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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온실가스 감축, 확대하기 전에 산업·일자리 충격 따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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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2015년 ‘파리협정’을 채택한 당시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 전망치 대비 37% 감축하겠다는 국가계획(NDC)을 제출했다. 25.7%는 국내에서 감축하고, 나머지 11.3%는 해외에서 감축하는 방안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8년 정부는 국내 감축분을 32.5%로 6.8%p 늘리겠다는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을 발표했다.

정부, 감축 더 늘리는 로드맵 마련 #실상 제대로 알리고 공론화 필요

올해 말에는 1차 NDC 수정 계획을 유엔에 제출할 예정인데, 2018년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보다 강화된 배출 목표가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을 목표로 하는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LEDS)도 함께 제출하는데,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를 의미하는 ‘넷 제로(Net-Zero)’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온실가스 감축 논의가 활발하다.

온실가스 감축은 주로 발전·산업·수송부문에서 추진된다. 발전부문은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런데 태양광·풍력 발전의 변동성·간헐성에 대응하기 위한 양수발전, 대용량 배터리, 비상용 가스발전소 등 값비싼 수단을 쓰는 비용을 국민이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은 만만하지 않다. 한국경제의 성장과 고용을 주도하는 국가 기간산업인 정유·석유화학·철강·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 등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들 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이라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다른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수송부문에서는 경유세 인상과 내연기관 퇴출이 논의된다. 이런 조치의 효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정유산업과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의 급격한 위축이 예상된다. 이는 다시 정유 산업의 산출물인 납사를 원료로 하는 석유화학 산업은 물론 자동차 산업에 납품하는 중소 자동차 부품 협력사의 생존에 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의 국가 기간산업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효율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온실가스 규제가 더 강하게 시행되면 결국 생산이 줄어들거나 일부 업체는 문을 닫아야 한다. 예를 들어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LEDS의 권고안이 시행되면 2050년 제조업 생산의 최대 44%가 줄어들고 최대 130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NDC 수정계획과 LEDS 확정을 위해서는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기후변화 때문에 필요하다는 감성적 호소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일자리가 줄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에 동의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면 공론화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수십 년 동안의 사회적 논의를 통해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온실가스 규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유럽의 상황을 단순하게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충분한 국민적 합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규제는 국민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축소는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겠지만, 새로운 유형의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이 발생하는 등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온실가스를 규제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이 규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불가피하니 하자거나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긴다는 주장은 접어두자.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필요한지, 일자리를 줄이더라도 국민이 동의하는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강행하는 규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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