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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우사인볼트 돼라"…과기부가 내린 '미션 임파서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두 달을 줄 테니 우사인 볼트의 100m 세계 신기록인 9.58초보다 단축해 9.48초를 달성해오라. 기록 초과하면 0.5초당 2000만원씩 내야 한다'고 지시한다면, 돈을 떠나서 애당초 현실 불가능한 얘기 아닙니까?"

지난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련한 '이동통신 주파수 재할당 세부정책방안 공개 설명회' 자리에 참석한 이상헌 SK텔레콤 정책개발실장의 토로다.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주파수 재할당 방안 공개 설명회에 참석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 관계자. 오른쪽부터 LG유플러스 김윤호 공정경쟁담당, KT 김순용 정책협력담당, SK텔레콤 이상헌 정책개발실장. [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주파수 재할당 방안 공개 설명회에 참석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 관계자. 오른쪽부터 LG유플러스 김윤호 공정경쟁담당, KT 김순용 정책협력담당, SK텔레콤 이상헌 정책개발실장. [연합뉴스]

이날 과기정통부는 내년에 사용기간이 만료되는 3세대(G)와 롱텀에볼루션(LTE) 주파수 310㎒ 대역폭을 이통3사에 재할당하는 가격과 산정 기준을 설명했다. 정부 안에 따르면 2022년까지 이통사가 5G 기지국을 15만국 이상 구축할 경우 재할당 가격을 3조2000억원 내면 된다. 기지국 구축 수가 15만에 못 미치면 훨씬 높은 가격을 납부해야 한다. 현재 이통3사는 사별로 5만국 내외를 구축했다. 이 정도면 재할당료로 4조1000억원을 내야 한다.

오용수 과기정통부 전파정책국장은 "주파수는 정부의 임대사업으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며 "많은 국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만큼 이같은 안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김윤호 LG유플러스 공정경쟁담당도 한마디 했다. "5G 기지국 하나 짓는데 2000만원이 든다. 10만국 더 지으면 2조원이 투입돼야 한다"면서 "과기정통부가 기업에 "매출=주파수 값" 구조로, 영업이익 남기지 말고 사업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이란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가계통신비 인하'를 부르짖어왔다. 이통사에 월 2만원대 요금제를 출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또 4차 산업혁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디지털 뉴딜 정책을 추진한다면서 이통사에 5G 인프라 대규모 투자를 재촉 중이다. 여기에 주파수 재할당 가격을 올리고 5G 기지국 구축까지 떠넘기니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정부의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할 마지막 주자는 이통사가 아닌 국민이 될 판이다. 실제로 업계 관계자는 "주파수 재할당 가격이 이렇게 높아지면,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정부 규제로 요금을 올릴 수 없다면 멤버십 등 고객 서비스를 줄여야 한다. 알뜰폰 사업자에게 받는 망 임대료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OECD 주요국의 주파수 부담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OECD 주요국의 주파수 부담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민도 이미 이런 사실을 직감하고 있다. 주파수 재할당 대가에 대한 기사마다 "통신비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결국 저 돈은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다"는 댓글이 달렸다.

전문가들은 향후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우려한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재할당 대가의 산정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부담금 산정원칙(조세법률주의)에 반하거나 재량권의 일탈·남용의 우려가 있다"며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른 시일 내에 검토 사항을 반영해 사업자의 재할당 신청에 문제가 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곧 새로운 청구서를 내놓겠단 얘기다. 새 청구서를 받아들면, 그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외쳐온 '통신비 인하' '국민 통신복지 증대'가 정부의 진심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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