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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는 거짓말 안했다···"비혼출산 된다"는 정부의 현실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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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공 체외수정 모습을 설명하는 장면. 연합뉴스

인공 체외수정 모습을 설명하는 장면. 연합뉴스

방송인 사유리(41·후지타 사유리)가 국내에서 정자를 기증받거나 부부가 아니면 인공수정을 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불법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관련된 법률을 엄격히 따지면 불법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즉 불법은 아니지만 현실 세계에서 비혼(非婚) 여성이 정자를 기증 받아 아이를 낳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비혼 여성의 출산을 받아들일지, 정자 기증은 어떻게 할지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비혼여성 출산의 법과 현실 따져보니

논란 ① 정자 기증에 남편 동의 필수?

정자를 기증 받으려면 남편의 동의가 필수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래서 비혼 여성에게 남편이 없으니 기증 받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24조는 좀 다르다. 의료기관이 배아(정자와 난자를 수정한 상태)를 생성하기 위하여 정자를 채취할 때에는 시술자와 기증자의 서면동의서가 필요하다. 시술 받으려는 여성과 정자 기증자가 비혼이라면 둘의 동의서만 있으면 된다. 다만 시술 여성이나 기증 남성이 기혼이라면 둘 다 배우자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정자를 기증받는 데 법적인 걸림돌이 없다. 또 배우자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현실은

냉혹하다. 비혼 여성이 기증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다음은 산부인과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정자를 기증 받는 것이다. 한국적 풍토에서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나중에 친권 등의 분란의 소지가 있다. 일부 산부인과병원이 정자은행을 운영한다. 불임 치료를 하고 남은 정자를 주인 동의를 받아서 쓸 수 있다. 기증받은 정자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자를 보관하는 원래 목적을 따져봐야 한다. 불임이나 난임 부부를 위한 것이다. 비혼 여성에게 또다른 큰 장벽이 있다.

방송인 사유리가 지난 4일 일본에서 3.2kg의 건강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KBS 9뉴스 화면 캡처

방송인 사유리가 지난 4일 일본에서 3.2kg의 건강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KBS 9뉴스 화면 캡처

논란 ② 부부만 보조생식술 시술 가능?

인공수정·체외수정 같은 보조생식술은 부부만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유리는 비혼이기에 시술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정답은 법적으로는 시술 가능,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다.
보조생식술 시술을 규정한 법률은 모자보건법 2조(정의) 11항과 11조(난임극복 지원사업)이다. 난임(難姙)이란 부부(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경우 포함)가 피임을 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부부간 정상적인 성생활을 해도 1년 지나 임신이 되지 아니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법적 부부나 사실혼이 대상이다. 11조에는 정부가 난임치료를 위한 시술비를 지원할 수 있게 돼 있다.

신선배아를 활용한 난임치료(체외수정의 경우)를 할 때 7회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돼 시술비의 30~50%만 환자가 부담한다. 인공수정 건보 수가는 회당 28만7000~35만2000원(환자 부담 30%는 8만6000~10만6000원), 체외수정(신선배아 미세조작술)은 202만~376만원(환자 부담 30%는 61만~113만원)이다. 또 예산으로 회당 90만~110만원을 추가 지원한다. 법적 부부나 사실혼만 대상이다. 비혼 여성은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을 엄밀히 따지면 비혼 여성이 건보나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소위 비급여 진료 형식으로 시술 받을 수 있다. 수백만원의 시술비를 다 부담하고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시술을 받을 수 있다. 금지 조항이 없는데다 처벌 조항도 없다.

현실은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은 좀 다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2017년 7월 개정, 버전 7.0) 정자공여시술 편을 보면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돼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박정열 사무총장은 "이 지침은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거쳐 만든 것"이라며 "이를 개선할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자의 의료윤리를 반영한 것이어서 법률과는 또 다른 무게가 실린다. 이 지침 때문에 산부인과는 부부나 사실혼 부부만 시술하고 비혼 여성 시술은 불법이라고 말한다. 즉 비혼 여성은 인공수정 등의 보조생식술을 못 받는 것으로 통용된다.

결론적으로 사유리 같은 비혼 여성이 정자 기증자를 구하고 그의 동의서를 받아도 의료기관에서 시술 받기가 극히 어렵다는 뜻이다. 사유리도 이런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논란 ③ 사회적 논의 시작될까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에서 보관 중인 냉동정자의 모습. 사진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에서 보관 중인 냉동정자의 모습. 사진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사유리 논란에서 드러난 첫번째 문제는 비혼자에 대한 차별이다. 건보나 복지(난임시술비 지원)가 법적 부부만 혜택을 준다. 사실혼 부부도 지난해 10월에서야 적용받기 시작했다.

둘째 정자나 난자 기증 문제이다. 정자은행·난자은행은 생명윤리법이나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하지 않고 있다.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 일부 산부인과에서 운영하지만 그리 활성화돼 있지 않다. 주목적이 불임 치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명윤리법 23조는 누구든지 금전, 재산상의 이익 또는 그 밖의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배아·난자·정자를 제공·이용하거나 이를 유인하거나 알선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대가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기증이 활발하지 않을 수 있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때 난자 공여가 문제가 되면서 엄격한 조항이 들어갔다.

셋째 비혼 여성뿐만 아니라 비혼 남성의 출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논의가 필요하다.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김소윤 교수는 "남편 없이 출산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를 확대할지, 이렇게라도 인구를 늘리는 게 좋은지 이런 걸 따져볼 때가 됐다"고 말한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뭐가 문제인지 정부가 잘 안다. 정부가 이참에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환자가 원하다고 다 해줄수 없는 게 보조생식술이다. 생명윤리 때문이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자기증 관련 규정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고민에 빠졌다. 비혼 여성의 보조생식술(인공수정·체외수정)을 활성화하면 비혼 남성에게는 대리모 허용 문제와 부닥친다. 복지부 관계자는 "비혼 여성이 활성화되면 동성부부는 왜 안 되느냐는 문제제기가 나올 것"이라며 "사회문화적 배경과 수용성 등 따져볼 게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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