 만점에 밀양이 39.9점, 가덕도는 38.3점이었다. 두 후보지 모두 기준점 이하로 ‘부적합’ 평가가 나왔고, 신공항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신공항은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면서 재점화됐다. 국토교통부 용역에 따라 2016년 파리공항공사엔지니어링(ADPi)은 사전타당성 검토 결과를 내놨다. 이번에도 가덕도는 꼴찌였다. 7조8000억원을 들여 국제선 활주로 1본만 만드는 방안은 1000점 만점에 635점, 10조7000억원을 들여 활주로 2본을 만드는 방안은 581점에 그쳤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가덕도가 낮은 점수에 머무른 것은 공항 건설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약점은 매립이다. 오성열 한국교통연구원 공항정책 팀장은 “인천공항을 만들 때 영종도는 수심 5m 이하의 갯벌을 매립하는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가덕도는 수심이 10~20m로 깊은 데다 외해와 면하고 있어 태풍과 파도의 영향도 심하게 받는다”며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충분한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가덕도에 활주로 2본을 만들려면 예정지 남쪽 국수봉(해발 264m)을 통째로 깎아내야 한다. 비용만 활주로를 만드는데 8조3000억원, 산을 깎아내는데 1조2200억원이 들고 환경에 대한 영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접근성도 김해보다 좋지 못하다. 김해공항은 남해고속도로, 대구부산고속도로와 연결되고 부산김해경전철도 통과한다. 국토부는 2016년 내놓은 ‘영남권 신공항, 김해 건설이 최적’이라는 설명 자료에서 “동대구역에서 환승 없이 연결되는 지선 철도망을 신설하면 7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며 “김해신공항은 영남지역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관문공항”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 자료는 다운로드가 막혀 있다. 반면 가덕도까지는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 접속도로만 있다. 철도는 가덕도 북단의 부산신항 4, 5부두까지 이어지는 부산신항선(화물철도)뿐이다. 철도와 도로를 추가로 연결하는데 1조원 이상이 든다.

#왜 금메달인가

2016년 사전타당성 조사 이후 김해신공항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환경영향평가를 받았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인 건설사업은 의무적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김해공항은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타조사 결과 총사업비 5조8431억원, 비용편익(B/C) 0.94, 계층분석(AHP) 0.504로 평가됐다. 보통 B/C는 1, 여기에 정책 및 지역균형발전을 감안한 AHP는 0.5를 넘어야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토부는 2018년 환경영향평가를 했다. 잘 나가던 신공항은 여기서부터 암초를 만났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과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당시 부산시장 등이 소음문제 등을 들어 환경영향평가 공청회를 무산시켰다. 신공항 건설은 기약 없이 연기됐다. 지난해 12월 국무총리실은 국무총리 훈령 제748호를 제정해 김해신공항 사업 검증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수삼 위원장은 지난 17일 “산악 장애물 제거 문제를 지자체와 협의하지 않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있는 만큼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김해신공항에 문제가 있다는 결과는 가덕도 신공항 추진으로 이어졌다. 박성식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꼴찌인 가덕도에 사업을 주는 건 지금까지 진행했던 국책 사업 가운데 전례 없는 상황”이라며 “백번 양보해서 사업이 엎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2순위에 주던지 다시 처음부터 후보 지역을 추려 사업을 추진해야지 예타 면제 특별법까지 만들어가며 가장 타당성이 떨어지는 지역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상식 수준에서 벗어난 결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항이 정치적인 고려에 흔들린 결과는 자명하다. YS공항이라는 별명의 양양공항은 지난해 이용객이 5만명이고, 한화갑공항으로 불리는 무안공항은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는 사진으로 곤욕을 치렀다. 승객이 없는 예천공항은 공군에게 줬고, 울진공항은 비행연습장으로 쓰인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총리실이 사업을 원점으로 돌리고,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그걸 바로 수용하겠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국책 사업을 이런 식으로 바꿀 거면 용역 조사나 예타 분석은 뭐하러 하느냐”고 반문했다.

가덕도에 호의적인 전문가들도 절차에는 문제를 제기한다. 박용하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개인적으로 산지가 많은 부산보다 가덕도에 공항을 만드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도 “전문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걸 종합해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정부가 머릿속에 표 생각밖에 없으니 불필요한 갈등을 키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창우·김나윤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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