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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상가 전세방, 장관님은 살고 싶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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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24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전세난 해소를 위해 2022년까지 공공임대주택 11만4000가구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졸지에 ‘전세 난민’ 신세가 된 국민들 반응은 싸늘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대책 요약=대책 없음” 등의 비판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쏟아졌다. 특히 호텔·상가·오피스를 주택으로 개조해 활용하는 방안은 조롱거리가 됐다. 울화통만 키운 대책이란 지적이다.

11·19 전세대책 논란 #정부 “공공임대 11만 가구 공급” #상가·호텔 등 개조 1만3000가구 #신축 주택 매입해 4만여 가구 임대 #“전세난 핵심인 아파트 빠져 한계” #수요와 어긋난 11·19 전세대책 #가장 확실한 재개발·재건축 배제 #효과 크지 않은 자투리 끌어모아 #“지금이라도 임대차법 원위치해야”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서울시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3만5000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공공임대주택 11만4000가구를 공급한다. 민간 건설사가 집을 지으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신축 매입약정 방식으로 4만4000가구, 공실인 상가·오피스·호텔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해 1만3000가구를 내놓는다. 공공전세주택도 1만8000가구 공급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이날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부산시 해운대·수영·동래·연제·남구와 대구시 수성구, 경기도 김포시(통진읍·월곶면·하성면·대곶면 제외)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신규 지정했다.

전세 대책에서 정부가 공을 들인 부분은 속도다. 내년 상반기까지 전체 물량의 40%가 넘는 4만9000가구를 내놓을 예정이다. 5·6대책과 8·4대책에서 수도권 30만 가구 등 대규모 공급 계획을 세웠지만, 2023년 이후에나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집은 건축 기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빈집이나 상가·오피스·호텔을 끌어모았다. 30년간 월세로 살 수 있는 ‘평생주택’도 도입한다. 중형 임대(전용 60~85㎡)를 포함하는 평생주택은 성남, 의정부, 의왕, 부천, 시흥, 대전에 공급된다. 중위소득 150%(4인 가족 기준 월 712만원)까지 입주할 수 있고, 임대료는 시세의 90% 이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효과가 크지 않은 자투리를 모은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 없고, 아파트 대책이 없으며, 규제 완화가 없는 ‘3무(無) 대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전세난의 근원인 매매수요 억제에 따른 전세수요 확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심 공급은 재개발·재건축을 푸는 게 가장 확실한데 그걸 배제하니 작은 사업을 끌어모으는 형식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속도전을 강조했지만 당장 겨울방학을 전후한 신학기 전세 수요를 감당할 정도의 공급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입지가 좋지 않아 비어 있는 집을 전세로 돌린다 해서 수요가 생길지도 미지수다.

현실 부정은 수요와 어긋난 대책을 낳았다. 정부가 꼽은 전셋값 상승의 주요 원인은 저금리와 가구 분화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3~4인 가구 살 아파트 절실한데, 원룸에 초점 맞춘 대책

국토부에 따르면 수도권 가구 수는 2017년 18만 가구에서 지난해 25만4000가구로 늘었다. 인구가 줄어도 가구 수가 늘면 실제 주택 수요가 늘어나게 돼 있다.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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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시장에서 가장 부족한 주택은 3~4인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7~10월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전·월세 통합지수는 1.9포인트 올랐다. 연립·다세대(0.4포인트), 단독주택(0.2포인트)보다 전세난이 심각하다.

특히 중형 아파트 기근이다. 전용 40㎡이하 소형은 1.2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전용 40~60㎡는 2.4포인트, 전용 60~85㎡는 2.9포인트, 전용 85~102㎡는 3.2포인트 상승했다. 그런데 이번 대책의 초점은 호텔 개조 등 원룸에 맞춰졌다.

허 연구위원은 “전세난의 핵심인 아파트가 아니라 비아파트 중심의 공급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11만4000가구라고 하지만 상당 부분이 이미 8·4대책에서 발표한 물량과 중복되고, 신규로 전세 전환한 물량은 2만9500가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비어 있는 상가나 오피스, 호텔을 리모델링하는 방안도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호텔이나 오피스 등을 주택으로 바꾸려면 조리시설을 위한 배관공사부터 주차, 냉·난방, 하수처리시설, 환기, 채광, 화재, 보안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수없이 많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조식과 룸서비스도 되냐. 이러다 캠핑장에서 살라고 하겠다” “배(아파트 부족)가 아프다는데 아픈 배를 낫게 해줘야지 그냥 죽(호텔 임대)만 먹으라는 게 해결책이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호텔은 세입자 명도에 따른 지연이 없어 빠르게 공급할 수는 있지만 난방·평면 등 주거 편의성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날 “호텔이 질 좋은 청년 주택, 1인 가구 주택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부 대책이 매매시장과 규제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전세 대책이 아닌 ‘임대’ 대책이란 문제도 있다. 당장 LH가 죽을 판이다. 신축매입 약정이나 호텔 등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은 모두 LH가 주도해야 한다. 현재 LH 부채는 132조2766억원이다.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246%에 이른다. 여기에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펼치며 2024년까지 부채는 180조3847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는 빚이다.

돈이 들지 않지만 근본적 대책으로 꼽히는 도심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전세 수요를 분산하기 위한 월세 소득공제 확대, 임대차 3법의 예외 적용을 통한 전세 물량 확대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재건축 조합원의 2년 거주 의무화 등 집주인의 실거주 요건 강화가 전세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며 “전세 시장을 압박하는 매매시장 규제를 함께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현재 전·월세난은 분양할 주택을 전·월세로 바꾼다든지 해서 얼마를 추가 공급한다고 해결될 총량의 문제가 아니다”며 “지금이라도 임대차 3법을 원위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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