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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내가 음식 간 봐달라고 할 때 정답은 딱 하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88)

코로나가 시작되고 어딘가 떠날 일이 없었는데, 얼마 전 가을이 지나가기 전 바람이라도 쐬자며 남편과 길을 나섰습니다. 가을을 느끼며 낙엽 쌓인 거리를 걷는데, 뒤를 따라오는 커플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내 귀에도 들립니다. 아직 사귀는 사이 같아 보이지는 않고 소위 ‘썸타는’ 사이 같아 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썸남’, ‘썸녀’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관심가는 이성과 잘 돼 가다’, ‘관심가는 사람과 연애하기 직전의 관계를 유지하다’라고 돼 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나누는 커플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니 문득 연애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사진 pixnio]

서로를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나누는 커플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니 문득 연애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사진 pixnio]

딱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 직전의 관계에서 우리는 상대를 어떻게 대했던가요? 최대한 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신경을 쓰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조심스럽진 않았나요? 행여나 상대의 반응이 예상과 다를 때는 혹시 내가 뭘 잘못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나누는 커플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니 문득 연애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자연스럽게 그즈음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갔죠. 그러다 뚱딴지같지만 그날만큼은 우리도 썸타던 시절처럼 서로를 대해 보자 했습니다. 웬일인지 남편도 그러겠다며 쿵짝을 맞춰 줍니다.

물론 정말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 평소보다 말이 조심스러워지고 생각 없이 튀어나오던 말도 한 번 더 신경 쓰게 됩니다. 무엇을 사거나 먹고 싶을 때도 먼저 의중을 묻습니다. 걷는 걸 좋아하는 제가 남편의 페이스에 못 맞추는 것은 아닌가 평소보다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연애를 막 시작하려던 즈음의 남편과 나를 떠올리며 새삼 요즘의 우리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연애를 막 시작하려던 즈음의 남편과 나를 떠올리며 새삼 요즘의 우리 모습을 생각해 보게됩니다. [사진 pxfuel]

연애를 막 시작하려던 즈음의 남편과 나를 떠올리며 새삼 요즘의 우리 모습을 생각해 보게됩니다. [사진 pxfuel]

모처럼 유치한(유치하지만 나름 의미 있던) 장난으로 ‘하하’,‘호호’ 하다 들어선 식당에서 마치 그날의 우리를 위한 듯 걸려 있는 시 한 편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마누라 음식 간보기 -임보

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려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 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즈음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 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 맞추는 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온종일 생각만으로 설레던 감정이야 세월에 따라 묻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상대를 위한 노력도 같이 줄었던 날을 돌아본 하루였습니다. 여러분의 ‘썸타던 시절’은 어땠나요?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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