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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결제 넘보는 금융위…한은 ‘선 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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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은성수 금융위원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금융위원회가 현행 지급결제 시스템을 보완하는 규제 도입에서 나서자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반발하고 있다. 금융위는 “디지털 금융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한은은 “권한 침해이자 중복 규제”라고 맞선다.

핀테크·카카오·네이버 결제 쉽게 #금융위, 새 관리체계 입법 추진 #도입 땐 자료요구·검사권한 생겨 #한은법엔 지급결제는 금통위 권한 #한은 “명백한 심의·의결권 침해” #협의과정 반대에도 금융위가 강행

18일 복수의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위는 최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해 윤관석(더불어민주당) 국회 정무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법안의 초안 성격이지만 금융위와 윤 의원의 세부 조율은 어느 정도 마친 상태다. 정부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는 방식이 아닌 여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는 형식으로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지난 7월 금융위가 발표한 ‘디지털 금융 종합 혁신방안’에 담겨 있다. 핵심은 핀테크(금융+기술) 업계나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다.

한은이 반발하는 것은 법안 중 ‘전자(디지털) 지급거래 청산업’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예컨대 다수의 소비자가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를 이용해 돈을 주고받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서로에게 줄 돈과 받을 돈이 생긴다. 이때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이 있으면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각 줄 돈과 받을 돈을 계산해 차액이 얼마인지 알려주고 해당 금액을 결제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

금융위가 마련한 법안에선 전자 지급거래 청산기관이 이런 일을 하도록 했다.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포함한 전자 지급거래 청산기관의 허가와 자료제출 요구, 검사 권한을 갖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디지털 결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그런데 한국은행법에는 “지급결제 제도의 운영 및 관리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을 금융통화위원회의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은행 등 금융회사를 이용한 계좌 이체나 송금, 자금 결제는 금융회사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금융공동망 안에서 이뤄진다. 은행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소비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안전한 거래를 위해선 매우 중요한 금융 인프라다.

금융위는 신산업의 성장에 맞춰 새로운 관리·감독 체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갑작스러운 거래 중단이나 자금 세탁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방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반면 한은 관계자는 “굳이 새로운 산업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시스템 보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반박했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연합(EU)·영국 등 주요 국가·경제권에선 중앙은행이 지급결제 제도를 운영한다. 한은 관계자는 “혹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화폐 발행권을 가진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금융시장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종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기관) 역할을 한다. 때문에 지급결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과 금융위는 지난 3월부터 전자 지급결제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해왔다. 한은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위기 극복을 위해 역량을 집중해야 할 상황에서 양측이 갈등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융위는 (법안의) 해당 조항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주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그동안 긴밀하게 협의해왔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도 한은과 계속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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