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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향우회와 동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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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63년에 등장했다는 계몽표어다. 화끈하다. 지금의 최저 출산율 국가 타이틀은 저런 과격한 산아제한의 위대한 성취가 아닐지. 도대체 얼마나 애를 낳았기에 저리 절박한 표어가 등장했을까.

무작정 상경에서 달라진 사회이동 #수도권 인구집중의 동력은 대학교 #국가 균형발전의 치료책도 대학교 #지방거점 국립대학 집중육성해야

2백만 명이던 서울 인구는 1963년이 되자 갑자기 3백만 명으로 바뀐다. 서울시민들이 합심·작심하여 같은 날 덮어놓고 애들을 백만 명 낳은 건 아니겠다. 서울시 행정구역이 확장되었다. 경기도 광주 일부도 지금의 말 많은 서울 강남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울 인구는 1988년에는 1천만 명에 이른다. 25년 동안 7백만 명이 증가했다. 이번에는 행정구역 변화도 아니다. 은평구 북쪽 일부가 더해졌을 따름이다. 계몽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민들은 덮어놓고 저리 아이들을 낳았을까. 서울시의 모든 결혼 세대가 아이 일곱을 골고루 낳았으면 저 숫자가 성취된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의 소위 586세대들은 거의 10인 가족의 자녀여야 한다. 서울은 거지 천국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건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기로 불리는 시대다. 거지꼴이 된 게 아니고 오히려 졸부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서울의 인구증가가 생물체로서의 자연증가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이것은 사회적 증가였다. 그걸 우리는 ‘무작정 상경’이라는 단어로 불렀다, 그들이 7백만 명 증가의 대다수를 구성했다는 이야기다.

이 막대한 상경 인구가 서울에서 재집결하여 만든 결사체가 재경향우회다.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신기한 조직체다. 이들은 떠나온 고향과 도착한 서울에 각각 독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암약하는 정치집단이 되었다. 선거철이면 출마자의 정치적 배경과 공약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속한 향우회와의 친소관계로 투표성향이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끝에 물어야 했던 문장이, 우리가 남이가?

막강했던 향우회의 결집력과 영향력 쇠퇴가 하루가 다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이미 향우회 총회 개최가 무산되는 사례도 등장했다. 그 자리를 재경동문회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1천만 명 이후 서울 인구집중의 양상변화를 보여준다. 즉 무작정 상경이 아니고 대입 상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 동력을 보여주는 단어가 대학 입시 철이면 등장하는 ‘인서울’이다.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 인터넷 검색으로 줄줄이 엮여나오는 이 암호는 공고하게 자리 잡은 대학의 서열이다. 이야기의 요점은 여기 지방대학이 모조리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인서울’이 낳은 것은 결국 지방인구 감소다. 상경하여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절대 지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서울에서 취업하고 결혼하여 어렵게 생존해나간다. 그리고 거지꼴이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출산을 포기한다. 인구가 감소하니 지방대학은 더 어려워진다.

국가균형발전의 당위성은 충분하고 정부의 의지도 여전히 강력하다. 그래서 온갖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서울 인구를 지방으로 뿌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직장 따라 뿌려져야 할 그 인구가 가족해체의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뿌려지지 않는다. 가장을 제외한 가족이 서울에 남는 이유도 결국 대학이다. 그 자녀가 대입에서 ‘인서울’하려면 결국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 순환구도가 극복되지 않으면 국토균형발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핵심은 대학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국가균형발전’을 입력하면 죄 토건 사업이 나온다. 내년 사회간접자본 예산책정의 배경에 깔린 단어도 국가균형발전이다. 예비타당성 검토도 건너뛰고 덮어놓고 토건 사업에 예산을 몰아주겠다고 한다. 수도권 인구집중은 증상이되 원인은 교육과 취업이다. 교육이 앞에 있다. 치료법은 지역안배 토건 사업이 아니라 지방거점 국립대학 경쟁력 강화다. 무늬만 갖춘 사립대학들 눈치도 보면서 공평하게 몇 푼 주겠다고 하지 말고 지방거점 국립대학을 덮어놓고 지원할 일이다. 지방거점 국립대학은 명확한 공공재다. 이들이 균형발전의 거점이고 촉매가 되어야 한다.

대학은 학생·교수·시설의 복합체다. 장학금·연봉·시설비 모두 예산을 요구한다. 여전히 효과 여부로 논쟁이 분분한 4대강 사업의 예산이면 전국 지방거점 국립대학 대학생 전원에게 25년간 전액 장학금을 줄 수 있었다. 젊은 교수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인서울’해야 한다며 연봉만으로는 지방행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은퇴한 교수도 청년들이다. 이들을 석좌교수로 초빙할 수 있고 이들은 여전히 좋은 교육을 해낼 수 있다.

대학이 지역문제를 모두 해결하지 않지만, 대학 빼고 한국의 지역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동인으로 짚어야 할 것은 전 국민적 교육 열기였다. 그 열기가 서울로만 모여 ‘인서울’이 되었다. 오래된 표어가 다시 환생해야 하겠다. 지역이 거지꼴을 면하게 하려면 지방거점대학에 덮어놓고 투자해야 한다. 그 투자는 건설이 아니고 교육이라고 부른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