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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파국행 공수처..국민도 못막는다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자추천위원회 3차 회의. 당연직 추천위원인 추미애 법무장관이 보인다. 오종택 기자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자추천위원회 3차 회의. 당연직 추천위원인 추미애 법무장관이 보인다. 오종택 기자

공수처장 추천 무산되자..여당은 연내출범 법개정 돌입 #대책없는 야당 '국민이 막아달라'지만..아무도 못막는다

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연말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모두 예상했던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18일 밤 공수처장을 추천하는 위원회가 결정짓지 못하고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야당쪽 추천위원 2명이 비토권을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19일 아침부터 여야가 무산의 책임을 떠넘기는 맹비난을 주고받았습니다.
(민주당) ‘반개혁세력이 공수처를 난도질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중대결심하겠다. 무슨일 있어도 연내 출범시킨다.’
(국민의힘) ‘대통령을 비호할 공수처장을 뽑기위한 입법독재.’‘공수처 독재를 국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
민주당은 속전속결에 들어갔습니다.
야당에게 허용해준 비토권을 빼앗기위해 다시 법을 고치겠다는 겁니다. 개정안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25일 해당 상임위에서 법안을 처리하고, 다음달 2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합니다.
이미 예상됐던 수순입니다.

3.
국민의힘은 최대한 저항할 겁니다.
의석수가 부족해 표결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와 달리 몸싸움도 못합니다. 육박전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처벌됩니다.

야당이 택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은 이후 의사일정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각종 쟁점법안이나 예산처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표결로 통과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당이 단독처리하는 정치적 부담을 지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4.
사실 여당 입장에서 부담이 적지는 않습니다.

불과 1년전 야당에게 약속했던 비토권을 다시 빼앗는 모양새가 옹색합니다. 비토권이란..처장 추천위원 7명 가운데 야당몫으로 2명을 배분하고..추천결정은 6명 이상이 합의하는 형식입니다. 야당 2명이 반대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건 안되는 법이었습니다.
예상대로 18일 추천위원회에서 3차례 표결을 했지만 6표 이상을 얻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야당이 추천할 뜻 없이 방해만 한다’는 여당의 주장은 맞습니다. 물론 여당도 그걸 모른 건 아닙니다. 안되면 법을 또 고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5.
애시당초 여당이 비토권까지 인정했던 이유는 공수처법이 그만큼 문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공수처의 아킬레스건은 대통령이 임명권자이기에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야당에게 비토권을 주면서‘여당 맘대로 처장을 못뽑으니까 걱정말라’고 설득해 지난 연말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그때도 야당(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는 방식으로 반대를 표명하긴 했습니다만..서로 반대와 단독처리라는 의사진행에 합의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공수처를 둘러싼 올 연말 정국파탄은 지난해 연말부터 예고돼온 셈이죠.

6.
법사위 야당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마지막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염치 없지만 국민들께서 막아주시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정치적 레토릭입니다. 국민도 당장 법개정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뽑고, 총선에서 여당에 압승을 안겨준 국민입니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냥 가는 겁니다.

7.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할 처장 임기는 3년이지만, 공수처 소속 검사는 3년씩 3연임 가능하기에 9년간 자리를 지킬 겁니다.

야당에서 우려하는대로 진보성향 변호사들이 대거 유입될 경우 부작용이 만만찮을 겁니다. 앞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수처는 전 정권에서 임명한 검사 70명을 한꺼번에 쫓아내느라 홍역을 치를 겁니다.
정치수준이 이 모양 그대로면 공수처는 쉽게 없어지지도 않을 겁니다. 야당 시절엔 공수처 욕하다가도 정권 잡으면‘잘드는 칼’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겠죠.
그래서 공수처는 ‘검찰의 옥상옥’‘충견 위에 맹견’이란 비아냥을 듣는 겁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