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정호의 문화난장

비구니 없는 비구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하진 않지만 때론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오늘도 숫자로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7월 기준 수치다. 전체 승려 수 1만1956명. 비구 6301명, 비구니 5655명이다. 남녀 총수가 엇비슷하다.

성차별 칼럼 쓴 비구니에 #조계종회서 징계안 올려 #표현의 자유도 부인하나 #“시대에 역행” 비판 새겨야

범위를 좁혀 대종사(大宗師)와 명사(明師)를 비교해보자. 각각 법랍(승려가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 40년 이상의 비구와 비구니, 즉 최고 법계(法階)를 가리킨다. 전체 64명 중 비구는 50명, 비구니는 14명이다. 비구가 비구니의 네 배를 넘는다. 대종사(명사)에 오르려면 특별 전형을 거쳐야 한다. 계파·문중 파워가 작용할 수 있다.

비구와 비구니를 숫자로만 따질 일은 아니다. 예부터 불교에선 비구의 권한과 책임이 훨씬 강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울어진 운동장은 부자연스럽다. 남녀 불균형이 조계종만의 현안은 아니지만 만물의 평등을 설파한 부처의 깨우침과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 명사 추천권을 놓고 조계종이 내홍을 겪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지난해 대종사 지원 자격을 강화했다. 후보군이 많다 보니 전국 25개 교구에 추천권을 부여했다. 문제는 비구니 최고 어른 격인 명사도 이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것. 이전까지는 전국비구니회가 명사를 추천해왔는데, 비구 중심의 교구에서 선택권을 잡게 되니 비구니가 설 자리가 좁아 들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대덕·혜덕 품서식. 대덕과 혜덕은 각각 출가한 지 20년이 넘는 비구와 비구니에게 주는 조계종 법계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대덕·혜덕 품서식. 대덕과 혜덕은 각각 출가한 지 20년이 넘는 비구와 비구니에게 주는 조계종 법계다. [연합뉴스]

비구니회에서 수정을 요청했다. 명사 추천권을 돌려달라는 법안을 종회에 올렸지만 지난 7월 회의에서 철회됐다. 종회의원이자 불교신문 논설위원인 비구니 정운 스님이 이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칼럼을 지난 8월 불교신문에 실었다. 비구니회의 실체를 인정하면 해결될 사안인데 문제가 복잡해진 것은 비구 스님들의 비구니 차별심 때문이며, 현행 종법 또한 비구승 중심이고 비구니를 위한 행정 관련법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칼럼이 나가자 후폭풍이 일었다. 일부 비구승이 발끈했다. 특히 정운 스님의 글에 나온 ‘임의단체에 불과한 우리 종단’ 문구를 종단을 폄훼하는 행위라고 공격했다. 역시 비구는 힘이 셌다. 해당 칼럼은 온라인에서 삭제됐고, 정운 스님은 이후 불교신문에 해명과 참회의 광고를 실었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계종 총무원은 정운 스님 징계동의안을 종회에 제출했다. 승려의 자격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도, 파렴치한 행각을 벌인 것도 아닌, 단지 종단의 오랜 과제인 성차별을 거론한 글을 놓고 징계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종단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부처를 욕보이는 행위” “터무니없는 마녀사냥” “시대와 사회의 흐름에 역행”이라고 성토했다.

지난 12일 중앙종회 정기회가 열렸다. 여론을 의식한 까닭인지 징계동의안 처리는 내년 3월 임시회로 넘어갔다. 정운 스님의 소명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지만 아무래도 미봉책에 가까운 결정 같다.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는 “젠더 문제에 관한 조계종단의 민낯이 노출됐다. 성차별이 극심했던 2500년 전 인도의 붓다 시대로 회귀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다시 숫자로 돌아간다. 조계종 입법기구인 중앙종회 의원은 총 81명. 이중 비구니는 10명으로 고정돼 있다. 그나마 1994년 종단개혁 조치 이후 도입된 제도다. 또 조계종 헌법인 종헌을 보면 종정은 물론 원로회의 위원, 총무원장·교육원장·포교원장·호계원장(사법기구) 모두 비구가 하도록 명문화했다. 속세로 치면 입법·사법·행정 3부 모두 남성의 전권을 인정한 셈이다.

사실 종교의 남녀차별은 조계종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대·지역별로 숱한 모순이 혼재해왔다. 하지만 불교는 모든 중생은 다 부처가 될 성품이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고 가르쳐왔다. 차별을 경계하는 불이(不二)를 깨우쳐왔다. 카스트제도가 엄존했던 고대 인도에서도 부처는 여성의 성불을 인정했고, 여성 제자도 양성했다.

내년 3월 조계종 종회가 어떤 판정을 내릴지 벌써 궁금해진다. 꼬이고 꼬인 사태를 쾌도난마로 풀어주기를 기대한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마저 부인하는 종단으로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불교 미술에서 부처는 유독 귀가 큰 편이다. 자기와 다른 생각도 경청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포교·문화·환경 등 최근 비구니들의 활동이 주목된다. 사회 전반의 유리천장이 낮아지고 있다. 불교가 언제까지 과거에 안주할 것인가.”(전 총무원 기획실장 장적 스님)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