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군 감축" 발표직후, 이라크 그린존엔 로켓 쏟아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18 17:26

업데이트 2020.11.18 17:57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그린 존'에 대한 로켓 공격이 발생해 최소 어린이 1명이 숨지고 민간인 5명이 다쳤다고 CNN 등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로켓 공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을 감축한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 발생했다.

그린 존은 미국 대사관과 이라크 정부 청사 등 주요 시설이 있어 미군의 보호를 받는 지역이다. 이번 공격의 배후를 자처하는 단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은 그린 존에 대한 로켓 공격 배후로 친이란 민병대를 지목해왔다. 친이란 무장 단체들은 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이라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17일 바그다드 그린 존에서 발생한 로켓 공격. [로이터=연합뉴스]

17일 바그다드 그린 존에서 발생한 로켓 공격. [로이터=연합뉴스]

이라크군에 따르면 이날 밤 바그다드 동부지역에서 총 7발의 로켓이 발사돼 이 가운데 4발이 그린 존 안에 떨어졌다. 다만 미 대사관 직원들은 피신해 아직까지 인적·물적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CNN은 전했다.

크리스토퍼 밀러 미 국방장관 대행은 이날 펜타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1월 15일까지 아프간에 주둔하는 미군 규모를 2500명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 규모도 2500명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아프간에는 약 4500명, 이라크에는 3000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공격의 배후가 이란일 경우 감축 계획을 발표한 미군에 '빨리 떠나라' 는 신호를 주며 압박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내 반미 연대 강화될 듯…아프간서 탈레반 도발할 수도 

이라크와 아프간 내 미군 감축은 힘의 공백 상태를 불러와 중동 정세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선 이라크에선 미국과 적대적인 이란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희수 교수는 "이라크 내에서 이란의 힘이 커지면서 강력한 반미 연대가 형성될 수 있다. 이란과 이라크 연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은 이슬람 수니파 국가 간의 대립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군이 감축을 시작하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미군을 향한 친이란 세력의 테러가 빈번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과 반이란 세력 간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17일 바그다드 그린 존에서 일어난 로켓 공격 흔적.[AP=연합뉴스]

17일 바그다드 그린 존에서 일어난 로켓 공격 흔적.[AP=연합뉴스]

아프간에선 무장 반군 탈레반이 도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탈레반이 알카에다에 근거지를 제공하지 않는 등 관계를 단절하면 내년 5월까지 아프간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협정 체결 후에도 탈레반은 아프간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협정을 체결했다 해도 아프간에 미군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면서 "탈레반은 이란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다. 이란과 힘을 합쳐 아프간에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란 더욱 적대화하려는 트럼프 노림수? 

미군이 줄어든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다시 활개 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미군은 지난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2011년 철수했지만, IS가 세력을 확장하자 지난 2014년부터 다시 이라크에 주둔해왔다. 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톰 스포어 국방 전문가는 "미 행정부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감축하면 IS가 재등장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크리스토퍼 밀러 미국 국방장관 대행이 펜타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7일 크리스토퍼 밀러 미국 국방장관 대행이 펜타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은 왜 그런데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군을 감축하려는 것일까.

이희수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잔여 임기를 60여일 앞둔 시점에 감축 계획을 발표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 화해 분위기를 형성하기 전에 미군을 감축함으로써 이라크와 이란의 반미 연대를 더욱 강화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국들 간의 수교를 중재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들 나라 간의 동맹 강화를 위해 이란을 더욱 강력한 적대국으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美 빠진 자리 러시아·中이 메꿀 수도"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가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을 참모들에게 타진했다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도 나왔다. NYT는 이란이 핵물질 보유량을 늘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응징할 방안을 검토했고, 확전을 우려한 참모들이 이를 만류했다고 전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도 중동에서 발을 빼려는 미 정부의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세계 1위의 산유국이 된 미국이 더이상 중동에 얽매일 이유가 없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가 줄어드는 사이 러시아는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해 휴전을 주도하기도 했다.

장지향 센터장은 "러시아는 중동 영향력 확대로 무너진 국제사회의 위상을 회복하고, 종전 후 재건 사업 등에 대한 진출을 노리는 것"이라면서 "중국도 같은 이유로 중동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미국이 빠진 자리를 러시아와 중국이 메꾸려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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